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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 자연과 예술이 흐르는 ‘물 위의 미술관’
한라산 기슭 ‘도깨비 도로’ 인근에 자리…2009년 개관
사계절 수려한 자태 ‘한폭의 풍경화’…유리 중정은 ‘열린 캔버스’
변시지 ‘풍파’ 등 작품 889점 소장…도민 맞춤형 문화프로그램도
2021년 12월 20일(월) 00:45
지난 2009년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은 절제된 외관과 자연을 끌어 들이는 격자 프레임 건물, 연못위에 떠 있는 듯한 독특한 조형미로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예로부터 삼다도(돌, 바람, 여자)로 불리는 제주도는 이제 ‘사다도’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크고 작은 미술관, 박물관 100여 개가 섬 전역에 들어서 있어서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은 단연 으뜸이다. 제주시 한경면의 김창열 미술관, 현대미술관과 더불어 제주도가 건립한 미술관은 이들 3대 도립미술관의 본가이자 제주비엔날레의 주무대이다. 특히 미술관 건물을 둘러싼 연못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장관을 자랑한다. 지난 2009년 개관되던 해에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빼어난 건축미로 유명하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중산간 지역에 들어선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을 최대한 살린 곳이다. 관광객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도깨비 도로’(오르막을 차가 내려가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도로)와 가까운데다 수려한 자연 풍광을 품고 있는 한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제주도립미술관 내부 계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미술관쪽으로 걷다 보면 마치 공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제주산 화산암이 깔린 진입로와 다양한 수종의 나무, 그리고 드넓은 정원에 설치된 조각 작품들이 파노라마 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번잡한 도심의 미술관에선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이다. 미술관앞에 다다르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절제된 분위기의 외관과 주변의 자연을 끌어 들이는 격자 프레임, 건물을 품고 있는 연못은 그 자체만으로 독특한 조형미를 연출한다.

물위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는 또 하나의 미술관을 보는 듯 하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자태를 드러내는 미술관은 제주의 하늘, 물, 공기, 그리고 빛이 공존하는 한폭의 풍경화다. 그래서일까. 연못과 미술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연못을 거울 삼아 자신을 되돌아 보는 이들의 모습에서 사색과 명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연못을 가로 질러 미술관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천장이 뻥 뚫린 중정이 시선을 끈다. 네개의 면이 유리로 마감된 중정은 제주의 사계를 실내로 끌어 들이는 ‘열린 캔버스’다.

제주도립미술관은 민간투자시설사업(BTL) 방식으로 3만8744㎡ 부지에 연면적 7087㎡의 규모(지하 2층, 지상 2층)로 건립됐다.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수장고, 장리석기념관, 시민갤러리, 실기실, 강당, 세미나실 등 미래지향적인 콘셉트와 다목적 공간이 특징이다. 모던한 분위기의 노출 콘크리트와 현무암으로 마감된 건물은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반영하는 ‘화이트 캔버스’ 같다. 노출 콘크리트는 기하학적 비례를 이루는 상자가 중첩된 형태로 구성돼 열림과 닫힘의 조정으로 형태와 공간을 구현한 점이 흥미롭다.

건물 1층에는 시민갤러리와 ‘장리석 기념관’,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장리석 기념관은 지난 2005년 제주도의 자연과 해녀를 화폭에 담아온 장리석 화백(1916~2019)의 컬렉션을 상설전시하는 곳이다. 평양 출신인 장 화백은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로 내려와 4년간 머물면서 해녀와 조랑말, 바다를 그리는 등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다. 이 때 자신과 마찬가지로 제주도에 피난해 있던 이중섭 화백과 가까이 지낸 인연도 있다. 1952년~54년 오현중·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한라산, 해변, 해녀, 조랑말 등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미술관이 개관하기전인 2005년 제주롤 소재로 한 작품 110점을 제주도에 기증할 만큼 제주에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 이에 제주도는 그의 숭고한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미술관 1층에 상설전시실을 꾸미고 2012년 ‘장리석 미술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2층의 육면체에는 기획·상설전시실이 들어서 있다. L자 형태의 닫힌 공간인 기획전시실은 1·2층을 튼 앞쪽에 대형 작품을, 1층 높이의 뒤쪽은 일반작품을 내걸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전시실을 나오면 창밖으로 나무데크와 정원에 설치된 야외 전시장이 기다리고 있고, 열주들이 만든 프레임을 통해 한라산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립미술관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되기까지에는 지역사회의 공감대와 관심이 있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관광객들을 겨냥한 테마 미술관, 박물관들은 많지만 변변한 도립미술관은 하나도 없었다. 2000년 제주미협, 탐라미협, 한라미협 등이 주축이 된 가칭 ‘제주도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제주작가들을 위한 공립미술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2004년 2월 도립미술관 건립용역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같은 해 여름 ‘향토문화예술진흥계획’이 수립돼 도립미술관 건립비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특히 2004년 개최된 제주미술제는 도립미술관 건립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됐다. 2007년 한경면에 ‘도립현대미술관’개관을 필두로 2009년 제주도립미술관이 문을 열었으며 이후 2016년 도립현대미술관 부근에 도립김창열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제주도는 불과 14년 만에 3개의 공립미술관을 거느리는 쾌거를 거뒀다.

제주도립미술관은 대표 미술관 답게 굵직한 기획전과 제주비엔날레 등의 프로젝트로 지역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불러 들인다. 특히 지난 2019년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생·활(生·活)’전을 비롯해 특별전, 국제전 등을 연중 개최해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개관 10주년 기념 해외미술특별전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은 수만 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해 화제를 모았다.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의 소장작품 중 모더니즘의 대표작가 45명의 회화와 조각 작품 60여 점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전시로 3개월간의 전시기간에는 전국 각지에서 미술관을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이 전시는 지역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에드가 드가, 앙리 마티스, 장 프랑수아 밀레, 마르크 샤갈 등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세계적인 거장들의 명작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도내 학생들의 생생한 미술사 교육현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장리석 작 ‘해조음(海潮音)’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의 색깔을 보여주는 889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1960년대 이전 부터 2010년까지 다양한 시기의 작품과 한국화, 서양화, 판화, 사진, 드로잉, 조각, 뉴 미디어, 서예, 디자인, 건축, 설치 등이 포함돼 있다. 대표작으로는 변시지의 ‘풍파’(145x112cm, 1986년 작), 강요배의 ‘물과 불의 산’(183x455cm, 2010년 작), 장리석의 ‘해조음’(176x 226cm, 1957년 작), 고형훈의 ‘스톤 북’(113x145.5cm, 1986년 작) 등이 있다.

이밖에 ‘어린이 미술학교’, ‘시민교양강좌’, ‘청소년 진로교육’, ‘전시연계교육’ 등 계층별, 연령별에 맞춘 특화된 문화프로그램으로 도민들의 문화마인드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홍보팀의 홍현미씨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삶을 예술로 담아내는 역할을 하기 위해 미술관 주변과 후정에 쉼터, 소규모 야외공연시설을 조성했다”면서 “관람객들은 미술관을 둘러 보면서 단지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제주의 하늘과 바람, 공기 등을 느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