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고려인들, 전쟁 트라우마 속 치열한 삶…“한국 정착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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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고려인들, 전쟁 트라우마 속 치열한 삶…“한국 정착하고 싶어요”
우크라이나전쟁 1년 - 광주 고려인 마을서 피난생활
입국 875명 중 600여명 광주 정착…지역사회 모금 항공권 등 도움
홀로 입국 17세 소녀 “남은 가족·친구 걱정…전쟁 빨리 끝났으면”
2023년 02월 23일(목) 21:10
우가이 엘레나
“하루 빨리 전쟁이 종식되길 원하지만, 전쟁 트라우마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보다는 한국에 정착해 살고 싶어요”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떠나 광주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들의 말이다.

24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1년을 맞았다. 23일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은 광주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광주에 온 고려인은 총 875명으로 이 중 600여 명이 광주에 정착했다.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모인 9억 원의 성금이 이들의 귀국과 정착을 도왔다.

전쟁은 고려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전쟁의 아픔을 잊기 위해 오히려 힘들게 일하면서 정착을 위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다닐첸코 알레프 지나
지난해 7월 전쟁을 피해 광주에 온 다닐첸코 알레프 지나(여·37)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고려인마을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 잠시 앉지도 못했지만, 힘든 기색을 내기보다는 더 열심히 움직이기 바빴다.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 지역에서 자녀 2명과 함께 살던 지나씨는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집 근처가 초토화되자,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기로 결심했다.

고려인마을 종합센터에서 항공권을 받아 광주에 도착한 뒤, 보증금과 생필품 등을 지원받아 광주에 정착했다. 다음달에 17살 아들은 새날학교, 8살 딸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지나씨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조금도 힘들지 않다”며 “밤 10시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들과 딸이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데, 서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하루의 낙이다”고 웃었다.

칠순을 앞둔 안 알렉산더(69)씨도 직업을 찾고 있었다.

안 알렉산더
지난해 4월 아내, 딸, 손녀와 함께 한국에 입국한 알렉산더씨는 “우크라이나 집이 폭격으로 무너져 한 달간 지하에 피신해 살았다”며 “힘들게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딸이 혼자 돈을 벌며 온 가족을 돌보고 있고, 손녀는 청각장애까지 있어 어려운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미안한 마음이 커 작은 일이라도 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다”며 “노인을 위한 일자리 지원 사업 같은 것이 있으면 나같은 노인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더 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고려인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미콜라이프 지역에서 온 우가이 엘레나(여·17)씨는 “아직도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면서 “잠을 자다가도 옆집에서 무언가 쿵 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나거나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난다”고 말했다.

엘레나씨는 가족과 함께 살다가 전쟁을 피해 홀로 한국에 입국했다. 아버지와 오빠는 남성이라 외국으로 나갈 수 없어, 자신이 먼저 광주에서 일하고 있던 오빠를 찾아온 것이다.

엘레나씨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까지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다”며 “아직도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돼 잠이 오질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 대표는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고려인 대다수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어엿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광주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고려인들이 많다”며 “이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글·사진=천홍희 기자 str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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