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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성 60명이 쓴 책 60권으로 본 시대정신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김호기 지음
2020년 09월 25일(금) 00:00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란 말을 처음 쓴 이는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다. 리스트는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자유무역론에 맞서 보호무역론을 주창했다. 장하준은 리스트의 말을 인용한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다.” 미국을 위시해 오늘날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은 시장주의와 자유무역이 아니라 국가개입과 보호무역을 통해 선진국이 됐고,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후진국과의 경제적 가치를 유지해 왔다는 게 장하준의 주장이다.”(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와 세계화의 미래)

‘백범일지’, ‘뜻으로 본 한국역사’, ‘무소유’, ‘님의 침묵’, ‘광장’, ‘토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은 격동과 파란의 역사였다. ‘대한민국’은 바로 ‘국민이 주인인 우리나라’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끌어온 힘은 무엇일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성과 시대정신’으로 요약한다.

김 교수가 펴낸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우리시대 60명 지식인의 기억과 사상을 조명한다.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개인과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성과 시대정신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이다.

책에는 1947년 출간된 김구의 ‘백범일지’부터 2000년대 이후 발간된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까지를 아우른다. 이 시기는 해방공간의 새 조국 건설이라는 과제부터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에 걸쳐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합적 기억에 주목한다. 3·1운동과 임시정부를 비롯해 민주화에 대한 집합적 기억은 공동체를 이끄는 성찰로 작용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기억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 또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집필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균형감각을 토대로 60명의 지식인과 책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보수와 진보,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과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과 대표작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등은 독립운동가 내지는 정치가가 더 어울린다.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독립운동가와 나라 세우기 편에서는 민족주의 미래를 희원했던 김구의 ‘백범일지’, 청년의 내일을 고민했던 안창호의 ‘도산 안창호 논설집’ 등을 만날 수 있다. 종교와 철학 분야에는 재야의 미래를 그렸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100세 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김형석의 ‘백년을 살아보니’ 등이 포함돼 있다.

문학의 시 부분에서는 독립을 간절하게 기원했던 한용운의 ‘님의 침묵’, 자유를 노래했던 김수영의 ‘김수영 전집’을 소개하고 소설과 평론은 좌우이념을 다룬 최인훈의 ‘광장’, 소외된 이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룬다.

역사 분야는 인류사회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본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생적 자본주의 싹을 보았던 김용섭의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를 들 수 있다. 사회와 문화에서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탐구한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와 답사를 통해 문화의 미래를 고찰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조명한다.

이밖에 여성운동을 다룬 이효재의 ‘한국의 여성운동’, 생태적 사유로 정신적 교감과 공동체를 강조했던 김종철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도 소개돼 있다.

저자는 “미래는 과거 기억의 현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궈나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지나간 역사의 증거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에 용기를 선사한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 지성의 고투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용기를 안겨주길 소망한다”고 말한다.

<메디치·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연세대 김호기 교수가 펴낸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지난 100년 우리 역사를 이끌어왔던 각 분야 지성들의 책을 조명한다. <메디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