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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길래
2019년 08월 30일(금) 04:50
여름휴가 기간에 ‘천년의 질문’을 읽었다. 조정래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재벌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사주간지 기자를 중심으로 입법·사법·행정을 비롯해 재벌과 언론 등이 온통 부패의 고리로 엮인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마치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이 소설로 되살아난 듯했다.

‘오적’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970년.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하지만 50년이 다 되어 가는 그 긴 세월에도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권력과 명예와 돈을 거머쥔 수많은 ‘도적’들이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러니 작가는 천년을 이어 온 원초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요즘 같은 시국에는 더욱 ‘국가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방관 속에 진행된 일본의 경제 침략, 러시아와 중국의 우리 영공 침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바람 앞의 등불’이라면 너무 심한가. 나라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던 대통령의 말씀이 공허하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봐도 조국(祖國)을 구하려는 이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국(曺國)을 구하려는 세력과 그를 내치려는 세력 간의 정파 싸움만 어지러울 뿐이다. ‘이번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듯 상호간에 쉴 새 없이 날선 공방만 오간다.

과연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는 일찍이 시인이 오적 중의 하나로 지목했던 장관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민심이 많이 돌아섰다. 한때 그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이들마저 실망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민심이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딸의 ‘금수저 입학’ 문제다. 고교·대학·대학원을 필기시험 한 번 치르지 않고 통과하는 ‘신(神)의 재주’를 보며 국민은 할 말을 잃었다. 고작 2주 동안 인턴을 하며 의학 논문 주인 몫인 제1저자를 차지한 것도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신의 솜씨’라 할 것이다. 조 후보자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딸만은 하늘로 비상하는 용으로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만신창이 된 조국 후보자



그랬으니 대학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일 게다. 남의 집 자식들은 개천에서 가재·붕어로 살라 하고 제 자식은 용으로 승천시키려고 별짓 다했다는 비난이 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랬으니 정의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나 엄마의 정보력도 없는 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 서민층은 무력감에 공분(公憤)을 감추지 못한다.

“재산만 56억 넘는 분이 그렇게 딸 장학금 받고 싶었나요? 유급 두 번이나 한 딸인데.” 그런 원망의 소리도 들린다. 한마디로 ‘국민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역린’(逆鱗)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다. 이 비늘을 건드리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인다고 전해진다. 그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꼈으면 ‘국민 역린’이란 말까지 나돌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조국 후보자를 생각하면 한편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일찌감치 딸이 좋아하는 드럼이나 치게 하고 의사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자식이 뭐길래. 하긴 생전에 이병철 회장도 평소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세 가지 중 하나로 자식 농사를 꼽았다지 않던가.(나머지 두 가지는 골프와 조미료 사업에서 미풍이 미원을 이기지 못한 것)

어찌 됐든 ‘진공청소기로 빨아도 먼지 하나 없을’ 것 같던 그였기에 배신감은 더욱 큰 것 같다. 아직까지는 ‘의혹은 의혹일 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내로남불’이란 말로도 부족했던지 직접 그를 겨냥한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까지 생겨나 회자(膾炙)되고 있으니.

사모펀드만 해도 그렇다. 공모펀드의 반대쪽에 있는 듯한 이게 무엇인지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이 방면에 완전히 젬병인 나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들리는 말로는, 부모와 자녀들로만 구성된 펀드일 경우 부모가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아 위약금을 내면 자녀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투자자끼리 주고받은 위약금이니 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절묘한 절세 방법이다. 조 후보자가 가입한 펀드도 친족으로만 구성돼 있고 그의 두 자녀도 포함돼 있다. 이러니 개구리·붕어·가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조로남불’에 민심 돌아서



그럼에도 조 후보자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조 후보자들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가 끝까지 버텨서 사법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가진 것 없는 ‘달동네 좌파’에게 물었더니 역시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고구마 줄기 따라 무수한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그렇게 많은 흠결이 불거지고 있는데도 아직 그를 지지하느냐? 그랬더니 달리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가진 것 많은 ‘강남 좌파’지만 그래도 ‘같은 좌파라서 지지하느냐’고 또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사법 개혁 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아, 사법 개혁! 소설 ‘천년의 질문’에는 우리 사회의 관행인 전관예우의 실상이 자세히 묘사된다. 특히 재벌들에게 전관예우는 골치 아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요술 지팡이’나 다름없다. 재판하던 판사가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기도 하며, 그들은 ‘전관예우’라는 막강한 보너스에 힘입어 수 년 만에 수백 억대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다. 검사도 썩었고 판사도 썩었다. 이를 어찌 현실이 아닌 픽션이라고만 우길 수 있을 것인가.

사법 개혁의 필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한데 사법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조국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조국이 무너지면 수구 꼴통 세력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춤을 출 텐데, 그 꼴만은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게 우리 지역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인 듯한데,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 이 일을 어쩌나. 일단 수사가 시작됐으니 ‘사람에게는 절대 충성하지 않는다’ 했던 어느 칼잡이(윤석열 검찰총장)의 ‘칼춤’을 구경하면서 느긋이 결과를 기다려 보는 수밖에.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