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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일조…죄책감에 무너진 아버지
오성인 시인, 에세이집 ‘세상에 없는 사람’ 펴내
2024년 05월 20일(월) 19:25
광주 출신으로 지금까지 ‘광주’를 모티브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쳐온 오성인<사진> 시인. 그는 지난해 펴낸 두 번째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에서 “광주를 말하지 않고는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80년 오월 세대도 아닌 젊은 시인이 광주 5월을 중심축에 두고 시를 쓰는 것은 저간의 사정이 있다.

“80년 당시 아버지는 어느 부대 운전병으로 복무중이었는데 어느 날 박달나무를 해오라는 명령이 부대에 하달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깎고 다듬어 군용트럭에 적재했답니다. 얼마 후 진압봉은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광주에 내려와 있던 3, 7, 11공수부대에 지급됐다고 하네요.”

오 시인이 이번에 펴낸 에세이집 ‘세상에 없는 사람’(걷는사람)은 국가 폭력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80년 오월을 거쳐 간 어느 시민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불의한 시대로 인해 평범한 삶을 잃어야했던 소시민의 사연과 관련 내용 등이 주를 이룬다.

오 시인은 “이번 책은 거대한 역사 이야기도 흥미진진한 서사도 아니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5·18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주변에 드리워져 있는 작은 지류와도 같은 일화들이다. 단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통해 5월의 역사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 시인에 따르면 아버지는 일평생 자신 스스로를 독 안에 가두듯 속죄하며 살았다.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죽어 자빠진’ 삶을 살아야 했던 것. 그러던 아버지와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당신의 치아가 얼마 남지 않은 근래부터라고 한다. “절친한 지기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했다는 죄책감 등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았던 응어리들이 부쩍 허술해진 입에서 쏟아졌다”는 것이다.

책은 표지에서부터 80년 5월의 분위기를 전한다. 당시 계엄사령부의 신문 검열본(전남매일신문 80년 6월 2일자)에는 빨간 펜으로 상당 부분 삭제가 지시된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수록돼 있다.

오 시인은 “이번 책 발간을 매개로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오월의 숨겨진 역사, 일테면 발포명령자를 비롯해 암매장 관련 진실들이 하루속히 규명되었으면 한다”면서 “한편으로 평생을 죽은 사람으로 살았던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오 시인은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 등을 펴냈다. 대산창작기금과 나주문학상,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