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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사 선평식씨 “어르신과의 따뜻한 인연, 40년 봉사의 원동력”
‘사랑의 가위손’ 변신
초교 졸업 후 이·미용 배웠지만 벌이 시원찮아 택시 전업
양로원·가정집 방문 봉사 “건강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
2021년 09월 13일(월) 01:30
선평식씨가 12일 오전 광주시 남구 주월동의 한 가정집을 찾아 어르신을 위한 이·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선평식씨 제공>
41년 경력의 광주 택시 운전사 선평식(71)씨. 그는 한달에 3번, ‘사랑의 가위손’으로 변신한다.

선씨는 초등학생인 10살 때부터 배웠던 이발 기술을 바탕으로 올해로 41년째 양로원 이·미용봉사를 해 오고 있다.

보성 출신인 선씨는 보성 득량서초등학교(전 득량서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이발소 일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힘든 보릿고개를 겪었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이·미용 기술을 배웠다.

“1979년까지 보성 득량서초 앞 이발소부터 멀리 부산까지 전국을 돌며 이발소를 운영했지만, 노력에 비해 소득이 크지 않았습니다. 당시 장발이 유행하는 바람에 인기가 없었나봐요.(웃음) 이발소 사업을 접고 광주에서 택시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광주 지리가 익숙해질 무렵, 선씨는 그간 배웠던 이·미용 기술을 그냥 버리기 보다는 좋은 일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씨는 광주 곳곳의 양로원을 들러 어르신 이발 봉사를 시작했다.

선씨는 택시 업무를 쉬는 날, 오전 업무가 없는 날 등 짬짬이 시간을 내 양로원을 찾았다. 법인택시에서 개인택시로 전환한 1991년부터는 더욱 박차를 가해, 많게는 한달에 5번까지 봉사를 하기도 했다. 아침 7시부터 미용도구를 챙겨 양로원을 찾아갈 때면 ‘한 분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많을 때는 20~30여명 어르신들이 번호표를 뽑아 가며 차례를 기다릴 때도 있었습니다. 일단 봉사를 가면 화장실 갈 시간 없이 바빠요. 택시 일과 겸하다 보니 피곤하고 힘들 때도 많았죠. 그래도 어르신들이 음료수라도 마시라며 300원, 500원씩 쥐어주고, ‘다음 달에도 꼭 찾아와서 이발 이쁘게 해달라’ 해 주실 때면 힘든 게 싹 사라지곤 해요.”

선씨는 “때로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 같이 하면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들었다”며 “어르신들이 전해주는 감사 한 마디와 따뜻한 인연이 40여년 동안 봉사를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돌아봤다.

선씨는 현재 동구 학동 천혜경로원, 광산구 덕림동 명은요양원, 월산동 월성경로당 3곳을 돌며 봉사하고 있다. 또 2달에 한번씩 어르신 가정집을 찾아가 머리를 정리해 주고, 목욕까지 도와주는 봉사도 겸하고 있다.

이같은 봉사활동으로 지난 2004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부터 광주시장 표창, 2017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표창 등을 받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지 못해 아쉽다는 선씨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대로 이·미용봉사를 필요로 하는 다른 양로원도 찾아갈 계획이다.

선씨는 “정해둔 목표 같은 건 없다. 앞으로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하다”며 “50년이 넘도록,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미용봉사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