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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도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2023년 04월 04일(화) 21:30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홍콩, 그리고 서울.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얼핏보면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나 문화도시같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도시(Art Capitals)들이다. 지난해 10월 ‘하늘을 날으는 특급호텔’로 불리는 글로벌 비즈니스용 항공기운영사 ‘비스타젯’(VistaJet)이 갤러리·미술관 수, 미술이벤트(아트페어, 비엔날레 등), 구글평점을 토대로 선정한 ‘세계 10대 미술도시’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서울은 갤러리 116개·미술관 9개로 6위, 홍콩은 갤러리 73개·미술관 8개로 10위를 기록해 아시아의 체면을 세웠다.

이들 가운데 홍콩의 선전이 눈에 띈다. 지난 2015년 세계적인 온라인 미술플랫폼 ‘아트시’(ArtSY)가 발표한 ‘세계의 15대 미술도시’에도 뽑힌 홍콩은 초대형 복합단지인 ‘서구룡 문화지구’에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M+’건립에 이어 2013년부터 아트바젤을 유치해 일약 국제미술시장의 메카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미술도시를 내걸고 도시 브랜딩에 올인하는 곳이 있다. 영화의 도시 부산이다. 지난해 4일간 열린 부산아트페어는 210억원의 매출과 관람객 12만 명을 기록해 서울에 이어 한국 미술시장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지난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악조건에도 무려 260억 원의 판매고를 올려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부산에 분관을 개설했다. 이쯤이면 ‘미술도시’에 욕심낼 만 하다.

지난달 23일 광주에서도 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광주미술협회 등 12개 기관·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미술 도시 광주 민관협치 회의’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김광진 광주시문화경제부시장이 주재한 민관협치회의는 매월 두차례 모여 미술도시 조성을 위한 전략, 사업방안을 논의하는 등 명실상부한 미술도시로 거듭난다는 포부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미술도시’ 프로젝트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하부구조격’인 미술도시를 표방하고 나선 건 오히려 도시의 위상을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빈약한 지역 미술생태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미술도시를 운운하는 건 광주비엔날레 개막(4월7일)을 앞둔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쓴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이날 ‘미술도시’선언을 할 예정이었던 강기정 시장이 ‘내용이 없다’며 불참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했던 ‘미술도시광주 선언’은 연기됐다.

사실, 광주의 미술인프라는 열악하기 그지 없다. 현재 한국화랑협회에 가입된 169개 회원사 가운데 광주지역 화랑은 고작 2곳으로, 서울 124개, 부산 19개, 대구 15개와 비교가 안된다. 또한 지난해 열린 광주아트페어는 4일간 관람객 3만2000여 명, 매출 22억 3000만원에 그쳐 ‘미술불모지’라는 오명을 얻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광주의 ‘민낯’을 본 외지 갤러리들은 두번 다시 광주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말 보다 실천이다. 아시아문화수도, 동아시아 문화도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등 광주를 상징하는 타이틀은 많지만 이를 통해 도시를 업그레이드 하는 브랜딩은 미미하다. 그런데 이젠 ‘미술도시’라니...새삼,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