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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겨울여자’와 호스티스 영화들
육체의 욕망마저 통제한 ‘겨울공화국’
도시 형성·향락산업 확대로
호스티스 영화 양산
1970년대 여주인공 영화의 중심
‘트로이카’ 장미희·정윤희·유지인
눈요기 아닌 연기력 인정 받아
억압적 현실서 성적 판타지로 탈피
2019년 08월 21일(수) 04:50
정윤희
70년대 한국영화를 견인했던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여성주인공이 영화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70년대 초 연속해서 흥행 1위를 차지한 김기영의 ‘화녀’(1971)와 ‘충녀’(1972)는 물론, ‘별들의 고향’(1974·이장호)의 ‘경아’와 ‘영자의 전성시대’(1975·김호선)의 ‘영자’는 당대의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관객들은 남 얘기 같지 않은 여성주인공들의 기구한 인생에 공감하며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영화는 1977년 ‘이화’를 탄생시키며, 70년대가 여성 캐릭터의 시대였음을 재차 증명했다.

장미희


‘겨울 여자’(1977·김호선)의 이화(장미희)는 시대를 앞서간 캐릭터였다. 대학에 입학한 이화는 자신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온 요섭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러나 이화는 요섭이 성적인 접촉을 시도하자 도망친다. 이 사건으로 요섭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이화는 교내 신문기자인 석기와 만나 사랑하지만 군대에 간 석기 역시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이때부터 이화는 불안한 삶 속에 떨고 있는 남성들을 따뜻한 체온으로 감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화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성적으로 개방된 여성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이런 이화의 행동은 기존의 윤리관과 성 모럴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관객들은 인습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이화의 성적인 모험에 반응했다. 이것은 향후 펼쳐질 성적 가치관의 변모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고, 70년대 후반 호스티스영화들이 유행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도시의 형성과 향락산업의 확대는 호스티스영화를 양산했다. 매춘부나 술집여성들의 생활세계를 드러내는 일군의 영화들은, 관객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억압적인 현실로부터 성적인 판타지로 탈피하고자 했던 관객들의 욕구에 부흥했다.

이 시기 호스티스영화 속의 여성들은,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 억압받고 희생되는 모습으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정윤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나는 77번 아가씨’(1978·박호태)만 해도 그렇다. 윤고나(정윤희)는 송계남(김희라)과 아버지의 빚 때문에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윤고나는 바람을 피우는 송계남에게 딸을 빼앗기고, 딸을 되찾기 위해 호스티스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등골을 빼먹으려는 송계남과 그녀의 몸뚱이만을 노리는 온갖 종류의 남성들 사이에서 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영화를 향한 열광적인 지지는 정윤희로 하여금 ‘꽃순이를 아시나요’(1979·정인엽)에 출연하는 것을 부채질했다. 시골에서 상경한 은하(정윤희)는 다방레지로 일하면서 사진작가 남준(하명중)에게 순정을 바친다. 하지만 그는 천하의 바람둥이었다. 그리고 레슬링 선수였던 성구(김추련)를 만나 동거하지만 성구 집안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고, 결국 은하는 환락가의 ‘꽃순이’로 전락한다.

‘욕망’(1975·이경태)으로 데뷔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정윤희는, 이렇듯 단 두 편의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 정윤희의 스크린 속 얼굴은 남달랐다. 당시 관객들은 정윤희가 무엇을 연기하는지 보다 정윤희의 출중한 외모를 보고자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정윤희는, 자신이 남성 관객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모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후 출연작들인 ‘죽음보다 깊은 잠’(1979·김호선), ‘최후의 증인’(1980·이두용),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정진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정진우), ‘안개마을’(1982·임권택)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O양의 아파트’(1978·변장호)는 김자옥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서울 국도극장에서 65일간 장기 상영되어 28만 여명을 끌어 모았던 ‘O양의 아파트’는, 어려운 형편에 어쩔 수 없이 호스티스 생활을 시작한 오미영(김자옥)이 몇 사람의 남자를 만나지만, 결코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이 시기 트로이카 여배우중 한 명이었던 유지인 역시 호스티스 영화에 출연했다. ‘26×365=0’(1979·노세한)에서 유지인은 남자친구에게는 순결을 잃고, 회사의 상사에게는 배신을 당하고, 호스티스생활을 하며 만난 사내 역시 공금횡령으로 감옥에 갇히는 등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을 연기했다. 유지인은 이 영화 이후에 ‘가시를 삼킨 장미’(1979·정진우)에서 부잣집 외동딸이자 일류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 등장해 성적으로 타락하고 결국 좌절하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고두심 역시 호스티스영화에 출연했다.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1979·박용준)가 바로 그 영화로, 한 남자를 사랑했던 호스티스가 자식을 낳아 기르지만, 아버지한테 보낼 수밖에 없는 아이 때문에 울고 또 울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여주인공의 직업이 호스티스인 것을 제하고는 ‘미워도 다시 한번’을 곧바로 떠오르게 하는 영화다.

이렇듯 이 시기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은 호스티스영화에 출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호스티스영화들은 수없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들 영화들은 호스티스의 자전 수기나 수기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윤고나의 수기소설을 영화화한 ‘나는 77번 아가씨’와 오미영의 수기를 영화화한 ‘O양의 아파트’, 그리고 26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수희의 일기장을 수기형 소설로 바꾼 ‘26×365=0’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호스티스, 창녀, 하층계급 여성 혹은 여대생의 성경험과 남성편력을 과감한 섹스묘사로 접근한 호스티스영화에 관객들이 열광했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신정권 통치 하에서 국민의 육체는 강력히 억압된 채 정신이 강조되었고, 육체는 국가의 필요에 복무하도록 훈육되었다. 그리고 육체의 욕망은 부정, 억압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의 해소만이 허락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관객들은 ‘겨울 여자’의 이화가 육체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에 숨죽이며 환호했고, 호스티스영화들을 통해서는 자신의 억압된 성적 욕망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렇게 국민들의 육체의 욕망마저 통제했던 겨울공화국은 1979년 10월 26일 막을 내리게 된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