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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체육회장 선거는 끝났지만
윤 영 기 체육부장
2020년 01월 29일(수) 00:00
스포츠와 선거의 공통점은 승자와 패자가 선명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잠시 환호가 있을 뿐, 곧바로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빤한 결과로 나타났을 때는 더욱 그러해서, 복기(復棋)할 필요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지난 15일 치러진 광주시체육회장 선거는 곱씹어 볼 대목이 적잖아 보인다.

광주시체육회장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를 불과 5일 앞둔 지난 10일 김창준 후보에게 옐로카드를 제시했다. 김 후보가 ‘지난해 11월 광주의 한 체육협회 임원단과 식사를 하고 지지를 호소했다’는 사실을 들어 경고 처분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김 후보는 언론에 제공한 자료를 통해 “반론권이나 실태조사 없이 사전 선거운동으로 경고 처분을 내린 뒤 후보자에게 통보도 없이 언론에 알린 것은 전형적인 특정 후보 편들기가 아닌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선관위에 편파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한술 더 떠 “불법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관련자를 즉각 색출해 사퇴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선관위의 조치가 늦어지고 미흡하다면 관련자를 선거 부정행위자로 고발하고 선거를 보이콧하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오죽 억울했으면 이런 발언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박정하게 보자면 이는 심판이 옐로카드를 내밀자 아예 판을 엎겠다고 선언한 셈 아닌가. 선거가 애초 가장 선한 사람을 뽑는 제도는 아니어서 품격을 요구할 일은 아닐 터. 그런데 김 후보는 너무 많이 나갔다. 광역자치단체 체육회장을 맡겠다고 나선 예비 단체장의 언어로는 부적절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선거를 보이콧하겠다’는 김 후보의 ‘선언’에는 추격을 의식한 초조와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 김 후보가 147표를 받았고 전갑수 후보가 137표를 얻었으니 불과 10표 차의 선거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기자라는 직업적 시각으로 보면 김 후보는 싸움에서 이기고 승부에서는 졌다. 전 후보 스스로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한 것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체급이 확연히 다른 선수들의 게임이었다. 배구선수 출신인 전갑수 후보는 광주시배구협회장, 광주체육회 이사, 한국실업배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한 게 대표 이력이었다. 김 후보는 1987년 전남배드민턴 협회장을 맡은 이래 30여 년 체육계에 몸담았다. 광주동아시아 경기대회 유치위원장, 광주U대회 집행위원,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단장, 광주생활체육회장을 맡았고 체육계 원로 모임인 광주체육회 고문단장까지 두루 중책을 맡았다.

그는 선거에서 본의 아니게 대한체육회의 지원 사격도 받았다. 체육회장 선거를 총괄하는 대한체육회는 공정 선거를 위해 출마자에게 시·도체육회 임원을 사퇴하도록 강제했지만, 대한체육회의 경우만은 현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덕분에 김 후보는 대한체육회 생활체육위원장 직을 보유한 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지난해 12월 출마 예정자였던 김 후보는 ‘광주시 체육인의 밤’ 행사에서 대한체육회 생활체육위원장으로서 대한체육회장 표창을 전달하는 수여자로 단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전 후보는 체육발전 공로로 광주시장 감사패를 받는 인사로 호명됐다. 체육계 인사 900여 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상을 주는 자와 받는 이의 무게감은 천지 차이였을 것이다. 김 후보가 수여자로 단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광주시체육회의 ‘사려 없는’ 배려 때문이었다. 시체육회는 대한체육회에 질의한 결과 ‘대한체육회 직을 보유한 출마 예정자가 상을 줘도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밝혔다.



누구를 위한 배려였나



어찌 됐든 허술한 선거제도는 앞으로 보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당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치열했던 선거만큼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 김 신임 회장과 전 후보는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을 양분해 ‘진영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2016년 정부가 밀어붙여 전문·생활체육을 아우르는 현재의 통합체육회가 출범했지만, 양 단체는 아직도 내적 갈등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배고파서 먹고 살기 위해 운동하고, 생활체육인은 부른 배를 꺼뜨리기 위해 운동한다.” 이는 한 전문 체육인의 푸념인데, 생활·전문체육 간 뿌리 깊은 간극과 그 깊이를 말해 준다. 표결로 드러났듯 양측이 나눠 가진 표는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표심이 반영된 갈등 지수다. 여기에는 상대편이 당선하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우려가 공통적으로 농축돼 있다. 애초 두 후보가 진영 싸움에 불을 지피고 풀무질한 공동정범이지만, 선거는 이미 끝났다. 이제 수습 책임은 오롯이 승자인 김 회장 몫이다. 부디 김 회장이 성공한 체육회장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