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이터널 선샤인…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재귀적 사랑
<9>망각의 카타르시스와 이를 넘어서는 기억, 초월
![]() 몬톡행 기차 안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처음으로 만난다. 상처줬던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 탓에, 이들은 구면이지만 처음처럼 인사한다. |
해변 위 허름한 목조 가옥 하나, 이곳은 헤어진 연인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마지막 순간을 형상화한 몽상 속 공간이다.
슈르레알리스트들이 최선을 다해 빚어낸 푸른 오브제 같기도, 무구한 연인들의 마지막 피난처 같기도. 방 안까지 밀려오는 파도는 이별의 상징처럼 집을 삼킨다.
조엘은 상처준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중 이 집을 떠올렸다. 헌데 허물어져 가는 폐가로 환유된 그녀는 아직 ‘따뜻’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과한 발랄함도, 툭 튀는 주황색 후드 티도, 시끄럽고 괴짜(nerd)스럽던 모습마저 모두 사랑스럽다.
이윽고 거실까지 물이 차자 조엘은 밖으로 도망친다. 뒤편에서 “우리 이번에는 작별 인사라도 하자”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인사치레마저 없이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게 얼마나 아픈지, 우린 모두 안다.
무릎을 꿇고 뺨을 내어준다. “몬톡에서 만나”……. 나지막한 그녀의 속삭임과 두 볼을 감싸는 긴 손가락들, 무언가를 암시하는 시퀀스를 끝으로 화면은 페이드아웃.
열 번도 넘게 재관람한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을 처음 감상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언젠가 괴롭던 때, 책등 제목만 보고 덜컥 시집을 집듯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틀었다. ‘무한한 햇살’이라는 제목이 그저 좋았던 것. 당시 영화에 달려 있던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 ‘런던 비평가 협회상’ 등 수식어는 중요치 않았다.
작품의 제목은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발레르’ 중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무결점의 사랑을 희구하다니 어딘가 불안하지만, 외려 영화는 ‘결점 가득한 사랑’이야말로 오래 유효한 마음임을 증명해 낸다.
어딘가 울적한 조엘(짐 캐리 분)은 밸런타인 데이에 회사를 땡땡이치고 몬톡 행 기차에 오른다. 그곳에서 파란 머리를 한 여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처음으로 만나 순식간에 끌림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서로 상처를 줬던 까닭에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Lacuna·라틴어로 잃어버린 조각)를 찾아가 연인의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았기 때문. 서로를 지워 냈음에도 이들의 본능과 추억은 우연히 몬톡행 기차에서 다시 사랑에 빠지도록 이끈다.
작품은 기억을 소재로 삼았기에 빈번한 점프 컷의 활용, 비선형적 전개 등이 도드라진다. 과거와 현재가 선회하는 ‘나선형 시퀀스’들은 복잡함을 배가시켜, 어려운 플롯의 대명사 크리스토퍼 놀란 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오프닝 크레딧마저 러닝타임 20분이 지나서야 등장할 정도.
그럼에도 ‘이터널 선샤인’은 행복했던 과거와 불안한 미래를 각각 정·반 삼아 ‘연인들의 화합’이라는 결론(종합)에 도달한다. 사랑이란 애와 증, 호와 오의 공존임을 밝히는 치밀한 ‘영화적 변증’이다.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는 것은 일시적 축복일 수 있지만, 망각은 상대와 나의 실존을 회피하는 면도 있다. 주인공들이 기억을 되찾고 오히려 서로의 추태, 만상과 파렴치를 목도한 뒤에야 행복을 마주하는 것은 영화에 투사된 피히테적 사유의 일면이다.
“넌 또 날 거슬려하고, 난 널 지루해할거야”라는 클레멘타인의 불안에 조엘이 그저 “괜찮아(Okay)”라고 말하는 복도 씬은 여운을 준다. 이들을 보면 타자를 향한 사랑이란 모두 나 자신에서 비롯하는(혹은 향하는) 재귀적 감정일 뿐인 것 같다.
한편 배우들의 즉흥 연기도 영화의 완결성에 가세했다. 영화 속 일라이저 우드와 마크 러팔로는 속옷 차림으로 춤을 추는 씬 등에서 즉흥연기를 펼치고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은 리허설 세션에서부터 자신들의 즉흥적 애드리브를 활용했다.
영화 속 색채 언어도 기억에 남는다. 작중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은 자신의 감정과 맞물려 수시로 변하는데 처음에는 우울(blue)로 가득 찬 파랑이었다가, 가장 뜨겁게 사랑할 때는 붉게 색을 바꾼다. 이 밖에도 노을 지듯 한 주황은 식어가는 사랑을, 초록은 갓 피어나는 초연의 풋풋함을 신록에 빗댄 미장센이다.
앞서 풀어썼듯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부서지는 ‘기억의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몬톡에서 만나”자고 하는 씬이다.
‘몬톡(Montack)’이 롱아일랜드 동북부의 ‘몬타우크’나 그 어느 곳을 지칭하더라도 좋다. 영화는 나만의 ‘몬톡 해변’을 거닐게 하며 기억 한구석을 헤집어 놓는 시간을 선사한다.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 같은 OST로 씨네 아스트(cineaste·영화 애호가)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시리즈온, 왓챠,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 OTT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슈르레알리스트들이 최선을 다해 빚어낸 푸른 오브제 같기도, 무구한 연인들의 마지막 피난처 같기도. 방 안까지 밀려오는 파도는 이별의 상징처럼 집을 삼킨다.
조엘은 상처준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중 이 집을 떠올렸다. 헌데 허물어져 가는 폐가로 환유된 그녀는 아직 ‘따뜻’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과한 발랄함도, 툭 튀는 주황색 후드 티도, 시끄럽고 괴짜(nerd)스럽던 모습마저 모두 사랑스럽다.
무릎을 꿇고 뺨을 내어준다. “몬톡에서 만나”……. 나지막한 그녀의 속삭임과 두 볼을 감싸는 긴 손가락들, 무언가를 암시하는 시퀀스를 끝으로 화면은 페이드아웃.
![]() 거리 서커스를 관람하던 중 클레멘타인은 갑자기 사라진다. 이 씬은 계획에 없던 거리극을 보고 촬영이 즉흥 결정됐다. |
작품의 제목은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발레르’ 중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무결점의 사랑을 희구하다니 어딘가 불안하지만, 외려 영화는 ‘결점 가득한 사랑’이야말로 오래 유효한 마음임을 증명해 낸다.
어딘가 울적한 조엘(짐 캐리 분)은 밸런타인 데이에 회사를 땡땡이치고 몬톡 행 기차에 오른다. 그곳에서 파란 머리를 한 여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처음으로 만나 순식간에 끌림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서로 상처를 줬던 까닭에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Lacuna·라틴어로 잃어버린 조각)를 찾아가 연인의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았기 때문. 서로를 지워 냈음에도 이들의 본능과 추억은 우연히 몬톡행 기차에서 다시 사랑에 빠지도록 이끈다.
![]() 기억이 지워져가며 현실과 몽환의 공간들은 뒤죽박죽 섞여 간다. |
그럼에도 ‘이터널 선샤인’은 행복했던 과거와 불안한 미래를 각각 정·반 삼아 ‘연인들의 화합’이라는 결론(종합)에 도달한다. 사랑이란 애와 증, 호와 오의 공존임을 밝히는 치밀한 ‘영화적 변증’이다.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는 것은 일시적 축복일 수 있지만, 망각은 상대와 나의 실존을 회피하는 면도 있다. 주인공들이 기억을 되찾고 오히려 서로의 추태, 만상과 파렴치를 목도한 뒤에야 행복을 마주하는 것은 영화에 투사된 피히테적 사유의 일면이다.
“넌 또 날 거슬려하고, 난 널 지루해할거야”라는 클레멘타인의 불안에 조엘이 그저 “괜찮아(Okay)”라고 말하는 복도 씬은 여운을 준다. 이들을 보면 타자를 향한 사랑이란 모두 나 자신에서 비롯하는(혹은 향하는) 재귀적 감정일 뿐인 것 같다.
![]() “이 기억만은 남겨주세요”.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 ‘라쿠나’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삭제한다. 부서지는 집(기억)에서 마주한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 |
영화 속 색채 언어도 기억에 남는다. 작중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은 자신의 감정과 맞물려 수시로 변하는데 처음에는 우울(blue)로 가득 찬 파랑이었다가, 가장 뜨겁게 사랑할 때는 붉게 색을 바꾼다. 이 밖에도 노을 지듯 한 주황은 식어가는 사랑을, 초록은 갓 피어나는 초연의 풋풋함을 신록에 빗댄 미장센이다.
앞서 풀어썼듯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부서지는 ‘기억의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몬톡에서 만나”자고 하는 씬이다.
‘몬톡(Montack)’이 롱아일랜드 동북부의 ‘몬타우크’나 그 어느 곳을 지칭하더라도 좋다. 영화는 나만의 ‘몬톡 해변’을 거닐게 하며 기억 한구석을 헤집어 놓는 시간을 선사한다.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 같은 OST로 씨네 아스트(cineaste·영화 애호가)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시리즈온, 왓챠,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등 OTT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