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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도시, 광주’
2021년 11월 23일(화) 18:00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외국의 유명도시들을 둘러 볼 때면 부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 한가로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노천카페…. 국내에선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은 이방인에게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하지만 내가 진짜 부러운 건 이들이 아니다. 바로 번잡한 도시 곳곳에 쉼표처럼 자리하고 있는 공원과 벤치다. 도시의 외곽이나 한적한 곳에 ‘숨어 있는’ 광주와 달리 시민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취재차 방문한 유럽의 도시들이 그러했다. 동유럽의 보석으로 불리는 체코의 프라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명성과 달리 ‘정겨운 동네’ 같았다. 물론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크고 작은 공원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어 번잡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프라하의 예술가 공간들을 둘러 보느라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어 다녀야 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전혀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 관광 명소 주변과 도시 한복판에 들어서 있는 공원과 벤치 덕분이었다. 오랫동안 걷다가 지칠 때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원과 벤치들이 지척에 있었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도심 속 공원’은 아담한 연못도 있어 ‘멍때리기’에 그만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연인들이 잔디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들이 펼쳐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독일의 문화도시 뮌헨은 프라하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도시의 최대 번화가인 마리엔 광장에는 공원 보다 벤치가 눈에 많이 띄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카페를 찾다가 여기 저기 놓인 벤치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광장의 벤치에 앉아 보는 뮌헨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국내 같으면 스타벅스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셔야 되지만 이곳에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살기 좋은 도시는 이런 모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사실 도시의 품격과 시민의 삶을 결정하는 척도는 화려한 인프라가 아니다. 흔히 내로라 하는 문화도시인 빈, 런던, 뉴욕, 파리의 공통점은 ‘걷기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일찍이 서울시와 경기도가 ‘걷기 좋은 도시, 서울’, ‘쉼이 있는 도시공간’을 모토로 산책로와 공원, 벤치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시 안에서 걷기와 휴식, 문화와 힐링이 가능한 보행친화도시야 말로 광주가 그려나가야 할 미래상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건축가 유현준 교수(홍익대)가 저서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강조한 메시지는 광주가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일 것이다.

“미래 성패의 도시는 도시 공간의 재구성에 달려 있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한다.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카페가 아닌, 공원과 벤치같은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을 수록 살기 좋은 도시다. 벤치가 가까이 있는 도시는 그렇지 않은 도시에 비해 시민들이 같은 추억을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휴게 공간이 많은 도시가 곧 걷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인 것이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