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 기나긴 여정…의사 시인 한경훈 첫 시집 ‘귀린’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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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기나긴 여정…의사 시인 한경훈 첫 시집 ‘귀린’ 펴내
나주출신, 2020년 등단
2022년 05월 01일(일) 21:10
시보다 더 시적인 ‘시인의 말’을 접할 때면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에 호기심이 인다. 혹은 시인이 시 외에 밥벌이를 삼고 있는 ‘사회적 존재’는 무엇인지 가늠하게 된다. 시와 작품은 별개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경훈의 시는 ‘시인의 말’에서 시적 지향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삶과 죽음 사이의 기나긴 여정을 하나의 여행으로 묘사하는 걸 보면, 시인이 생명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예상하게 된다.

“타지에서 몸을 씻는 내 여객의 쓸쓸함은 물방울 같은 그런 것일까. 샤워 거울과 십이월의 공기, 새벽의 기시감이 체취처럼 서 있다. 이유 없이 누구나, 언제인가 와 보았을 여기 여관에 시간이 흐른다. 퍼런 인광이 흩어진다. 아, 가여운 우리 유령들이여.”

의사 시인 한경훈이 첫 시집 ‘귀린(鬼燐)’(현대시학)을 펴냈다.

모두 60여 편의 작품이 담긴 시집은 신화적이면서도 초월적이며 한편으론 현실적이다. 오랫동안 갈고 다듬은 언어들은 술술 읽히면서도 묘한 깊이를 선사한다. 화자가 이편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듯한 어조가 친근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채종국 시인이 “그의 시는 고통,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을 연약한 존재의 체험적 진술로 드러내 보인다”고 표현한 것에서 보듯 시인은 의사로서의 체험을 예리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시적 상황으로 그려낸다.

표제시 ‘귀린(鬼燐)’은 도깨비불을 말한다. 다소 몽환적인 이미지의 시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실을 반추한다. 다음의 시 ‘눈 있는데 볼 수 없네’에서 환기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귀린’의 이미지다.

“희미한 새벽이 찾아오면 나의 빨간 집으로 안개처럼 흘러 들어가, 익숙한 오른손이 기척을 찾아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그의 자유로운 오른손 칼이 내 먼 생을 끌어와, 푸르스름한 나를 조각하곤 하였다.”(‘눈 있는데 볼 수 없네’ 중에서)

다소 신비로운 느낌과 환상적 이미지는 화자가 현실과 의식의 어느 지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훈 평론가는 “언제라도 우리의 생활세계로 끼어들면서 공존하는 푸른빛의 존재다. 시인은 그것을 잡아 끌어와 혹은 그것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세계가 안겨준 피곤함과 고통의 속내를 가늠했을지도 모른다”고 평한다.

한편 나주 출신 한경훈 시인은 2020년 ‘작가’로 등단했으며 한국의사시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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