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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시장바닥 … 세상이 우리무대”
<11> 그룹 ‘바닥 프로젝트’
베테랑 세남자 뭉쳐 결성 2년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참여
2012년 03월 26일(월) 00:00
‘바닥 프로젝트’는 거리 시민악사라는 말처럼 무대뿐 아니라 길·시장·공원·갤러리에서 노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그룹이다. 왼쪽부터 김현무(32)·김영훈(34)·임웅(35)씨.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지난 21일 ‘바닥 프로젝트’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거리 공연하는 모습을 찍자고 요청했다. 휴대전화 판매점·패션의류점에서 쏟아내는 유명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이 귀를 때리는 충장로 한 복판에서다. 20분 뒤 이미 다른 장소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라 무리한 요구인 듯 싶었다.

세 남자는 흔쾌히 하겠다며 일어섰다. 부를 곡을 선정하거나 멤버끼리 연습하지도 않았지만 통기타와 우크렐레(작은 기타 모양의 4현악기), 까혼 등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곧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마이크나 전기 장치 없이 목청으로 노래부르며 격식 있는 공연장도 아닌 거리로 뛰어들었다. 머뭇머뭇하지도 않았다.

발랄하지만 사뭇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나타난 세 남자들에 대한 낯선 거리감이 익숙함으로 바뀌는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삐 지나치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잠시 멈추며 힐끗거렸다. 늦은 오후,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어색하게 서서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는가 싶더니 카메라를 들이댄다. 분위기를 즐기려는 듯했다.

진정한 대중음악의 힘은 엄청나게 큰 공연장이 아니라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 만 했다.

‘바닥 프로젝트’는 길거리를 주 무대로 삼아 놀면서 노래하는 그룹이다. 무대뿐 아니라 길·시장·공원·갤러리에서 노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거리시민악사’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이유다.

지난 2010년 임웅(35)·김영훈(34)·김현무(32)씨 등 따로 놀던 젊은 세 남자가 뭉치면서 만들어졌다. 결성된 지 2년 밖에 안됐지만‘신출내기’그룹은 아니다. 저마다 1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해온 전문가들이다.

‘악사 대장’인 임씨는 퓨전밴드 ‘모호’의 리더로, 포크락 그룹 꼬두메와 국악실내악단 도드리, 포엠콘서트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작·편곡까지 맡았던 재주꾼이다. 우크렐레를 치는 김영훈씨도 꼬두메 등에서 10년 넘게 음악을 해온 베테랑 실력가다. 김현무씨는 전남대 국악과를 나와 국악실내악단 도드리에서 활동하다 합류한 케이스로, 피리를 불거나 까혼을 두드리는 소리꾼이다. 세 남자 모두 ‘이왕이면 좋아하는 음악 즐기면서 해보자’는 생각에 의기투합했다.

결심은 했지만 공연장도 아닌, 360도 열린 거리 무대에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용기를 내기 위해 마음속으로 주문도 외웠다고 한다. 충장로로, 시장으로, 공원으로, 갤러리로 하루에도 몇 번씩 자리를 옮겼다. 거리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또 연주를 했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때마침 멍석도 깔아졌다. 2010년 추진된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로, ‘음악사랑방 다락’을 운영하면서 ‘레지던시 작가’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서민들의 뜨거운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게 시장 바닥이라는 점도 길바닥에서 즐겁게 노래하며 소통하자는 ‘바닥프로젝트’ 결성 취지와 딱 들어맞았다. “대인시장은 ‘바닥 프로젝트’에겐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죠. 훈련의 장소였고 기회의 공간이나 다름없었어요”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무대로 삼아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은 무엇보다 중요해요. 반응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관객이 호응하면 훨씬 목소리에 힘이 실려요. 크게 신경쓰진 않지만 무심하면 공연자도 힘이 빠지긴 하죠.”

1년 남짓 대인시장에서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 시장에서, 예술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인들과의 ‘삶’은 ‘바닥 프로젝트’ 음악의 뿌리가 됐고 시민, 관객들과의 소통 현장이었다.

비릿한 홍어 냄새, 쉰 목소리로 손님들을 불러 모으는 억척 아줌마들과 섞이고 부대끼면서 탄생한 ‘홍어송’은 그들의 대표 곡이다. 그만큼 대인시장에서 이들의 인기는 ‘짱’이다.

노래를 할 때면 이들에게 보내는 시장상인들의 환호가 대단하고 함께 사진 찍자고 팔을 잡아끄는 손도 줄을 잇는다. 2년 가까이 매월 한 차례씩 열고 있는 ‘골방음악회’는 챙겨서 찾는 ‘팬클럽’도 생겼다.

뜻이 좋고 사람 좋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닌 법. 시내에서 공연을 할 때는 “우리집 간판이 안보인다”는 불평 탓에 옮겨다니는 설움도 당했다. 그만큼 대중 문화 공간에 대한 갈망도 대단하다.

“광주가 음악하기 편한 공간은 아니에요. 대부분 수도권으로 가려는 젊은 음악가들도 적지 않죠. 음악이라는 대상을 통해 서로 자극받으면서 열정과 꿈을 키워나가는 토대가 부족한 탓인데, 아쉽죠.”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시가 챙겨들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큰 공연장을 갖추는데만 공을 들이는 게 아니라 젊은 음악가들이 쉽게 찾아 편하게 노래하며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연주하지는 않는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김현무씨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면서 하자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들 스스로 흐뭇해하는 일도 기다리고 있다. 늦어도 5월이면 바닥프로젝트의 첫 음반이 나오는 것이다. ‘거리시민악사’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 음반이 나왔지만 정규 음반은 이번이 처음으로, 광주지역 거리 곳곳을 돌며 소규모 공연장을 다니며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작품이다.

시민들과 소통하며 시민들에게 바쳐지는 노래, 노래하는 순간은 까닭모를 희열이 밀려온다는 그들의 노래는 그래서 작은 흥에도 크게 울리고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지 모른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