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하륜·정도전…조선 위인들이 들려주는 직장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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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하륜·정도전…조선 위인들이 들려주는 직장 생존기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조선 직장인 열전 신동욱 지음
2019년 11월 29일(금) 04:50
조선시대 대신들은 왕에게 ‘고용된’ 이들로, 이들은 매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궁중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책가도.


“사내정치라는 단어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있다. 실력과 상관없이 학연, 지연 등으로 파벌을 형성하여 불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인식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사내정치가 이루어지는 회사에서는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원인을 자신의 실력이 아닌 사내정치 탓으로 돌리게 된다. 일단 조직과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 회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그 부정한 수혜자로 보이는 개인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품을 수가 없다.”(본문 중에서)



위에 언급한 대로 ‘사내정치’는 양면성을 지닌다.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첨꾼의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다.

조선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사대정치 일인자로 신숙주를 빼놓을 수 없다. 쿠데타를 도모하는 수양대군의 눈에 그가 든 것이다. 신숙주는 평소 수양대군의 아버지인 세종으로부터 ‘국사를 맡길 만한 인물’이라고 칭찬을 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그는 수양대군 라인에 서면서 동료의 신임을 얻는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가장 큰 방패로 동료들의 울타리라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조선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직장 생존기를 엮은 책이 나왔다. 국사학을 전공하고 네이버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동욱 씨가 펴낸 ‘조선 직장인 열전’은 조선의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에서의 현명한 처세술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왕조 500년을 이끈 이들은 왕과 ‘고용된’ 여러 대신들이었다. 사실상 대신들은 녹(祿)을 받는 직장인이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고용된 이들은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저자는 처세의 대가로 하륜을 꼽는다. 실력과 처세 능력을 갖췄으며 누구보다 조직생활을 잘할 수 있는 인재라는 것이다. 그는 신문고를 도입하고 태조실록 편찬에도 참여했으며 좌의정을 역임했다.

조선 건축 초기, 정도전은 정적을 배제하고 숙청을 단행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에 밀려나 있던 하륜과 권근에게 왕조를 위해 함께 일할 것을 부탁한다. 하륜은 이성계가 병석에 눕자 충청도 관찰사로 발령난다. “이방원과 하륜이 결탁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정도전의 견제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륜은 뭔가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어느 날 잔치를 연다. 이 자리에 정도전의 견제를 받던 이방원도 참석한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하륜은 취한 척 이방원에 다가가 술을 따르다 엎지르고 만다. 이방원이 화를 내고 가버리자, 하륜이 그를 따라가 말을 건넨다. “신덕왕후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주상께서 병석에 누워있으신 지금이 기회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여건이 성숙하기를 기다렸던 하륜의 치밀함이 먹히는 순간이었다. 이후 하륜은 충청도에 내려가 조용히 지내고 있었고,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겸손으로 약점을 메운 맹사성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좌의정과 우의정, 이조판서와 대사헌을 역임한 그의 힘은 ‘겸손’이었다. 그의 부친 맹희도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었다. 조선 왕조에 충성할 수 없다고 각오하고 피신해버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격려했다.

“고려 왕조는 더 이상 없다. 마침 네 스승인 권근이 너의 출사를 권하고 있으니 새 왕조에 몸을 담아 백성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해라.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은 너의 할아버지와 나로 충분하다.”

조선왕조에 들어온 초창기에 그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겸손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처신”으로 점차 신뢰를 얻었다.

“맹사성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면서 불필요한 꼬투리가 잡히지 않도록 항상 겸손하게 처신하되, 마땅히 해야 할 말은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오직 백성을 위해 정치하겠다고 맹세했다.”

이렇듯 책은 직장인의 관점에서 조선의 인물을 보면서 역사 속 선배들의 다양한 처세술을 소개한다.

저자는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속에서 직장 내 상사, 동료, 선후배라는 대인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되고, 평판 관리나 사내정치처럼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민출판·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문학박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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