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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찬란했던 여름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2023년 05월 18일(목) 00:00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저 문장이 말하는 사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근에는 되도록 많은 말을 하는 것이 미덕이 되고는 한다. 각종 SNS에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이 유망한 직업이 되기도 한다. 입을 다물지 않는 것은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대체로 입을 다물지 않고 끊임없이 남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궁금해 한다. 침묵에 빠지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침묵은 무관심이고, 무관심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위 문장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의 대사이다. 자신의 거대한 슬픔을 예기치 않게 들켜 버린 아저씨가 ‘나’와의 긴 산책길에서 한 이야기다. ‘나’는 무뚝뚝하고 애정이 없는 아버지와 늘 삶에 허덕이며 바쁜 어머니에게서 자라나 “네”라는 대답도 똑바로 못하는 아이이다. 어머니는 임신했고, 나에게는 곧 태어날 막내를 제외하더라도 세 명의 형제가 더 있다.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아이가 없는 먼 친척이 여름 동안 나를 돌보기로 한다. 애정이 없는 가정에서 벗어나, 안면이 없는 타인에게 떠맡겨진 것이다. 나를 친척 집에 데리고 온 아버지는 딸을 마치 귀찮은 짐을 대하듯 한다. 그의 작별 인사는 간단했다.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너.”

소설의 배경은 1981년 아일랜드 시골 마을이다. 1980년대 아일랜드라면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접한 적이 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의 음악을 통한 소년의 성장담이었으니,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침묵을 통한 소녀의 성장담인 ‘맡겨진 소녀’와 묘한 대구를 이루는 게 흥미롭다. 시대적 배경을 짧은 지면에서 모두 풀 수는 없으나, 우리만큼 엄혹했던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도시와 시골 아이들은 공히 무심하고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던 듯하다.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타인이나 다름 없는 친척에게 아이를 빨리 맡기고 돌아가고 싶어 하고, 친척의 이웃들은 처음 보는 소녀에게 친절하지 않은 호기심을 보인다.

그러나 킨셀라 부부는 달랐다. 첫날 긴장한 탓인지 매트리스에 오줌을 싼 나를 혼내지 않고, 방이 원래부터 습해 매트리스에 습기가 찼다고 말해 준다. 뉴스에서는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의 단식과 사망 소식이 들리지만, 킨셀라 부부 집에서 나는 잠깐의 반짝이는 시절을 보낸다. 아저씨는 나의 재능을 알아봤는지 달리기 연습을 시키며 매일 기록을 체크한다. 아주머니는 나의 발가락이 길고 멋지다고 칭찬하며 잠들기 전 귀지 청소를 해 준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거나 호들갑스러운 친절을 베푸는 건 아니지만, 나를 오래 알아 온 사람들처럼 담담한 사랑을 준다. 마치 그 또래의 딸이나 아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어떤 비밀이 있었던 걸까? 비밀 아닌 비밀은 “입 다물기 좋은 기회를 놓친” 이웃에게서 나에게로 전달된다. 킨셀라 부부는 지금의 나 정도의 아들을 사고로 잃은 것이었다.

소녀에 대한 부부의 친절과 환대를 아들을 잃은 데에 대한 보상 심리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 이웃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하나 부부는 나 혹은 나의 부모 중 누구라도 원하는 날짜에 소녀를 보내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전의 일상을 맞이하며 자신에게서 윤슬처럼 반짝이는 한 시절이 끝난 것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아저씨가 반복해 알려 준, 자신의 빠른 발로 되돌아가는 부부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내 킨셀라 아저씨를 안고서, 경고하듯 부른다. “아빠”. ‘맡겨진 소녀’는 누구나 한번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짧은 소설이지만, 누구라도 한 번만 읽을 수 없게끔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목가적인 풍경 묘사 속에, 인물들의 자분자분한 대화 안에 숨은 장치는 두 번 읽고 세 번 읽을 때 다시금 그 정체를 드러낸다. 정교하고 정밀하게 다듬어진 소설이되, 감정은 흐드러지고 슬픔은 도타워진다. 이렇게 ‘맡겨진 소녀’는 소설은 읽은 모두를 각자의 유년으로, 그 시절의 여름으로, 그 찬란하고 슬펐던 빛 속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