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우 관장의 유럽 미술축제 관람기-(상) 독일 카셀 도큐멘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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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우 관장의 유럽 미술축제 관람기-(상) 독일 카셀 도큐멘타를 가다]
첫 아시아 그룹 감독···파격 선택한 ‘현대미술의 올림픽’
1955년 창설…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루앙루파’ 전시 사령탑 맡아
인간 역사·자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비판 담은 작품 대거 선보여
20만 명의 독일 소도시, 세계 3대 전람회로 현대미술의 도시 부상
反유대주의 드러낸 작품 철거 등 악재로 이슈 메이킹 의도 논란도
2022년 07월 12일(화) 23:00
장현우 관장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아트 바젤….

2022년 세계 미술계는 그 어느 때 보다 축제 열기로 뜨겁다. 코로나19로 개최가 불투명했던 지구촌의 최대 격년제 미술이벤트인 베니스 비엔날레(5월13일~11월26일)를 필두로 글로벌 아트페어인 스위스 아트바젤(6월15~18일), 5년에 한번씩 열리는 현대미술의 제전 ‘카셀도큐멘타’(6월10일~9월25일)가 동시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미술축제가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개최되는 것은 관람객에게는 한번에 두루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달 초 도시재생과 예술관광을 목표로 독일 카셀 도큐멘타와 베니스 비엔날레, 암스테르담 등의 미술관을 둘러 보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 장현우 관장의 관람기를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

오랜 시간 예술가로 살아오다 예술경영과 기획자로 활동을 확장한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때 부터 시작한 해외 아트투어는 처음엔 예술가로서 시야를 넓히고 싶은 목적이었다. 하지만 도시재생과 전시기획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관련 분야의 안목을 높이고 문명기저의 폭넓은 통찰을 위해선 아트 투어야 말로 예술기획의 인문적 바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2017년의 그랜드 아트투어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해는 마침 10년 주기의 독일 뮌스터 조각페스타는 물론 5년주기의 카셀도큐멘타, 2년 주기의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매년 열리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가 동시에 열렸기 때문이다. 한 개도 아닌 무려 4개의 빅 이벤트를 한번의 방문에 둘러 봤다는 뿌듯함에 앞으로 5, 10년 주기의 아트투어는 꼭 참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펜데믹 상황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2017년의 그랜드 아트투어에 버금가는 빅 이벤트들이 펼쳐져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관람객들이 헝가리 작가 터머시 펠리의 대형 회화 ‘탄생’을 감상하고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카셀은 독일 중부 헤센주에 속한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다.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처럼 한국인에게는 그리 친근한 도시는 아니지만 미술계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다. 다름 아닌 5년에 한번씩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는 카셀도큐멘타 때문이다. 1955년 독일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창설된 카셀 도큐멘타는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현대미술 전람회로 꼽힌다. 도큐멘타(Documenta)는 히틀러에 의해 퇴폐예술로 낙인된 전위예술을 재조명하고 독일의 어두운 과거 이미지를 예술로 불식시켜 문화국가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선전하려는 의도에서 정부와 민간 예술계가 손잡고 창설됐다.

‘반유대주의 폭탄 맞은 카셀’. 2022 카셀 도큐멘타는 반유대주의 작품 철거 등의 악재로 제대로 이슈메이킹이 가동된 듯 했다. 그 논란의 시작은 기획자 발탁이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하는 9명의 아트그룹 ‘루앙그루파(Ruangrupa)’가 올해 카셀 도큐멘타의 전시사령탑을 맡은 것이다. 제 3세계 미술로 분류할 수 있는 동남아국가에서, 그것도 한명이 아닌 그룹으로 감독을 선임한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카셀 도큐멘타 최초의 아시아계라는 점은 국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루앙그루파는 다큐멘터리 집단적 작업방식과 생태학적 사회적 개념에 기초한 작업을 통해 시간, 돈, 아이디어, 지식 등의 자원이 총체적으로 공유되는 집단성과 공유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서구 중심의 지구촌 식민주의와 현대문명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인류에게 당면한 시급한 문제와 이슈를 예술로 풀어내기 위해 전시장을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외부 공간으로 외연을 넓혔다.

15회째를 맞는 올해는 펜데믹 상황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높아진 분위기 속에 지난 6월18일 개막을 알렸지만 오픈과 동시에 이튿날 프리드리히 광장 중앙에 설치한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작품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나치즘과 유태인 학살 등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독일사회에서 민감한 사안이 부각되자 카셀의회에서는 즉각 작품을 철수하도록 촉구했고 당초 기획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일사회로 부터 반발을 초래한 것이다. 출품작 가운데 ‘민중의 정의(People’s Justice)’는 인도네시아 아트그룹 ‘타링 파디(Taring Padi)’가 제작한 것으로 오스트리아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그 과정에 손상된 부분을 수리복원해 카셀로 옮겨와 오프닝 이후 설치했다. 하지만 개막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휩싸이며 검은 장막에 둘려진 이후 다시 보관컨테이너에 되돌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슈메이킹을 위한 헤프닝 정도로 생각했던 이 사건은 본전시를 직접 관람한 이후 많은 생각과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첫째, 2008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이 엔위저 감독이 2002년 단한번 참여한 것과 1997, 2012년 두번의 여성감독 외에 대부분의 백인 남성이 전시 감독을 맡았던 관행과 비교하면 분명 이번 첫번째 아시아계 감독선임은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열린 행사에서 루앙그루파의 경력과 출신에 대한 논란과 함께 반유대주의 사건이 겹치면서 향후 감독선임에 대한 숙제를 남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선례가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에 아직 3세계 미술로 분류되는 한국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 이슈메이킹으로 무리하게 행사를 홍보하는 전략이 우려스러웠다. 그동안 감독선임이나 전시기획에 대한 논란은 매회 있었던 일이며 이슈 또한 여러 형태로 기획됐지만 이번 사건은 이전의 어떤 예술·사회적 이슈보다 근간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독일사회의 민감한 상처를 건드린 것은 차치하고,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자본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상당한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5년만에 방문했지만 이전 행사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광장과 거리에 즐비했던 상인들과 가득 매웠던 관람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평일 방문이라는 점을 빼놓을 순 없지만 예전에 비해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했으며 광장에도 설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본 전시장인 프레데리치아눔(Fridericianum)외에 우체국을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erie)외 여타 전시장도 아예 전시가 없었다. 규모가 적어지고 전시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전체 구성도 산만해 보였으며 동선까지 단순해 비교가 많이 되는 행사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2022 카셀도큐멘타는 바이러스 펜데믹 이후 사회 변화와 발언에 충실했는지, 최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구촌 전쟁에 대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에 못미치는 행사로 기억될 것 같다. 100일의 대장정을 거치고 다시 5년 뒤 개막하는 카셀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며 세계를 이끌 것인가, 자못 기대된다.

장현우 담빛예술창고 관장. 화가, 문화기획 경영, 도시재생개발, 전남도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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