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신비의 나라 미얀마] ③ 최초의 통일국가 바간왕조
[천득염의 건축인문기행]
아노라타 왕, 버마족 통합 위해 불교국 세우다
버마족이 세운 최초의 통일왕조
1044년 아노라타 왕 즉위
공동체 의식 부족했던 버마족
몬족 승려 ‘신 아라한’ 영입해
‘상좌부 불교’ 공식 국교화
타톤왕국 정복 시작으로 영토 확장
아노라타 왕, 버마족 통합 위해 불교국 세우다
버마족이 세운 최초의 통일왕조
1044년 아노라타 왕 즉위
공동체 의식 부족했던 버마족
몬족 승려 ‘신 아라한’ 영입해
‘상좌부 불교’ 공식 국교화
타톤왕국 정복 시작으로 영토 확장
![]() 바간에 자리하고 있는 아난다 파고다 전경. 부처의 끝없는 지혜를 상징하는 사원으로 1975년의 지진으로 훼손됐지만 복원된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미얀마에는 수많은 종족과 그들이 세운 왕조가 있다. 그 중에서 미얀마 인구의 70%에 이르는 버마족이 세운 최초의 왕조가 바로 바간왕조(Bagan, 혹은 Pagan·849-1287)이다. 바간왕조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미얀마의 최남단까지 흘러내려 가는 에야와디강의 중간인 바간에 자리한다. 미얀마는 흔히 지명으로 왕조의 이름을 정하였는데 차욱스(Kyaukse) 평원 외곽에 자리한 바간이 바간왕국의 중심지였다. 미얀마인들이 불교라는 정신세계로 품은 바간의 대평원에 현재도 수천기의 불탑이 있으니 당대 불교가 얼마나 번성했고 경이로웠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들은 대부분 11세기 이후부터 건립된 것인데 현재도 2300기 정도가 남아 있어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르부드르와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으로 손꼽힌다.
버마족은 지금의 미얀마 땅에서 처음부터 살았던 종족이 아니었다. 오래전 그들은 중국 북서부지방인 감숙성에서 남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티벳과 운남을 거쳐 기원후 2세기경에는 현재의 버마 지역까지 도착해 작은 나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최초의 왕조를 시작한 때를 108년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후세에 이르러 소급한 상한연대일 뿐이고 분명한 형태를 지닌 고대국가가 버마 땅에 성립된 것은 11세기에 들어서였다. 즉 11세기 중엽 바간왕조의 영명한 군주 아노라타(Anawratha)라는 왕이 등극하면서 미얀마의 주된 종족인 버마족이 통일왕조를 이루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간왕조의 시작은 849년부터이다. 8세기경 티벳-미얀마족 계통의 미얀마족이 히말라야 산 부근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849년 삔뱌왕 때 미얀마 중북부의 흩어진 쀼족을 흡수하면서 바간지역에 버마족 최초의 왕조를 세웠다. 그 후 강력한 통일국가 형태의 왕조 설립은 1044년 아노라타왕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가 통치한 시기에 미얀마는 본격적으로 통합을 시작하였다. 이웃 국가 타톤을 정복하였고 바간에만 해도 5,000여기의 탑과 사원이 들어서는 경이로운 불국토를 세웠다. 아노라타왕은 남부지방에 주로 살고 있는 몬족출신의 승려 신 아라한(Shin Arhahan)의 건의를 받아들여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발전시켜 국교로 정하였고, 이를 통한 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이룬 뒤 몬 왕국들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타톤왕국을 시작으로 남부의 여러 왕국들을 하나씩 흡수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타톤왕국은 버마 하부지역에 위치한 신 아라한의 고향이었으며 불교문물의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귀중한 팔리어경전, 30개의 장경, 그리고 약 3만 여명의 몬족 승려와 기술자가 바간으로 옮겨왔다. 버마족은 몬족의 부와 문화를 옮겨와 바간을 강화 발전시켰다. 아노라타왕과 승려 신 아라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바간에는 빠르게 불교가 퍼져나갔고 주변의 여러 나라에도 소승불교가 확산되었다. 특히 아노라타는 소승불교의 중심지인 스리랑카가 전쟁으로 파괴되자 승려와 불경을 보내 불교문물의 재건을 지원했고 그 답례로 부처의 치아를 얻어 왔다. 이 보물을 모시기 위한 쉐지곤(Shwezigon)불탑을 건설하는 등 많은 불사가 행해졌다. 또한 불교를 관장하는 조직인 상가(僧團)도 정비되었다. 상가는 이후 왕조의 교체와 상관없이 존속하며 미얀마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바간왕조에서 아노라타왕을 계승하여 불교적 지배력을 이어간 인물은 찬싯따(Kyanzittha)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틸루인만(Thiluin Man, 1084-1113)왕이다. 그는 아노라타 왕의 사후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른 후 몬 왕실을 달래고자 타톤의 왕위 계승자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냈다. 또한 그는 외국과의 관계에서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자신이 직접 인도에 가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도지 부다가야를 방문했고, 중국에 까지도 사절을 보내어 무역로를 확보하여 했다.
찬싯따 왕의 뒤를 이은 왕이 깐수 1세이고 그 다음이 깐수 2세이다. 이 때 바간왕국은 비교적 안정된 발전을 이루었고 버마화가 크게 이루어졌다. 즉 버마어가 공용어로 정착되고 강 주변과 평원에 수리시설이 확대되었으며 개간지를 넓혀 생산력이 증대되었다. 또한 실론에서 소승불교를 직접 받아들여 불교의 순수성이 고양되기 시작하였고 불교국가로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
특히 바간의 역대의 왕들은 불교 후원자였으며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거대한 불교사원을 건설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부처의 치아, 흰 코끼리 등의 보물을 모으는 일도 왕의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결과 바간 왕조는 약 4,400개의 불교 유적을 건설하는 등 불교문화와 건축,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가 되었다. 아노라타왕의 쉐지곤사원과 찬싯타왕이 세운 몬 양식의 화려한 아난다(Ananda)사원은 대표적인 사원건축이다. 황금색의 웅장한 쉐지곤파고다는 바간의 유적 중에서 제일로 꼽힌다. 미얀마 불탑의 표본이 된 이 탑은 부처님의 치아와 머리뼈가 봉안된 곳이다.
현재까지도 장엄하고 매혹적인 자태로 솟아 있는 바간의 사원과 불탑을 보면 그 자체가 불국토이고 경이로운 신비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넓은 들판 바다에 섬처럼 자리하고 있는 쉐산도 파야와 탓빈뉴 사원, 부파야 파고다를 보고 느끼는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13세기가 되면서 바간왕조는 급격하게 쇠퇴해갔다. 강성하였던 제국의 왕들은 교만하였고 통치는 게을렀다. 사원에 과도한 토지를 주어 세입은 줄었고 불교는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 분쟁하였다. 국가의 부를 쏟는 대규모 불교건축 조성이나 토지 및 인력의 공급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고갈시켰다. 이처럼 미얀마 최고의 왕국, 바간은 겨우 200여년이 지난 후 국가경영에 실패하고 내부적 분열로 인하여 중국을 장악한 몽고족, 즉 원(元)의 세조 쿠빌라이 칸에게 정복당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깐수 4세는 대륙을 평정한 쿠빌라이 칸의 복속요구를 거절하였고 사절을 처형했고 이런 이유로 바간은 원나라에 접수되었고 깐수 4세는 살해되었다. 또한 몬족 뿐 만 아니라 서부 아라칸, 동부 샨족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바간의 버마에 대한 지배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후 바간왕조 이후 미얀마는 샨족에 의한 인와 왕조와 몬족에 의한 바고 왕조로 이어지고, 다시 따웅구 왕조와 꼰바웅 왕조로 계속되어 신비로운 불국토의 모습이 나름대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안타깝게도 바간의 헤아릴 수 없는 불교유적은 1975년에 발생한 진도 6.5의 지진에 의하여 커다란 손상을 당하였다. 다행히도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많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남대 건축학부 연구석좌교수
![]() 미얀마로 불교를 전래시킨 인도 아노라타왕 |
버마족은 지금의 미얀마 땅에서 처음부터 살았던 종족이 아니었다. 오래전 그들은 중국 북서부지방인 감숙성에서 남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티벳과 운남을 거쳐 기원후 2세기경에는 현재의 버마 지역까지 도착해 작은 나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최초의 왕조를 시작한 때를 108년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후세에 이르러 소급한 상한연대일 뿐이고 분명한 형태를 지닌 고대국가가 버마 땅에 성립된 것은 11세기에 들어서였다. 즉 11세기 중엽 바간왕조의 영명한 군주 아노라타(Anawratha)라는 왕이 등극하면서 미얀마의 주된 종족인 버마족이 통일왕조를 이루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가 통치한 시기에 미얀마는 본격적으로 통합을 시작하였다. 이웃 국가 타톤을 정복하였고 바간에만 해도 5,000여기의 탑과 사원이 들어서는 경이로운 불국토를 세웠다. 아노라타왕은 남부지방에 주로 살고 있는 몬족출신의 승려 신 아라한(Shin Arhahan)의 건의를 받아들여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발전시켜 국교로 정하였고, 이를 통한 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이룬 뒤 몬 왕국들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타톤왕국을 시작으로 남부의 여러 왕국들을 하나씩 흡수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타톤왕국은 버마 하부지역에 위치한 신 아라한의 고향이었으며 불교문물의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귀중한 팔리어경전, 30개의 장경, 그리고 약 3만 여명의 몬족 승려와 기술자가 바간으로 옮겨왔다. 버마족은 몬족의 부와 문화를 옮겨와 바간을 강화 발전시켰다. 아노라타왕과 승려 신 아라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바간에는 빠르게 불교가 퍼져나갔고 주변의 여러 나라에도 소승불교가 확산되었다. 특히 아노라타는 소승불교의 중심지인 스리랑카가 전쟁으로 파괴되자 승려와 불경을 보내 불교문물의 재건을 지원했고 그 답례로 부처의 치아를 얻어 왔다. 이 보물을 모시기 위한 쉐지곤(Shwezigon)불탑을 건설하는 등 많은 불사가 행해졌다. 또한 불교를 관장하는 조직인 상가(僧團)도 정비되었다. 상가는 이후 왕조의 교체와 상관없이 존속하며 미얀마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바간왕조에서 아노라타왕을 계승하여 불교적 지배력을 이어간 인물은 찬싯따(Kyanzittha)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틸루인만(Thiluin Man, 1084-1113)왕이다. 그는 아노라타 왕의 사후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오른 후 몬 왕실을 달래고자 타톤의 왕위 계승자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냈다. 또한 그는 외국과의 관계에서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자신이 직접 인도에 가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성도지 부다가야를 방문했고, 중국에 까지도 사절을 보내어 무역로를 확보하여 했다.
찬싯따 왕의 뒤를 이은 왕이 깐수 1세이고 그 다음이 깐수 2세이다. 이 때 바간왕국은 비교적 안정된 발전을 이루었고 버마화가 크게 이루어졌다. 즉 버마어가 공용어로 정착되고 강 주변과 평원에 수리시설이 확대되었으며 개간지를 넓혀 생산력이 증대되었다. 또한 실론에서 소승불교를 직접 받아들여 불교의 순수성이 고양되기 시작하였고 불교국가로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
![]() 미얀마 바간의 거리를 달리는 우마차 행렬 |
특히 바간의 역대의 왕들은 불교 후원자였으며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거대한 불교사원을 건설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부처의 치아, 흰 코끼리 등의 보물을 모으는 일도 왕의 중요한 업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결과 바간 왕조는 약 4,400개의 불교 유적을 건설하는 등 불교문화와 건축,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시기가 되었다. 아노라타왕의 쉐지곤사원과 찬싯타왕이 세운 몬 양식의 화려한 아난다(Ananda)사원은 대표적인 사원건축이다. 황금색의 웅장한 쉐지곤파고다는 바간의 유적 중에서 제일로 꼽힌다. 미얀마 불탑의 표본이 된 이 탑은 부처님의 치아와 머리뼈가 봉안된 곳이다.
현재까지도 장엄하고 매혹적인 자태로 솟아 있는 바간의 사원과 불탑을 보면 그 자체가 불국토이고 경이로운 신비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넓은 들판 바다에 섬처럼 자리하고 있는 쉐산도 파야와 탓빈뉴 사원, 부파야 파고다를 보고 느끼는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13세기가 되면서 바간왕조는 급격하게 쇠퇴해갔다. 강성하였던 제국의 왕들은 교만하였고 통치는 게을렀다. 사원에 과도한 토지를 주어 세입은 줄었고 불교는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 분쟁하였다. 국가의 부를 쏟는 대규모 불교건축 조성이나 토지 및 인력의 공급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고갈시켰다. 이처럼 미얀마 최고의 왕국, 바간은 겨우 200여년이 지난 후 국가경영에 실패하고 내부적 분열로 인하여 중국을 장악한 몽고족, 즉 원(元)의 세조 쿠빌라이 칸에게 정복당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깐수 4세는 대륙을 평정한 쿠빌라이 칸의 복속요구를 거절하였고 사절을 처형했고 이런 이유로 바간은 원나라에 접수되었고 깐수 4세는 살해되었다. 또한 몬족 뿐 만 아니라 서부 아라칸, 동부 샨족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바간의 버마에 대한 지배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후 바간왕조 이후 미얀마는 샨족에 의한 인와 왕조와 몬족에 의한 바고 왕조로 이어지고, 다시 따웅구 왕조와 꼰바웅 왕조로 계속되어 신비로운 불국토의 모습이 나름대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안타깝게도 바간의 헤아릴 수 없는 불교유적은 1975년에 발생한 진도 6.5의 지진에 의하여 커다란 손상을 당하였다. 다행히도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많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남대 건축학부 연구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