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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2020년 08월 07일(금) 00:00
황 성 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한 아기가 뒤뚱거리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발을 뗀다. 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안절부절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기는 몇 발자국을 가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데, 이내 부모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키면서 안아주거나 웃어준다. 이때 아기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달 동료 신부님들 모임이 있어 영암으로 이동 중이었다. 나주 혁신도시를 벗어날 무렵, 앞차가 차선을 조금씩 벗어나며 운전하고 있었다. ‘졸음운전인가? 아니면 낮술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면서 내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나 해서 경적을 울렸다. 잠깐 졸았었는지, 앞 차는 자기 차선으로 돌아와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현하듯 비상등을 켰다. 이제야 나는 앞 차의 불안함을 뒤로 하고 안전하게 내 길을 갈 수 있었다.

최근 필자는 코로나 시대에 ‘아슬아슬’이란 단어를 자꾸 묵상하게 된다. 필자의 업무가 가톨릭 광주사회복지회, 북한 이탈 주민 그리고 이주 노동자와 연관되어 있어서인지 ‘아슬아슬’이라는 단어가 더 깊게 다가온다. 가톨릭 광주사회복지회 산하 시설들은 코로나 발생 이후 지금까지 휴관 상태다. 종합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관 등의 시설 관계자들로부터 듣게 되는 대상자들의 어려움은 너무 크다고 한다.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은 개원 때보다 더 분주하고 조심스럽다. 시설에 올 수 없는 분들에게 직접 찾아가 간편 식품을 전달하고 건강 여부를 확인한다. 그런데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복지관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는 대상자들의 삶은 ‘아슬아슬’하다. 북한 이탈 주민의 삶은 더 녹녹지 않다. 체제 변화의 어려움과 탈북 시 겪었던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상처들은 남한의 삶을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부담이다. 더욱이 코로나 상황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전보다 더 세상과 지역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언어와 피부색에 대한 편견으로 이미 차별 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더 큰 차별의 시기를 겪고 있다. 불법 체류자이기에,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기에 그 고통과 좌절감이 크다.

비단 코로나의 상황이 이들에게만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들의 고통,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과 소외의 굴레에 놓인 어르신들, 기득권과 기성세대에 눌려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며 취업까지 힘든 우리의 청년들,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우리들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런데 코로나 이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어 아찔하다.

예수 시대에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따르고, 예수처럼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는 당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거부하지 않으셨고,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도 않으셨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선택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는 가장 작은 이들을 찾아 다니셨고, 이들과 함께 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가 찾아다녔던, 또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가 그 시대에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내몰렸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가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찾았고 함께 하셨던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있었던 이들에게 예수의 방문과 동반은 마지막 희망이었고 빛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오 복음 11장 28절)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지난주 월요일,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분이 가톨릭 광주사회복지회 사무실을 찾아 주셨다. 코로나로 택시 영업에 어려움이 있을 텐데 직접 찾아와 후원금을 전달해 주셨다. 우리의 관심과 사랑은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