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5·18 진압 거부 경찰들 ‘갈길 먼 명예회복’
당시 경감급 이상 13명 시민 지키려다 파면 후 합수부서 고초
90일 구금·고문 당한 故 이준규 목포서장 39년만에 무죄 판결
안병하 국장 포함 2명 명예회복…경찰청 자료 부족 이유 11명 방치
2019년 10월 14일(월) 04:50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5





·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을 거부해 파면을 당한 고(故) 이준규(당시 총경) 전 목포경찰서장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故) 안병하(당시 경무관) 전 전남경찰국장에 이어 두번째 명예회복이다.

다만 5·18 직후 고초를 겪은 경찰 중 수십여 명은 아직까지 명예회복은커녕 경찰 자체적으로도 자료부족을 핑계로 당시 억울하게 내려진 징계조차 취소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정부 차원의 ‘5·18 경찰 역사 바로잡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 따르면 형사2단독(부장판사 임효미)은 지난 11일 포고령 위반, 직무유기 등 혐의로 1980년 8월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이 서장에 대한 재심을 열어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이 서장의 행위 시기와 동기, 사용수단, 결과 등을 볼 때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볼 수 있으며,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이 서장은 1980년 5월 21일 안병하 국장의 명령에 따라 구내 방송으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같은 날 밤 9시께 경찰서내 총기를 배에 실어 목포 고하도로 향한 뒤 5월 23일 오전 10시께 복귀한 혐의로 기소됐다.

옛 보안사령부는 1980년 5월30일 ‘직무유기 경찰관 보고’(職務遺棄 警察官報告) 문건을 작성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이 서장을 자위권 행사 소홀과 직무유기 혐의로 ‘계엄사에서 구속조사’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즉시 승인이 났다. 이 서장은 파면된 뒤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90일 동안 구금·고문당한 끝에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5년간 투병하다가 1985년 암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7월 6일 국가보훈처는 이 서장을 5·18유공자로 인정했으며, 이 서장의 사위 윤성식(65)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와 딸 이향진(60)씨는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 5·18연구자 등은 이 서장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5·18 때 국민 생명을 지키다 고초를 당한 경찰을 전수조사해 명예회복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1980년 6월19일 작성한 ‘광주 사태와 관련된 문책대상 경찰관 조치’를 살펴보면 안 국장, 이 서장을 비롯한 안수택 전남청 작전과장·양성우 전남청 경무과장·김상윤 나주서장·김희순 영암서장(이상 총경), 안병환 화순서장(경정), 이정방 전남청 장비계장·이윤권 화순서 경무과장(이상 경감) 등 간부 9명을 문책 대상으로 꼽고 있다. 5·18 직후 직위 해제·파면·의원면직을 당한 총경급 이상 경찰 간부는 13명, 감봉 등 징계를 당한 직원은 64명에 이른다.

일부 유족은 경찰청에서 직접 복권(復權)이나 징계 취소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경찰 측은 자료 부족을 이유로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죄 판결을 받은 이 서장조차도 아직까지 파면 처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서장의 유족은 경찰이 직권으로 파면 처분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소송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서장의 사위인 윤성식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증거를 만들어야 하는 신군부는 목포 시위가 평화롭게 마무리되자 장인어른을 가장 가혹하게 처벌했다”며 “지자체나 경찰청에서 후대가 기억할 수 있는 명예회복 방안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안병하 국장의 아들 호재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본인 때문에 고초를 당한 부하 직원들을 안타까워했다”며 “지난해 경찰청에 아버지를 포함한 경찰의 명예회복을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기록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됐다”고 지적했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