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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값만 ‘나홀로 하락’…취약계층 ‘생계 한숨만’
광주 폐지 줍는 노인 따라가보니
코로나에 물량 늘고 수요는 줄어
폐지값 1년새 ㎏ 당 154→126원
하루 12시간 일하고 겨우 3만원
광주·전남 폐지 줍는 노인 1196명
“밥값은커녕 용돈벌이조차 안돼”
2022년 10월 06일(목) 20:35
고물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정현기(73) 씨가 145㎏가량 되는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있다.
한 시간 동안 걷는 거리 1.3㎞. 한 시간 동안 걷는 걸음 3154보.

20년 동안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정현기(73·광주시 북구)씨가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움직여 줍는 폐지는 32㎏에 달하지만 정씨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고작 2600원이다.

30여년 전 갑자기 중증 청각장애가 생긴 정씨는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아 생기는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정씨는 새벽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넘게 70㎏이 넘는 리어카를 끌고 광주시 북구 오치동을 헤매고 다닌다. 폐지를 가득 담으면 리어카 무게가 140여㎏에 달한다.

가득찬 리어카를 끌고 밤까지 하루 5~6차례 고물상을 왕복해 그가 손에 쥐는 돈은 3만원이 겨우 넘는 수준이다.

지난 5일에도 정씨는 여느때처럼 해가 진 오후 8시가 다 돼서야 텅빈 리어카를 끌고 혼자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날 13시간 동안 16.9㎞, 4만여 보를 걸었다. 열심히 폐지를 모으느라 손에 상처가 생겼지만 폐지 팔아 받은 꼬깃한 천원짜리 지폐 수십 장과 동전을 호주머니에 담을때는 행복하다고 했다.

듣지 못한채 차로변과 골목길을 누비다 보니 교통사고 등 위험천만한 순간도 많이 겪고 있지만, 정씨는 “그래도 난 수십 년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벌이가 나은 편이다”면서 “몸이 건강하니 이렇게 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웃음 지었다.

이런 정씨에게도 최근 걱정이 생겼다. 연일 물가가 치솟는데 정씨의 밥벌이 수단인 고물 가격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찬바람이 불면서 폐지와 고물을 주어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차상위계층 노인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6일 순환자원정보센터의 재활용가격을 보면 전남지역 폐지(신문지) 가격은 지난해 8월 ㎏당 156원이었으나 1년 만에 141원까지 떨어졌다. 폐골판지 가격도 지난해 8월 ㎏당 154원에서 올해 126원까지 떨어졌다.

폐지 뿐 아니라 일상에서 수집할 수 있는 고철과 캔 가격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고철은 지난해 8월 ㎏당 428원에서 338원까지 떨어졌고 캔은 386원에서 258원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차상위계층의 수입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유모차에 폐지를 담아 파는 손영주(여·63) 씨는 “전에는 밥 한 끼라도 사 먹을 돈이 나왔는데, 지금은 오른 밥값은커녕 용돈조차 안 된다”면서 “생계를 위해 고물을 줍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고공행진중인 원자재 가격과 달리 고물 가격이 떨어지는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활용 쓰레기들이 늘어 버려지는 폐지와 재활용이 늘고 있는 반면에 고물 줍는 사람들 또한 늘어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차상위 계층이 아님에도 부업으로 폐지와 고물을 주워 파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이 광주지역 고물상의 설명이다.

광주시 북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황복순씨는 “고물 가격이 코로나 전에 비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까지 떨어졌다”면서 “마진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값이 싸면 고물을 가져오는 분들한테도 돈을 적게 줄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서울 강서갑)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광주·전남에서 폐지를 주어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 1196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폐지수집 노인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12.3㎞이었으며, 노동시간은 11시간 20분으로 나타났다.

/글·사진=민현기 기자 hyun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