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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돝 잡으려다 집돝까지 잃을라
2020년 03월 19일(목) 00:00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을 하려다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것조차 다 잃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구럭은 ‘새끼로 그물처럼 떠서 만든 그릇’이다.

한데 이 속담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먼저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겠다. 어떤 어부가 게를 잡으러 나갔다가 조금만 더 잡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이 밀물이 밀려온다. 어부는 황급히 도망치다 구럭은 물론 이미 잡아 놓은 구럭 속의 게마저 다 잃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이가 있으니 조선 후기의 학자 조재삼(趙在三)이다. 그는 ‘송남잡지’(松南雜識)라는 저서를 통해 ‘항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옛날에 게(蟹)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굴억(屈億)이라는 이름의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굴억은 미혼인데다 용모도 준수하고 학문도 깊어 부녀자들이 흠모하였다. 게의 아내 역시 굴억의 아름다움을 몹시 탐냈다. 이미 남편이 있는 몸으로서 오랫동안 고민하던 게의 아내는 마침내 몰래 약을 먹여 남편을 죽였다. 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굴억이 묻는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게의 아내가 답한다. “실은 당신 때문에….”



민주당 결국 위성정당 참여



굴억의 두 손을 꼭 잡은 그녀는 “당신을 남편으로 삼고 싶었다”며 독살의 배경을 자초지종 이실직고하게 된다. 그 말을 들은 굴억은 칼로 자기 가슴을 찔러 자결을 시도한다. 깜짝 놀라 부르짖는 게의 아내를 보며 굴억이 간신히 말을 잇는다. “일찍이 옛 성현들이 이르기를 ‘선비란 자기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 죽어야 한다’ 했거늘 내 어찌 그대의 진정을 알고 멀거니 살 수가 있으리오.” 말을 마친 굴억은 곧바로 숨을 거두고 만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게도 굴억도 다 잃었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는데 이게 뒤에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조재삼은 “설화가 먼저 생겨나고 나중에 속담이 생겼다”는 주장을 편다. 따라서 그는 사람인 굴억을 구럭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며 ‘해망구실’(蟹網俱失) 또한 잘못된 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속담이 먼저 나온 뒤 나중에 게와 구럭을 의인화시킨 설화가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 속담 때문에 생겨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장돌뱅이 비단 장수가 어느 집에 들렀다가 참으로 어여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비단을 사라고 권하는데 여인은 남편이 출타 중이어서 살 수 없다고 한다. 비단 장수는 구경이라도 하라며 비단 보자기를 방에 펼친다. 견물생심이더라고 여인은 부쩍 갖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데, 비단장수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물론 아낙도 이자의 음흉한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까짓것 눈 딱 감고 한 번만 참으면 그만 아닌가 싶어 몸을 허락하고 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비단을 주는 대신 제 욕심을 채우고 떠난 비단 장수가 며칠 후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번에 안주인이 비단을 외상으로 샀는데 그 대금을 받으러 왔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주인 남자가 아내에게 “비단을 외상으로 산 일이 있냐?” 묻는데, 아낙은 하는 수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그러자 남편은 화를 버럭 내며 비단을 다시 돌려주도록 했다. 그리하여 여인은 몸도 내주고 비단까지 잃어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이야기다.(이상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비슷한 뜻으로 ‘달아나는 노루 보고 얻은 토끼 놓았다’는 속담도 있다. 정치판에서는 흔히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놓쳤다’라는 말을 쓴다. 적진의 표를 탐내다 자기 텃밭의 표까지 잃었을 경우다. 한때는 대선 후보까지 오르며 인기를 누렸던 안철수도 그런 정치인 중 한 명일 것이다. 외연을 확대하고자 우파 일부 세력과 합쳤으나 결국 압도적 지지층이었던 호남 중도 좌파 세력마저 등을 돌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연합정당 참여도 그런 우려를 자아낸다. 비례대표 몇 석 더 얻으려다 지역구 의석까지 잃게 되면 ‘멧돝(멧돼지) 잡으려다 집돝(집돼지)까지 잃는’ 격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으로서는 이렇게 함으로써 미래통합당의 원내 1당 확보 시도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만약 원내1당을 뺏기게 되면, 최악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탄핵까지 당할 수 있잖은가. 민주당으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비난은 잠시’ 꼼수엔 꼼수?



그래 명분은 잠시 골방에 치워 놓고 실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꼼수에 또 다른 꼼수로 맞선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이낙연 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이라고 했다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이라는 반칙과 탈법으로 의석을 도둑질하는 만행을 저지지르는데 이를 가만히 두고 보는 건 정의가 아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이리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찌 됐든 민주당이 플랫폼 정당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 구성한 비례대표용 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어제 공식 출범했다. 여기에는 민주당 외에 ‘가자환경당’ 등 이름조차 생소한 5개 정당이 참여했다. 그렇게 해서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을 비난하며 자신들은 그런 정당을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 한 달도 못 돼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다. “상대가 중앙선을 침범하면 방어운전을 해야지 1차선만 지키면 어떡하나.” 그렇게 현란한 변명의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김대중 선생은 일찍이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명분과 실리를 함께 강조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민주당의 비례정당 참여를 ‘상인의 현실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진정 선거법 취지를 살리는 대의를 실현하려면 비례대표 공천 자체를 포기하는 결단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민주당이 죽어도 선택하지 못할 카드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결국 표를 다투는 냉정한 현실 정치 행위다. 그런 면에서 이제 민주당의 비례 연합정당 참여는 되돌릴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됐다. 어제 출범한 ‘더불어시민당’이 민주당에 과연 몇 석을 더 얹어 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는 민주당이 예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보수 언론이 그토록 애면글면 살리고 싶어 하는 미래통합당에는 사실 기대할 게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