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날씨에 대하여-김향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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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 날씨에 대하여-김향남 수필가
2022년 06월 26일(일) 22:30
엊그제는 집안의 대사를 앞두고 유독 날씨에 신경이 쓰였다. 받아둔 날이 임박해 올수록 걱정은 더욱 커져서 수시로 예보를 살피는 것은 물론 내가 아는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직 ‘맑음’을 간청했다. 한편으로 만약에 비라도 내린다면? 돌풍이라도 불어서 식장의 모든 것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상상들로 끔찍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물론 상황대로 해야겠지만 그만큼 낙담도 클 것이다.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를 위해서도, 찾아오는 하객들을 위해서도 ‘그날’만큼은 최고로 화창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만 간절했지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은 언제나 변화무쌍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날씨는 흐렸다 맑았다, 비가 왔다 그쳤다, 바람이 불었다 안 불었다, 안개 자욱했다가 걷혔다가, 추웠다 더웠다 종잡을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색을 바꾸지만 왜 그런가 따질 수도 없다. 이 도도한 권력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조용히 그의 안색을 살펴보는 것뿐이다.

날씨를 예측해 보려는 인류의 노력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오른다. 수렵시대를 거쳐 농경시대로 들어오면서 날씨는 생존과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관천망기(觀天望氣)의 지혜를 짜내서라도 앞날을 점치고자 갖은 애를 다 썼다. 농업기술의 발달 및 산업화를 거치면서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이제는 확실하게 믿을 만한 예보도 가능하게 되었다. 비 올 확률 몇 퍼센트, 강수량은 얼마, 수치까지 측정 가능한 시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백퍼센트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근래에는 기후변화라는 큰 변수까지 더해져 돌발 상황 또한 빈번해졌다. 폭우 폭설 폭염이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가 하면, 오랜 가뭄으로 논바닥까지 쩍쩍 갈라진다. 공포와 두려움을 동반한 험상궂은 얼굴로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한다. 그동안 행해진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은 한층 위압적으로 변화했다.

자연의 대변자로서 날씨는 완벽한 자유와 힘을 가졌다. 천의 얼굴을 하고서도 태연자약한 표정이다. 폭우를 퍼붓고 산사태를 일으키고 해일을 몰고 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도 언제 그랬냐 싶게 말쑥한 모습이다. 시치미 뚝 떼고서 천연덕스럽게 평화의 노래를 부른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마구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다정히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날씨는 카오스다. 그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혼돈이다. 날씨는 그 형상 그대로 자연이고 운명이다. 마음에 들거나 안 들거나, 우리의 능력 너머에 존재하는, 다만 있을 뿐인 어떤 것!

다행히도 그날 날씨는 더없이 좋았다. 오후 서너 시쯤 소나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비껴간 온전히 맑은 날씨였다. 초여름의 태양은 적당히 뜨거웠고 바람은 살가웠다. 거동은 자유로웠고 주인공들의 얼굴은 무한히 행복해 보였다. 안도감과 함께 새삼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다. 이미 약속해 놓은 날인 만큼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어김없이 치러야 할 일이었지만 날씨의 도움 없이는 턱없이 곤란한 일이었다. 이만한 행운이 어디 있을까. 막강한 지원군을 얻은 듯 한껏 고무되는 날이었다.

그날, 비가 왔다면 어땠을까. 바람 몹시 불고 천둥 번개 요란스러웠다면? 뭔가를 가정해 본다는 것은 실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수한 변수를 가진 날씨 앞에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맑을지 흐릴지, 비가 올지 바람이 불지, 어떤 상황도 피할 수 없을 때, 그럴 때의 마음을, 그때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비 오고 바람 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햇볕 쨍쨍한 것도 어쩔 수 없다. 원하는 날씨를 골라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객관적인 날씨는 어쩔 수 없어도 주관적 경험이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날씨가 아니라 날씨를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날씨 탓을 해대며 귀한 시간을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날씨도 없고 나쁜 날씨도 없다. 문제는 날씨가 아니고 마음가짐일 것이다. 세상을 향해 기꺼이 열린 마음을 갖는 것.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명대사가 생각난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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