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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초대석 - 최상일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초대 관장]
“토속민요는 대중문화 새로운 영역 개척하는 씨앗”
30년 방송인생 우리 소리 찾는데 바쳐
전라도 ‘조기잡이 소리’ 등 첫 발굴
소리박물관 전국 민요 2만여곡 소장
임기 내 민요 아카이브 완성에 주력
민요는 새 콘텐츠 창작의 원천
지하철 안내음·전화벨소리 등 편곡
2020년 02월 11일(화) 00:00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새로운 문화창작 콘텐츠로 되살려내고자 하는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 최상일 관장.
통나무를 운반하며 부르는 ‘강원도 목도소리’를 녹음하는 PD시절 최관장(맨 왼쪽).
‘길걷는 선비는 의복이 날개요 우리 농군들은 소리가 날개라~.’ 전통사회에서 모를 심고, 보리를 타작하고, 고기를 잡고, 아이를 기르는 삶의 현장에 ‘소리’가 함께 했다. 이 땅에 살았던 민초들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던 ‘우리의 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농촌공동체의 붕괴에 따라 토속민요는 사라졌다. 최상일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초대 관장은 PD시절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리를 채록하는데 온 힘을 쏟았고, 현재는 민요의 보존과 전승에 적극 나서고 있다.

◇30년 방송인생 ‘우리소리’ 찾기 한길=“어여차디여차 닻감아 메고 (영광) 칠산 바다로 돈 실러 가잔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인천앞바다에서 들려오던 ‘배치기 소리’입니다.”

귀에 익숙한 MBC(문화방송)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이다. 1989년 4월 첫 전파를 탄 이래 지금까지 30년째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요즘은 하루 세 차례, 40 초가량 스팟 형식으로 흘러나온다. 다채로운 토속민요(향토민요)에 짤막한 해설을 곁들여 소개한다. 짧지만 메시지는 강렬하다.

최상일(63)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초대 관장은 30 여년 방송인생에 걸쳐 사라져가는 ‘우리 소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데 오롯이 열정을 바쳤다. 그는 전국을 돌며 ‘우리의 소리’를 모아온 지난 세월을 ‘고고학자의 보물 찾기’에 비유했다. PD시절 그를 포함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취재팀이 1989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전국 139개 시·군 904개 마을에서 어르신 2만여 명을 만나 채록한 민요 자료는 1만 8000여 곡에 달한다. 농부들의 노동요인 ‘논매는 소리’부터 부녀자들의 ‘신세타령’에 이르기까지 민요에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다. 전라도에서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맥이’(보성군 조성면 덕산리)를 비롯해 ‘노 젓는 소리’(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조기잡이 소리’(진도군 조도면 소마도) 등 민요들을 처음으로 발굴해냈다. 그는 2015년 방송국을 퇴직한 후에도 서아프리카와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사라져가는 민속음악을 찾아 기록하는 일을 이어갔다.

그는 ‘민요 찾기에 뛰어든 동기’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지난 2002년 펴낸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책머리에서 ‘무엇보다도 우리 민요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 때문’이라고 적었다.

“민요는 알면 알수록 보배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특이한 방송소재를 찾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숨어있던 민요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역마다 (민요)차이가 드러나고, 선율이 좋고, 노래가사도 의미심장했습니다. 해방전후 시대에 사는 모습들이 그대로 묘사가 돼 있어 그 때 그 사람들의 생각·정서·세계관이 노래 속에 들어있어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민요를 반드시 섭렵해서 공부를 하면 좋겠습니다. 이걸 누가 활용하느냐에 달렸지만 보배로운 무형문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귀가 호강하는 민요전문 박물관=지난해 11월 개관한 ‘서울 우리소리박물관’은 국내 첫 민요 전문박물관이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토속민요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보존할 수 있도록 5년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만들었다. 눈으로만 보는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소리를 들으며 관람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박물관이다. 사라져가는 전국각지의 민요 음원 2 만곡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크게 ▲전시공간 ▲감상공간 ▲교육공간 ▲아카이빙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1층 ‘음원감상실’은 ‘둥당애 타령’(전라도)과 ‘해녀 노 젓는 소리’(제주도) 등 전국의 대표적인 민요를 들을 수 있는 휴식 및 감상공간이다. 특별전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민요수집의 선구자 임석재(1903~1998) 선생 특별전도 눈길을 끈다. 지하 1층 ‘상설전시실’은 다양한 민요를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입구에 들어서면 미디어아트로 구현하는 동적인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 어우러져 민요가 흘러나온다.

‘우리 소리로 살다’를 주제로 삼아 ▲일과 우리소리 ▲놀이와 우리소리 ▲의례와 위로의 우리소리 ▲우리소리의 미래 등 테마로 구분해둔 다채로운 민요를 이어폰으로 감상할 수 있다. 동해(명태잡이)와 서해(조기잡이), 남해(멸치잡이)에서 잡히는 어종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민요역시 차별화된다. 민요를 클릭하면 가사를 볼 수 있고, 3D모형과 인터렉티브 터치기법으로 전시돼 있어 입체적으로 민요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서랍을 열고 듣는 ‘다듬이 소리’는 놓치기 쉽다.

지하 2층 ‘음반전시·영상감상실’은 SP·LP·CD 등 시대에 따라 변해온 음반과 각 지역 ‘한국민요 대전’ CD와 함께 대형스크린을 통해 영상과 함께 민요를 즐길 수 있다. 외부 ‘우리소리 아카이브’(우리소리도서관)에서는 2만 여곡에 달하는 소장 향토민원 음원을 검색할 수 있다. 서울 우리소리 박물관 홈페이지(gomuseum.seoul.go.kr)에서 각 지역의 다양한 민요를 지역별·분야별로 검색해 들을 수 있다.

◇민요는 새 콘텐츠 창작의 원천=“민요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풍부한 소재 또는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 공동체 사회를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소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토속민요 연구가 깊지 못합니다. 토속민요의 음악적 특징에 대해 이론적으로 분석을 해야 창작자들이 작곡을 할 때 그런 특성을 활용해서 곡을 살려낼 거 아닙니까. 모르면 좋은 특성을 없애버리는 서양식으로 편곡을 하게 되죠. 토속민요는 지방마다 ‘시김새’(음의 앞뒤에서 꾸며주는 꾸밈음)가 다릅니다. 적어도 향토민요의 맛을 내려면 시김새를 구현해 내야 되는 거죠.”

최 관장은 토속민요를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트럭 후진음이나 시내버스·지하철 안내음, 전화벨소리 등을 깔끔하게 편곡한 민요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장례풍속도 어느 정도는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국립묘지에서 전통장례로 치를 수 있도록 하고, 연평도에서 장례소리로 불려진 ‘느시랑 타령’을 추모곡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 관장은 임기동안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민요 아카이브를 완성시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현재 확보한 민요 외에 박물관 차원에서 현지 기록작업을 추진한다.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지에서 가지고 있는 민요 음원을 확보하고, 전문 연구자나 개인 소장자들로부터 기증을 받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소리박물관 나름대로 민요제목 등을 다시 정리를 해서 완벽한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박물관이 토속민요의 보존과 활용 측면에서 중심 역할을 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최 관장은 토속민요를 힙합 등에 접목해 보는 등 대중문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씨앗’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생각만 있으면 얼마든지 녹여내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동안 젊은이들 인식이 그런 게 있는 줄을 몰랐고, 가끔 듣더라도 고리타분한 것에 불과하다 넘겼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전통적인 소스가 있는데 들여다보고 써먹을 수 있는 것 골라내보자’ 맘먹으면 황무지에서 옥(玉)을 캐는 거죠. 그럴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소리박물관은 사라져가는 민요를 현대에 되살려내는 ‘씨앗’을 길러내는 토양이다. 한 톨 씨앗이 싹을 틔우면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한톨 종자 싹이 나서 만 곱쟁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의 조화로데이 에헤/ 아브레이 수나~”(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 ‘모 심는 소리’중)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