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 같은 달빛…추석은 모두의 명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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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 같은 달빛…추석은 모두의 명절이죠”
광주·전남 거주 외국인들 ‘민족 대명절’ 추석나기
2025년 10월 02일(목) 10:00
벨릭(러시아·오른쪽)
광주·전남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다.

이들은 올 추석 시댁 식구들과 함께 모여 송편을 빚고, 차례상을 차리는 등 한국 문화를 함께 즐기는 것은 물론, 고향의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나누고 고향 음식을 만들어 한국 가족들과 나누며, 추석 보름달에 건강과 행복을 빌겠다는 등 저마다 방식으로 추석을 맞겠다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원가빈(베트남·오른쪽)
한국에서 18번째 추석을 맞이한다는 원가빈(여·35·베트남 출신)씨는 명절마다 담양 시댁에서 한국과 베트남 문화를 잇는 문화 전도사가 된다. 남편 가족뿐 아니라 베트남 친구 가족들까지 15명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송편도 빚으며 보내길 6년째. 원 씨는 한국와 베트남 문화를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융합하는 장이라고 소개했다.

원 씨는 “한국에서 결혼한 베트남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명절에 갈 데가 없어 외로워하니까 시댁에 데려갔다”며 “지금은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용돈도 주고 반찬도 챙겨주고 딸처럼 돌봐주신다. 담양 시댁에서 친구들과 함께 외로움도 달래고 여행하듯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원씨는 한국 문화에도 완전히 적응했다. 죽순, 고사리 등 나물 반찬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담근 김치, 밤이면 마당에서 삼겹살도 굽고 밤 구워먹는 맛도 일품이라는 것이다.

원 씨는 “며느리들은 명절이 부담되고 식구들 세끼 챙겨야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쌀국수, 튀김같은 베트남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좋아한다”며 “특히 솔잎을 깔고 찌는 송편을 좋아한다. 잡채, 갈비 뿐만 아니라 참기름 냄새 가득한 송편이 정말 맛있다. 올해도 친구들과 함께 시댁에서 건강하고 풍성하게 보낼 생각에 설렌다”고 말했다.

박선녀(중국·가운데)
박선녀(여·43·중국)씨도 이번 명절을 중학교 2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보성군의 시댁에서 보낼 예정이다. 박 씨는 2011년 한국으로 와서 결혼해 14년째 한국 추석을 맞고 있다. 올해는 긴 연휴에 가족들과 보성 근처를 드라이브하며 해변가 여행도 만끽하고, 미뤄 왔던 시댁 집 수리도 돕는 등 계획을 세웠다.

박씨에게 한국 명절은 낯설었다. 박씨는 “중국에서는 차례를 지내지 않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차례상 문화가 낯설었고, 결혼하고 처음 성묘를 가는데 큰 산에 시댁 어르신들의 묘가 모여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박씨는 명절이면 중국에 있는 친정 식구들이 더 그리워진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갔던 것도 벌써 6년 전이다.

박씨는 “명절에는 비행기 비용도 비싸고 평일에는 일을 하기 때문에 중국에 가기 쉽지 않다”며 “부모님과 화상통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아 많이 아쉽다. 부모님이 건강하고,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길 늘 바란다고 보름달에 소원을 빌어볼까 싶다”고 말했다.

감수진(캄보디아·왼쪽)
2007년에 온 감수진(여·39·캄보디아)씨는 오랜만에 캄보디아 가족들과 함께하는 추석을 맞게 됐다. 올해 캄보디아에서 따로 떨어져 사는 남편이 이달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화순에서 계절근로자로 일하는 여동생도 불러 함께 명절을 즐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감씨는 “캄보디아에서 명절에는 보름 동안 사원에 가서 스님께 인사하고 음식도 나눠 먹는다”며 “한국에서도 가족들끼리 모여 부모님을 찾아 뵙고, 전통음식을 해 먹고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감씨는 캄보디아 가족들과 한국 명절 문화를 나누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감씨에게는 식구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고, 송편을 만들어 먹었던 2009년 추석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다. 최근에도 그는 나주 드림스타트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모여 알록달록 송편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이면 한국 명절 음식과 캄보디아 음식을 함께 해 먹을 생각”이라며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보름달에 소원을 빌 생각”이라고 말했다.

찌어 쩜라은(캄보디아)
‘수험생 모드’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었다.지난 2022년 한국에 온 찌어 쩜라은(28·캄보디아)씨는 올해 한국에서 맞는 네번째 추석을 맞아 법무부 공식 교육 과정인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 공부에 온 힘을 쏟겠다는 각오다.

광주시 광산구 평동산단에서 금형 조립과 가공 일을 하는 그는 틈틈이 한국어를 배우며 적응해왔다. 공장 용어조차 몰라 메모하며 외웠던 그는 최근 ‘사회통합프로그램’ 4단계를 획득한 데 멈추지 않고 한 단계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찌어 쩜라은씨는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고, 한국 문화에 더 스며들고 싶다”며 “올해는 한국어 공부에 집중하며 보름달에 꼭 합격 소원을 빌겠다”고 웃었다.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지 못해 더욱 그리운 연휴를 보내게 됐다는 이도 있었다. 광주시립발레단 발레리노 출신인 벨릭(49·러시아)씨는 올해 긴 추석 연휴를 앞둔 그는 고향을 생각하며 아쉬움과 속상함이 가득하다.

벨릭씨는 3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는만큼 한국이 ‘제2의 고향’ 그 이상이지만 명절만 되면 러시아의 가족들이 떠올라 그리움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올해처럼 휴일이 길면 러시아에 다녀올 법도 하지만, 전쟁이 한창이라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명절에는 역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요즘엔 다 흩어져 살아 한 자리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명절이면 해외 여행을 가는 문화로 바뀌어 버려서 아쉽다. 가족들과 모여서 북적거리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올해는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을 만나러 부산에 가서 추석을 보낼 생각이다”고 말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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