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아닌 주인공으로 살았던 ‘조선의 센 언니들’ …조선의 걸 크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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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아닌 주인공으로 살았던 ‘조선의 센 언니들’ …조선의 걸 크러시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임치균 외 지음
2023년 03월 11일(토) 10:00
검녀, 다모, 윤희순, 이매헌, 김금원, 하옥주, 부랑….

위에 언급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주체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며 살았던 조선의 여성들이다. 쌍칼을 든 검객에서부터 전쟁 영웅이 된 기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 여성들은 요조숙녀와 현모양처라는 정체성을 넘어 억압적 세계와 맞서는 삶을 살았다.

영어 어휘에 ‘크러시’(crush)가 있다. ‘눌러 부수다’, ‘박살내다’라는 뜻을 지닌 크러시는 파괴적인 행동과 연관이 있다. 억압에 지배당하지 않고 불의한 현실과 맞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을 말할 때 쓰이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말하면 위에 열거한 여성들은 요즘말로 하면 ‘조선의 걸 크러시’다. 일명 ‘조선의 센 언니들’이다. 이들은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여성들보다 주체성을 견지하며 ‘주인공’의 삶을 살았던 이들을 주목했다.

제목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조선의 걸 크러시’에서는 조선의 여성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실존 여성 또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 알려진 여성들의 특별한 삶과 서사를 모았다.

저자는 모두 4명.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강문종 제주대 국문과 부교수, 임현우 덕성여대 글로벌교육원 초빙교수, 이후남 전주대 인문과학종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참여했다. 사제지간인 이들은 실록이나 문집을 포함해 한문단편소설, 야담 등을 기본 텍스트로 분석하고 기존 연구 성과를 참조해 책을 펴냈다.

모두 40가지 이야기는 조선 여성들에 대한 오해를 씻겨낸다. 각각의 이야기는 강렬하면서도 짜릿하다. 지레짐작으로 궁중의 여성들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조선의 걸 크러시는 한류 열풍의 원조로 꼽히는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 서장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의녀 장금의 기록을 모티브로 탄생된 캐릭터가 바로 대장금이다.

그러나 언급한 대로 책에는 궁중 여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남성을 능가하는 시문을 짓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했던 여성, 남편을 길들여 출세시킨 여성 등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조선의 시인 김금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고작 14세 때 남장을 한 채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한다. 제천 의림지를 시작으로 단양,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한양의 남산까지 오른다. 1830년에 앳된 소녀가 그런 일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춤추듯 쌍칼을 휘둘러 원수를 갚은 이도 있다. 그 여성은 양반집 아가씨의 몸종이었는데 검객에게서 검술을 배웠다. 아가씨가 9세 무렵 권세가에 의해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했던 것이다. 몸종은 아가씨와 함께 원수의 집을 찾아가 복수를 한다. “달빛을 타고 춤을 추듯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칼날이 닿는 곳마다 머리가 떨어져 금방 수십이 되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여성의 칼 다루는 솜씨가 어떠한지 보여준다.

‘여성 의병장’ 윤희숙 이야기는 애국하는 데 남녀 구별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유생을 중심으로 의병 운동이 전개된다. 윤희숙은 의병에 나가려고 하지만 시아버지의 간곡한 만류로 다른 방안을 모색한다. 전투에 나가지 않고도 싸울 수 있는 방식, 즉 군자금을 모으고 화약과 탄약을 만들어 보낸다.

조선 여성 사업가로 만덕을 빼놓을 수 없다. “배를 만들고 다스리는 해양 운송업에 능했으며, 한양과 제주의 물가 변동을 분석해 상품 거래의 시점을 정했다. 특히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재산을 지역사회로 환원해 위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는 등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했다.”

이밖에 책에서는 군복을 입고 전쟁터로 달려간 소녀 부랑과 소설가로 이름을 떨친 전주 이씨, 조선 최고의 여가수 석개 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민음사·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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