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때 공군수송기 김해로 ‘시체’ 이송
육본 문건에 기록…행불자 가능성 속 진실 규명 목소리
5·18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나왔다. 5·18 연구자들은 해당 시체가 5·18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을 살펴보면 해당 문건 110쪽 ‘공수지원(수송기)’란에 (1980년) 5월 25일 김해에서 광주로 의약품과 수리부속품 7.9t을 운송했고, 비고란에는 한자로 시체(屍體)가 적혀있다.
이에 대해 5·18 연구자들은 당시 공군 수송기가 김해에서 의약품과 수리부속품을 싣고 광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시신을 운송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해당 시신은 민간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군에서는 통상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을 ‘시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다른 문건에선 관련 기록을 누락한 정황도 발견됐다.
1982년 2월 육군본부가 작성한 ‘계엄사’(戒嚴史) 396쪽 ‘항공수송’(일자별)란 5월25일자에는 김해~광주 운항기록이 빠져 있다.
이성춘 송원대 국방경찰학과 교수는 “‘소요진압과 그 교훈’은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이 5·18 발생 1년 뒤 여러 군 기록을 취합해 광주 상황을 분석한 자료”라면서 “해당 문건에 나온 ‘시체’라는 표현이 민간인과 군인 중 누굴 가르키는지, 어디에서 어디로 왜 운송했는지 꼭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에 따르면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공식 인정 받은 사람은 모두 84명이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을 살펴보면 해당 문건 110쪽 ‘공수지원(수송기)’란에 (1980년) 5월 25일 김해에서 광주로 의약품과 수리부속품 7.9t을 운송했고, 비고란에는 한자로 시체(屍體)가 적혀있다.
군에서는 통상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을 ‘시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다른 문건에선 관련 기록을 누락한 정황도 발견됐다.
1982년 2월 육군본부가 작성한 ‘계엄사’(戒嚴史) 396쪽 ‘항공수송’(일자별)란 5월25일자에는 김해~광주 운항기록이 빠져 있다.
한편, 광주시에 따르면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공식 인정 받은 사람은 모두 84명이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