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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농번기 풍성한 새참은 사라져 가지만
기계화와 인력난에 간편식 대체…일손 배려하는 마음은 여전
2024년 05월 19일(일) 19:20
/클립아트코리아
농사일은 원래 배가 고프다. 식량을 생산해 배 불리 살기 위한 일이니 당연하지만, 땡볕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 보면 밥을 먹어도 배가 금방 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식사 사이에 먹는 참’, 즉 ‘새참’이다.

새참은 ‘사이참’의 준말로 육체노동이 심한 노동자나 농번기의 농부들은 하루 세 끼의 식사 외 한두 번의 식사를 더 하게 된 데서 유래했다. 한 번의 새참은 아침 식사를 새벽에 일찍 했을 때는 오전 10시쯤에 하고, 또 한 번의 새참은 점심과 저녁 사이인 오후 4시경에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새참을 먹는 모습은 18세기의 풍속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 그림에는 6명의 장정이 웃통을 벗어부친 채로 일을 하다가 들에서 새참을 먹고 있다. 식사는 왼손으로 받쳐 든 한 사발 밥에, 젓가락으로 집고 있는 한 그릇의 반찬 그릇이 고작이다. 어떤 이는 간혹 숭늉을 마시기도 하고, 동자가 따라주는 술을 커다란 사발로 마시기도 한다. 그 곁에는 작은 바둑이가 지켜보고 있다. 또 한옆으로는 아낙네가 뒤로 돌아앉아 어린아이에게 젖을 빨리며 밥소쿠리를 지키고 있다. 아낙네의 곁에는 한 소년이 한 그릇 밥을 얻어먹으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들녘에서 참깨 농사를 위해 비닐 씌우기 작업 품앗이를 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 네다섯 분이 비닐 끌기와 흙덮기를 번갈아 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새참이 있을지, 준비했다면 뭘 했을지 궁금했는데 10시쯤 빵과 콩 음료로 해결하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린 시절 새참 추억을 소환해 봤다. 예전엔 새참 먹는 풍경은 이렇진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거들며 일하다 보니 새참을 먹을 때는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벼농사를 손으로 지을 때는 아이고 어른이고 다 일꾼이었다. 모내기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음식도 함께해서 나눠 먹었다. 어려운 시절이라 보리밥에 돼지비곗국과 김치가 전부였지만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눠 마시며 즐겁게 일하는 모습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새참 먹는 풍경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메뉴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벼농사가 기계화되면서 모내기나 벼 베기 현장에서 새참이 사라진 데 따른 것일 게 다. 대규모로 일하지 않으니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소량의 간편식 메뉴가 등장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이 없어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외국인 노동자와 일당을 주고 할머니 일꾼을 쓰는 요즘 농촌의 새참 메뉴를 들여다봤다. 나주의 한 배농가의 식사와 새참 메뉴다. 하루 네 끼를 먹는 일손을 위해 주인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된장국으로 아침을, 10시에 과일과 콩 음료로 오전 새참을, 12시에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오후 3시에 떡국으로 오후 새참을 준비했다. 한참 바쁠 때는 콩국수나 짜장면을 배달시켜서 먹기도 한다고 했다.

새참 풍경의 변화와 함께 새참 대표 음료였던 막걸리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음료가 다양해지고 소주와 맥주 등 주류의 취향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그보다는 과음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더 큰 이유란다. 차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와 같다.

시대에 따라 새참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이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정성으로 준비해 대접하고, 일꾼들 역시 내 일처럼 열심히 일하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여전한 것 같다. 이것이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상부상조 정신으로 우리가 지켜가야 할 유산이다.

/big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