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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기억하며 무대에 오릅니다”
80년 시민군 고 김영철 씨 막내딸 김연우
돋움무용단원 활동…5월 춤으로 승화
서울시 제작 5·18 주제 무용 ‘십일…’ 출연
27·28일 도청 앞 ‘5·18 광대난장극’ 공연
2020년 06월 02일(화) 00:00
최근 서울시와 광주시가 공동 제작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공연 ‘십일, 맨드라미꽃처럼 붉은’에 출연한 김연우 씨는 80년 5월 당시 시민군 기획실장으로 활동했던 고(故) 김영철의 막내딸이다.
“우리의 형제 자매가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광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제작된 한국창작무용 ‘십일, 맨드라미꽃처럼 붉은’(30일까지 유튜브 ‘518 TV’ 상영)은 산자와 죽은자가 만나 화해하고 해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곡하는 그녀들’, ‘남겨진 자들의 두려움과 저항’, ‘그날이 오면 다시 찾아오는 아픔’ 등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는 작품은 한국 무용계를 대표하는 김매자씨가 연출을 맡고 서울 무용단 창무회와 ALTIMEETS 단원들이 출연해 역동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광주시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한 오월평화페스벌 일환으로 제작돼 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이번 작품에는 5·18 유가족인 광주돋움무용단 김연우(40)씨가 ‘죽은자’ 역할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김 씨는 80년 5월 당시 시민군 기획실장으로 활동했던 고(故) 김영철 열사의 막내딸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5·18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5·18을 춤으로 승화해 더 넒은 의미의 자유, 평화를 선보이는 예술활동을 지속해왔다.

김영철 열사는 박기순·박관현 열사 등과 함께 1978년 들불야학을 결성해 야학운동을 주도했으며 5·18 당시 정부와 언론의 흑색선전에 맞서 투사회보를 만들어 시민에게 배포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그의 이야기는 극단 토박이의 연극 ‘청실홍실’로 만들어졌다.

최근 만난 김 씨는 어렸을 적 부터 노래하고 춤 추는 것을 좋아했다며 아빠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빠는 5·18 이전부터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동네 학생, 사람들을 모아 노래하고 게임, 운동 등 레크리에이션을 했다고 해요. 특히 그림도 잘 그리셔서 아빠한테 풍경화 그리는 법도 배우고 그랬죠.”

김 씨는 5·18 이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용학원에 다녔다. 광주여고, 광주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그는 “경제적으로는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춤추는 것을 워낙 좋아해 항상 설레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5·18에 대해 뭐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아빠를 기획실장 열사 김영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저에게는 그저 아빠 김영철, 인간다운 인간, 사람 그 자체 일 뿐이예요. 춤도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춤 속에 아빠와 관련된 기억이 있는 거고요.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춤을 추는 게 행복했어요.”

김 씨의 아버지는 5·18 고문 후유증으로 나주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후 긴 투병생활을 했다. 가끔 외박을 나와 집에 머무를 때면 김 씨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빠와 함께 간 소풍이었다.

“그날 하필 버스를 잘못탔어요. 그래서 결국 소풍에 늦었죠. 근데 가서 봤더니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실망해 있는데 아빠가 우리끼리 소풍하자고 하는거예요. 둘이서 엄마가 싸준 김밥 먹고, 아빠는 노래부르고, 저는 춤을 췄죠. 제 춤을 보시고는 열심히 박수쳐주시면서 “우리 연우는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하니까 춤 선생님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신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김 씨는 아빠를 생각하면 병원 창살 안에서 혼자 고통스러워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는 항상 “사람을 미워하면 안된다. 용서해야된다. 너만큼은 미움 모르고 살아라”고 하셨다.

김 씨는 사춘기가 지날때 쯤 아빠가 남들하고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커가면서 아빠의 외로움, 처절함, 고독함 등을 이해하게 됐고, 아빠 생각에 밤이면 눈물이 그렇게 났다. 80년에 태어나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5·18의 무섭고 두려운 감정들과 함께 자라온 김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추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5·18 희생자의 가족’, ‘김영철의 딸’ 등의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만 그 안에 갇히지 않고 이것을 원천삼아 예술인 김연우의 삶을 살 생각이다.

“저는 5·18과 뗄 수 없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춤을 선택한 건 오로지 제 의지였죠. 5·18 김영철의 딸로서 무대에 서는건 아니예요. 아빠가 스스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셨듯이 저도 제 의지로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고 싶어요. 이게 아빠가 가장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오는 27~28일 오후 4시 옛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 일원에서 열리는 5·18 광대 난장극 ‘오! 그리운이여 아득히 흘러가자’에도 참여한다. 5·18 유적지를 따라 이동하면서 공연을 선보이며 신동호·지정남·소윤정·김혜선·박상민·이다은·김선민·고재옥·문영태 등이 출연한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