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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건 아닌겨!…사람은 사람다워야죠”
KBS ‘오케이 광자매’서 이철수 역 배우 윤주상
가족 위해 평생 살아온 이 시대 아버지상 보여줘
연극무대서도 맹활약…다시 해보고 싶은 역 ‘리어왕’
2021년 08월 29일(일) 20:45
윤주상
“아쉬움이 크긴 크죠. 작품이 끝나도 당분간 세트장에 가면 우리 식구들이 있을 것 같고,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그럴 겁니다.”

KBS 2TV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서 주인공 이철수 역을 연기한 배우 윤주상(72)을 27일 여의도 KBS별관에서 만났다. 이날 마지막 세트 촬영을 앞두고 있던 그는 배우로 살아온 세월이 50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뭐든지 끝날 때는 좀 서운하다”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대다수 작품에서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왔던 그는 이번에도 세 딸의 아버지였지만, 극을 이끄는 중심축이 되면서 그동안 쌓아온 연기 내공을 쏟아냈다. 그는 철수라는 인물에 대해 “자기 삶을 송두리째 희생하면서 생명을 다한다는 점에서 철수도 그동안 연기해왔던 수많은 아버지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오케이 광자매’ 속 철수는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이 시대 아버지의 표상을 보여줬다. 배우자의 외도, 이 사실을 모르는 딸들과의 잦은 마찰로 가장 소중히 여기던 가정까지 산산조각 났지만 그는 삶을, 딸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으면서도 이때까지 버티고 살아온 이 아버지의 힘이 뭐였을까. 작가는 과거를 살아온 아버지를 왜 현 사회에 다시 등장시켰을까. 그게 제 의문점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어요.”

그리고 10개월간의 여정 끝에 선 윤주상은 자신의 질문에 “그 답은 결국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오케이 광자매’의 대표적인 유행어로 자리매김한 철수의 대사, “이건 아니라고 봐!”와 “아닌 건 아닌겨!”도 맥락을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사들은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에요. 철수가 말하는 ‘아닌 것’의 기준은 보편적인 양심의 소리이고, 그건 철수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인간 중심의 사상일 겁니다. 그러니 결국 철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이죠. 철수 같은 아버지가 중심이 됐던 구시대는 점점 잊히고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공간의 기둥들, 인간적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또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게 이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생각해요.”

‘오케이 광자매’를 통해 처음으로 문영남 작가와 만났다는 그는 “문 작가를 만나고 나서 내가 평소에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에 눈이 열렸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며 “연기 인생에서 만난 좋은 기회이자 행운”이라고 극찬했다.

또 이번 작품에서 광남, 광식, 광태 세 딸의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표했다.

“아들만 둘이라 평소에도 딸이 있었으면 했는데 드라마 속에서나마 딸이 세 명이나 있으니 참 좋아요. 철수가 살아가며 허망함이 밀려올 때마다 이 딸들이 그 부분을 메꿔줬기 때문에 삶을 지탱하고 살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로는 자신을 “형편없는 아버지”라고 평가한 그는 “일만큼은 매우 충실하고 철저하게 해왔지만, 가정이나 주변에는 그러지 못했다. 식구들에게 미안한 게 많다”며 멋쩍게 웃었다.

1970년 극단 세대의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한 윤주상은 이듬해 TBC동양방송 공채 성우로 데뷔한 뒤 안방극장에 진출, 연극 무대와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배우의 삶을 살아왔다. “문학을 동경하고 꿈을 꾸다 보니 배우를 하게 됐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에 다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맡았던 왕 역할,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의 표도르 역할이에요.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거든요.”

윤주상은 최근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박인환이 드라마 ‘나빌레라’를 통해 70대의 꿈이라는 서사를 그려낸 것에 대해 “좋은 현상”이라고 평가하며 오래도록 연기할 수 있었던 비결을 밝혔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래 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이 늘 새로운 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는 “이제는 안 해본 역할이 없을 정도”라면서도 “요즘엔 만화 같은 세계로 들어가 사물들의 세계가 그려지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만약 내가 나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눈을 반짝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