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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엮음
2020년 10월 24일(토) 12:00
성프란시스대학이 개교 15주년 기념으로 노숙인 문집 ‘거리에 핀 시 한송이 글 한 포기’를 펴냈다. 두툼한 문집 속 짧은 글들의 필자는 성프란시스대학의 1년 인문학과정을 거쳐간 노숙인들이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지난 15년간 졸업문집에 수록된 167편을 골라 이 책에 실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초등학교만 마친 이부터 6급 공무원을 지낸 이까지 교육받은 정도도 살아온 궤적도 다르지만 글에 공통적으로 묻어나는 건 지독한 자기혐오와 고립감이다.

책은 ‘서울역 일기’, ‘거리의 인문학’, ‘사랑이 저만치 가는데’, ‘길벗 도반’ 등 4부로 구성됐다.

장대비 속에서 배식을 받아 밥을 먹다가 식판에 떨어지는 빗물을 보며 써내려간 ‘빗물, 그 바아압’(권일혁)부터,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가 자신이 믿었던 후배와 부정을 저지른 걸 알고 자폐의 길에 빠져 폐지를 수집하는 노숙인이 된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리어카를 끌고 여름바다로’(박진홍), 서울에 상경해 돈을 떼이고는 노숙인의 삶을 살게 된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이야기 ‘내 인생은 항해중’(고(故) 이대진), 보육원에 맡겨진 후 미국의 가정으로 입양되기 직전, 같이 지내던 친구의 꾐에 빠져 보육원을 이탈한 남자의 삶을 다룬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걸까요’(노기행) 등의 글이 담겼다. 이밖에 ‘빈 깡통 같은 인생’,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바보 선생 이젠 돌아가시오’, ‘어떤 편지 한 통’ 등도 수록돼 있다.

노숙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집과 가족을 잃고 길바닥을 떠도는 삶을 살 수도 있음을, 불행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평범하지만 놓치기 쉬운 진실을 전한다.

<삼인·1만9000원>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