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향기로 소환한 ‘80년 5월 광주’
선율 ‘5월 광주의 향기’ 공연…의인들 삶 ‘향기’ 모티브로 음악 무대
‘담배’ 냄새로 폭압적 분위기…‘구절초’로 주먹밥 나눈 대동정신 재현
5·18 연상되는 5개 향기 배포…윤상원·박기순·안병하 등 의인 추모
‘담배’ 냄새로 폭압적 분위기…‘구절초’로 주먹밥 나눈 대동정신 재현
5·18 연상되는 5개 향기 배포…윤상원·박기순·안병하 등 의인 추모
![]() 고(故) 안병하 치안감을 기억하며 그가 겪었을 심경을 유범상 탭댄서가 춤으로 표현하는 모습. |
1980년 5월을 떠올릴 때 저마다 연상되는 장면이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또 어떤 이들은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참혹한 모습을 생각한다.
80년 5월이 연상하는 냄새들이 있다. 양동시장의 주먹밥, 병원의 소독약, 총구에서 품어져 나오는 탄약 냄새 등등…. 그 시절 광주를 가득 채운 것은 어쩌면 ‘냄새’였을 지 모른다.
지금까지 5·18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 음악 등과 연계해 5월을 현재화했다. 이 같은 정형성을 깨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며 후각적 요소까지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공연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 25일 오후 광주 남구문예회관에서 (사)선율이 마련한 ‘5월 광주의 향기’가 그것.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당시 의인들의 삶의 ‘향기’를 모티브로, 음악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무대로 꾸며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주최 측이 밀봉된 ‘시향지’를 리플렛에 부착해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나눠준 뒤, 인터미션(막간)에 향과 5월 의인들을 설명하면서 냄새를 맡게 했다.
5·18 의인들인 윤상원, 박기순, 안병하, 양동시장 아주머니 등을 음악으로 추모하고, 이들과 어울리는 향기를 시향지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광주대 예술대와 독일 뮌스터음대에서 공부하고 공연 기획·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원영 씨가 기획했다.
“‘5월 의인들’의 아픔과 용기를 ‘향기’라는 매개체로 연계해 시민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조향업체를 통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다섯 개 향기를 만들었습니다. 공연을 보며 관객들이 아름다운 5월의 향도, 영령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도 느끼길 바랬죠.”
기획 과정과 공연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최 씨의 답이다.
가장 먼저 ‘광주 시민군의 향기’를 맡았다. 시향지에서는 초봄의 바람에 실려온 들꽃 같은 향기가 났다. 이와 맞물려 피아노, 오케스트라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했는데 향기와 음악 모두 밝은 느낌으로 전달됐다.
시민군의 향기는 광주 최초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서 야학생들을 가르쳤던 박기순, 5·18시민군 대변인으로 박기순과 영혼 결혼식을 올린 윤상원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들을 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밝은 톤으로 연주됐는데, 5·18의 상흔 때문인지 비극성이 더해졌다.
‘경찰의 향기’는 어떻게 표현될지 가장 궁금한 대목이었다. 최루탄 향기나 군홧발에 흩날리는 흙내, 곤봉을 쥘때 흩어지는 군경의 땀냄새 같은 악취가 연상됐기 때문. 경찰의 향은 고 안병하 치안감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자욱한 담배(tobacco) 냄새와, 포근한 나무(woody) 향을 섞은 것이었다. 대조되는 두 향을 섞은 까닭이 궁금해졌다.
당시 계엄군이 마구잡이로 시민군을 폭행하자,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은 ‘시민에게 총구를 겨눌 수 없다’며 신군부의 명령에 불응했다. 이로 인해 그는 수감돼 고문을 받았고, 이후 후유증으로 유명을 달리 했다.
“폭압적인 1980년대 분위기는 담배 냄새로 표현하고, 강직했던 안병하의 의지는 나무 향에 담아냈다”는 것이 최 씨의 설명이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탭댄스도 이목을 끌었다. 유범상 탭댄서의 절도 있는 춤사위와 호루라기 소리, 오케스트라 음악 그리고 전·의경들의 출동 행렬이 결합된 장면은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주먹밥을 나누며 대동정신을 발휘했던 양동시장 아주머니들의 향기는 ‘구절초’로 재현됐다. 섬세하고 포근한 엄마 품 같은 냄새가 공연장에 흩어졌다.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배고픈 시민군을 먹이고 용기를 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구절초 향은 특유의 향으로 광주 어머니들의 정신을 느끼게 했다.
가야금 연주도 들을 수 있었다. 서울대와 한양대 음악학과에서 공부한 정유경은 동·서양 악기를 크로스오버한 곡 ‘구절초’를 연주했다.
이외 광주 기독병원에 실려오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밤을 새웠던 의료진의 향은 ‘스피아민트’로 전해졌다. 상쾌하고 건강한 향기는 늦가을 정취와 어우러져 차갑고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김범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르스필하모니의 스트링 협연은 ‘불안’하고 ‘위태’롭던 병상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대미는 ‘진리는 침몰하지 않는다’ 멜로디를 변주한 곡이 장식했다. 음악은 어둠 속의 빛이 점차 커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빛’이라고 명명된 시향지를 코에 가져다 대자, 오월 영령들이 바라봤던 ‘빛’이 오감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80년 5월이 연상하는 냄새들이 있다. 양동시장의 주먹밥, 병원의 소독약, 총구에서 품어져 나오는 탄약 냄새 등등…. 그 시절 광주를 가득 채운 것은 어쩌면 ‘냄새’였을 지 모른다.
![]() 공연 시작과 함께 밀봉된 상태로 나눠준 시향지. |
“‘5월 의인들’의 아픔과 용기를 ‘향기’라는 매개체로 연계해 시민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조향업체를 통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다섯 개 향기를 만들었습니다. 공연을 보며 관객들이 아름다운 5월의 향도, 영령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도 느끼길 바랬죠.”
기획 과정과 공연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최 씨의 답이다.
가장 먼저 ‘광주 시민군의 향기’를 맡았다. 시향지에서는 초봄의 바람에 실려온 들꽃 같은 향기가 났다. 이와 맞물려 피아노, 오케스트라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했는데 향기와 음악 모두 밝은 느낌으로 전달됐다.
시민군의 향기는 광주 최초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서 야학생들을 가르쳤던 박기순, 5·18시민군 대변인으로 박기순과 영혼 결혼식을 올린 윤상원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들을 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밝은 톤으로 연주됐는데, 5·18의 상흔 때문인지 비극성이 더해졌다.
‘경찰의 향기’는 어떻게 표현될지 가장 궁금한 대목이었다. 최루탄 향기나 군홧발에 흩날리는 흙내, 곤봉을 쥘때 흩어지는 군경의 땀냄새 같은 악취가 연상됐기 때문. 경찰의 향은 고 안병하 치안감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자욱한 담배(tobacco) 냄새와, 포근한 나무(woody) 향을 섞은 것이었다. 대조되는 두 향을 섞은 까닭이 궁금해졌다.
당시 계엄군이 마구잡이로 시민군을 폭행하자,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은 ‘시민에게 총구를 겨눌 수 없다’며 신군부의 명령에 불응했다. 이로 인해 그는 수감돼 고문을 받았고, 이후 후유증으로 유명을 달리 했다.
“폭압적인 1980년대 분위기는 담배 냄새로 표현하고, 강직했던 안병하의 의지는 나무 향에 담아냈다”는 것이 최 씨의 설명이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탭댄스도 이목을 끌었다. 유범상 탭댄서의 절도 있는 춤사위와 호루라기 소리, 오케스트라 음악 그리고 전·의경들의 출동 행렬이 결합된 장면은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주먹밥을 나누며 대동정신을 발휘했던 양동시장 아주머니들의 향기는 ‘구절초’로 재현됐다. 섬세하고 포근한 엄마 품 같은 냄새가 공연장에 흩어졌다.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배고픈 시민군을 먹이고 용기를 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구절초 향은 특유의 향으로 광주 어머니들의 정신을 느끼게 했다.
가야금 연주도 들을 수 있었다. 서울대와 한양대 음악학과에서 공부한 정유경은 동·서양 악기를 크로스오버한 곡 ‘구절초’를 연주했다.
이외 광주 기독병원에 실려오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밤을 새웠던 의료진의 향은 ‘스피아민트’로 전해졌다. 상쾌하고 건강한 향기는 늦가을 정취와 어우러져 차갑고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김범구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르스필하모니의 스트링 협연은 ‘불안’하고 ‘위태’롭던 병상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대미는 ‘진리는 침몰하지 않는다’ 멜로디를 변주한 곡이 장식했다. 음악은 어둠 속의 빛이 점차 커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빛’이라고 명명된 시향지를 코에 가져다 대자, 오월 영령들이 바라봤던 ‘빛’이 오감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