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광주일보·호남문화재연구원 문화강좌]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 “탐라 성장, 마한과의 교류가 중요한 역할 해”
탐라권역 마한계 유물 다수 출토
영산강유역 거점으로 교역 개척
2022년 05월 15일(일) 23:00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이 지난13일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열린 ‘한국 역사문화권의 성격과 의미’ 강좌에서 강연하고 있다.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고대 탐라의 성장과정에는 영산강 유역 집단과의 교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13일 광주일보사가 창간 70주년을 맞아 (재)호남문화재연구원(원장 신흥남)과 공동개최한 ‘한국 역사문화권의 성격과 의미’-탐라역사문화권 강좌에서 ‘고대 탐라의 대외교류 특징’을 이같이 요약했다.

김 부원장은 “탐라권역에서 3∼5세기대 출토되는 외래계 유물을 살펴보면 영산강 유역의 범마한계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며 “탐라를 대표하는 외도동식토기와 영산강 유역에서 성행했던 토기들이 함께 출다는 것은 같은 시기 탐라가 영산강 유역을 비롯한 서남해안 지역의 마한세력과도 긴밀한 교류를 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실제 탐라권에서는 영산강 유역에서 가장 성행했던 이중구연호(二重口緣壺)와 양이부호(兩耳附壺)가 다수 발굴된다. 역으로 제주산 토기도 사천 늑도패총, 해남 군곡리 패총, 나주 복암리 유적과 수문패총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는 “탐라는 3세기 후반∼4세기대까지 변·진한으로부터 공급받던 철을 수입하기 위해 김해지역에 성립된 금관가야 교역루트를 개척했다”며 “이는 영산강유역을 거점으로 경제적인 분야의 선진문물 수입을 지속하는 한편, 정치적 교섭이 중요한 철의 수입은 아라가야와 연결되는 교역루트로 전화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탐라 고대사의 여명과 성장과정 등도 소개했다. 김 부원장은 “탐라 출현 이전의 제주의 기층문화는 주호(洲胡) 집단이며, 탐라 정치체제의 등장은 3세기를 전후한 때”라며 “탐라는 한반도의 정치적 영역변화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백제의 영토확장과 신라의 삼국통일기에는 신속, 혹은 경략대상으로 전락하였고 외교권이 위임되거나 정치적으로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김 부원장은 제주지역 고대사에 대한 최근 경향도 소개했다.

“일부 문헌사쪽에서 고대 제주를 탐모라, 하침라 등으로 비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러 정황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제주 학계의 연구경향은 이들 지역을 전남 서남해안 지역으로 보는 쪽이 많습니다. 이들 지역은 서남해안 지역의 거점적인 교역항로상에 있던 세력으로 보는 것이죠.”

그는 제주 고대문화의 특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제주에는 고총고분이 발견되지 않아 탐라의 지배계층에 대한 위계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고대에 긴밀한 교류를 했던 마한의 연구성과가 축적되면 탐라 연구도 진전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강좌는 지난해말 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의 마한(馬韓) 역사문화권에 광주권역이 포함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광주일보사와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지역민의 지역 고대사에 대한 인식과 안목을 넓히고 타 문화권과 비교를 통해 마한역사문화권 사업 추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강좌를 열고 있다.

강좌는 오는 6월 24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5시 전일빌딩245 다목적 강당에서 열린다. 오는 20일에는 문안식 동아시아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예맥역사문화권 강좌가 진행된다. 지난 강좌는 유튜브(한국 역사문화권의 성격과 의미)에서 시청할 수 있다. 문의 호남문화재연구원 기획사업실(전형민 061-383-3640).

/글·사진=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