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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도시 광주서 외국인 119 소외 없어야죠”
[10년간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통역 자원봉사 최수명 씨]
2008년 신설된 봉사단체 14개 국어 57명 도우미 활동
밤·새벽에 호출돼 항상 긴장...생명 구하는 일 큰 보람
2019년 12월 03일(화) 04:50
긴급 상황엔 119. 우리는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그 한 통의 신고 전화조차 어렵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상황 전달이 안 되기 때문. 최근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는 추세와 맞물려 이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다.

광주시에는 긴급 상황에 놓인 외국인을 위한 소통 창구가 있다. 광주시 소방안전본부가 운영하는 ‘외국어 119 통역 도우미’가 바로 그것. 2008년 신설된 자원봉사단체로, 현재 중국, 일본, 몽골 우즈베키스탄, 독일, 러시아 등 14개국어 57명의 통역 도우미가 119 신고 전화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어 통역을 맡은 최수명(38)씨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10년여 동안 통역 도우미 생활을 이어왔다.

중국에서 나고 자라 21살 때 한국으로 온 최씨는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상담사로 활동했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부부 갈등으로 가정법원에 출입하던 그는 점차 광주 지방법원, 검찰청, 기업 등 전문 통역사로 활동 범위를 넓혀 갔다.

“통역 일을 하다 보니 시에서 119 통역 도우미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마침 외국인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여서 일을 맡았습니다.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말이 안 통해 답답하고 힘든데, 광주에 있는 외국인에게 통역을 해 주면 그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니까요.”

‘119 통역 도우미’는 일반적인 통역사와는 다른 점이 있다. 생명이 위독한 긴급 상황을 맡게 된다는 점, 언제 긴급 상황이 생길 지 몰라 늘 긴장을 풀지 않아야 하는 점 등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광주를 찾아왔을 때, 새벽 4시에 중국인 투숙객 여성 두 분이 새벽에 누군가 계속 문을 두드린다며 신고했어요. 경찰 신고 번호가 중국은 110으로 우리나라와 달라서 119로 연락했던 거에요. 이렇듯 경찰, 소방 업무에 상관없이 통역 요청을 받는데, 주로 밤과 새벽 시간에 일이 생겨요. 그래서 도우미들은 긴급 상황을 염두에 두고 늘 휴대폰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급히 전화를 받고 통역하는 것은 고된 일이다. 자원봉사 형식으로 운영되는 만큼 임금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57명의 도우미들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다른 어떤 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보람 때문이다.

“한번은 협심증을 앓던 중국인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은 적도 있어요. 통역을 도와 응급 처치를 하고 안전하게 병원에 이송했는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사망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어요. 생명을 구하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자기 재능과 능력을 통해 도와준 이들로부터 큰 감사를 받았으니, 사실 우리가 받은게 더 많은 셈이죠.”

최씨에 따르면 아직 많은 외국인이 119 신고 전화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광주·전남은 여행객보다 노동자가 더 많은데, 이들의 경우 119 번호를 알면서도 신고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다리 뼈가 부러진 듯 아파 119에 신고한 한 외국인 노동자는 다리보다 수술하고 깁스한 뒤 나올 돈을 더 걱정하더라고요. 불법체류자로 밝혀져 추방당할까 두려워 선뜻 신고를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권과 생명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합니다. 119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관과 네트워크가 잘 발전해 광주 지역 모든 외국인이 생명과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에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