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학관’에서 광주의 숨결을 만나다
  전체메뉴
‘흥학관’에서 광주의 숨결을 만나다
‘흥학관갤러리카페’ 개관 기념
31일까지 ‘광주정신을 만나다’전
1921년 최명구 건립 시민사회 기증
성진회·신간회 등 항일단체 활동
인물·사진·계몽운동 등 자료 전시
2026년 01월 06일(화) 19:40
‘광주정신을 만나다-흥학관’전이 흥학관 2층에 자리한 흥학관갤러리카페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도시 이름 앞에 정신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광주만은 예외이지요. 광주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타 지역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광주정신’이라고들 말합니다.”

최근 동구 구시청사거리 흥학관(興學館·옛 광산동 100번지) 2층에 개관한 흥학관갤러리(대표 이형철) 전시를 기획한 양성현 작가의 말이다. 그는 광주가 특별한 정신적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광주만의 독특한 역사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서도 ‘의’(義)와 ‘헌신’(獻身)을 핵심으로 꼽았다. 흥학관은 바로 의와 헌신을 상징하는 광주가 자랑할 만한 공간이다.

1920~1930년대 청년 활동의 중심지 흥학관.
흥학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1921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광주 부호 최명구가 1만여 원을 들여 지은 후 시민사회에 기증했다. 이곳은 광주청년학원과 광주청년회 사무실로 사용되며 지역 청년 활동 구심점이 됐다.

최근 2층에 문을 연 흥학관갤러리에서 광주정신의 역사와 뿌리를 조명하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오는 31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광주정신을 만나다-흥학관’전은 당시 활동했던 사회단체들, 흥학관과 광주학생독립운동, 흥학관과 광주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이곳은 오랜 기간 다른 용도로 사용돼왔다. 건물도, 길도, 골목도 크게 변할 만큼 긴 세월에 흥학관은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05년 전 흥학관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의미의 ‘흥학관갤러리카페’가 들어선 것이다.

전시실에서 만난 양 작가는 “1920~1930년대 광주의 주요 사회계몽운동단체들 상당수가 이곳 흥학관에서 태동했다”며 “당시 청년운동의 양대 축이었던 광주청년회와 광주노동공제회가 자리했던 곳이며 광주여성야학과 광주노동야학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흥학관이 광주정신의 토대이자 의와 헌신이 투영된 공간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특히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이곳에서 계획되고 추진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 작가는 “1920년 조선인의 힘으로 설립된 고등교육기관 광주제일고등학교(옛 사립광주고등보통학교) 출발 또한 흥학관에서 비롯됐다”며 “1926년 항일 지하조직 성진회 외에도 1927년 한일단체 신간회, 1929년 광주여성들의 근우회 광주지회, 1933년 계유구락부 등도 이곳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고 덧붙였다.

입구에는 광주시 동구의 안내문 ‘흥학관 터’에 대한 내용도 부착돼 있다. “흥학관은 일제강점기 광주청년회, 광주신간회 등 사회 단체의 주요 활동 거점이었으며 청년·노동자 등 시민을 위한 강연과 야학이 열린 곳이다. 또한 야구부 등 운동부의 체육시설로도 사용되었는데, 광주의 권투가 흥학관을 중심으로 보급되기도 하였다.”

‘흥학관의 현위치’라는 현판에는 이런 내용도 기록돼 있다.

양성현 작가가 펴낸 ‘흥학관’
“흥학관은 처음 설립 당시에는 서광산정 31번지, 이후에는 같은 위치가 주소지가 바뀌어 광산정 66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 동구 광산동에 구시청 사거리, 현재 광산동 100번지 일대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목조로 된 단층 건물로, 내부는 넓게 깐 마루가 있었다. 건물 바깥에는 마당이 있었다. 건물 내부는 광주청년회·노동공제회 광주지회·전남노동연맹·신간회광주지부·광주청년학원 등 광주지역 청년 및 사회단체의 회의장소, 공연장, 강연장, 야학의 교실 등으로 운영되었고, 넓은 앞마당은 야구, 정구 등 각종 스포츠행사장이나 행진의 집결지로서 집회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갤러리카페에는 전시를 관람하고 차를 마시는 방문객들이 자리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면, 이곳에서는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토론과 강연 등이 펼쳐지고 있을 것 같다.

전시는 이야기하는 방식을 차용해 스토리 전으로 구성했다. 흥학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문맹퇴치운동, 노동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은 역사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환기한다.

흥학관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와 사진도 볼 수 있다. 최원순·현덕신 선생이 남긴 흥학관 사진을 비롯해 신문 속 희미한 이미지, 당대 기록들은 생명을 얻어 오늘에 현현된 느낌이다.

양 작가는 “1920년 광주 청년들의 공간으로 문을 연 흥학관은 시대를 고민하며 자주독립과 미래를 논의했던 장소였다”며 “이곳이 내일의 광주정신을 새롭게 만들고 변화하며 역동적으로 모색해가는 구심점이 되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형철 대표는 “흥학관은 우리 광주의 자부심이었다. 항일운동을 이끌던 지사들이 시대의 아픔을 토론하고 서로 지혜를 모으던 장소였다”며 “그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펼쳐낼 현대적 이야기 공간, 바로 ‘흥학관갤러리카페’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