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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인물]<42> 에필로그
약무호남人 시무국가
고려 2대왕 혜종부터 소록도 마리안느·마가렛까지
시대별 인물 26명 발굴 스토리텔링으로 재조명
‘의향·예향·문향’ 전라도 새 천년 문화·역사 이끌 자산
2018년 12월 12일(수) 00:00
전라도를 규정하는 세가지 키워드는 의향(義鄕), 예향(藝鄕), 문향(文鄕)이다. 수염 한올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공재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 (위 왼쪽부터)녹천 고광순 의병장(담양), 독립운동가 홍암 나철(보성), ‘소록도 할매’ 마리안느와 마가렛, (아래 왼쪽부터)홍남순 변호사(화순), 후은 김용구 의병장(영광), 건재 김천일 선생(나주), 장절공 신숭겸 장군(곡성).
올해는 전라도 정명(定名) 1000년의 해였다. 광주일보는 한해동안 전라도 천년역사를 빛낸 역사적 인물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했다. 시대별로 보면 나주출신 장화왕후(莊和王后) 아들인 고려 2대왕인 혜종부터 고흥 소록도에서 평생 의료봉사를 펴온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또한 활동분야 역시 왕을 비롯해 대통령, 장군, 의병장, 독립운동가, 유학자, 예술가 등 다채롭다. 고려와 조선, 근·현대에 이르는 시대에 다양한 26명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라도 천년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전라도 천년역사를 빛낸 위인들은 ‘새로운 천년’을 향해 나아가는 의향(義鄕)·예향(藝鄕)·문향(文鄕), 전라도 문화·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원동력이자 자산이다.



전라도 천년역사에서 나주는 특별한 의미를 띠고 있다. 1019년에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명명한 ‘전라도’라는 이름의 한 축(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 천년 인물열전 첫 번째 인물은 고려 2대왕 혜종이었다. 혜종 어머니는 나주호족 오다련군의 딸인 장화왕후. 왕건이 태봉국 장군이던 시절, 나주 완사천에서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왕건에게 건넨 러브 스토리로 잘 알려진 여인이다. 혜종은 1011년 거란족이 2차 침입을 하자 외가인 나주로 몽진(蒙塵)을 오기도 했다. 그래서 나주는 고려시대에 ‘어향’(御鄕)으로도 불렸다.

시대별로 구분하면 고려시대 인물로는 혜종을 비롯해 최지몽(영암)과 신숭겸(곡성)을 소개했다. ‘별박사’로 불린 고려태사(太師) 민휴공 최지몽(907∼987)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했다. 또 태조 사후 외척들의 왕위 찬탈 역모를 사전에 예견해 막음으로써 고려 왕통을 지킬 수 있도록 힘썼다. 곡성 출신인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은 927년 후백제 견훤과 맞선 대구 공산전투 때 왕건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왕과 갑옷을 바꿔 입고 나가 싸우다 순절했다.

전라도를 규정하는 세가지 키워드는 의향(義鄕), 예향(藝鄕), 문향(文鄕)일 것이다.

전라도는 의향(義鄕)이다. 임진왜란 당시 건재(健齋) 김천일(나주)과 월파(月坡) 유팽로(곡성)는 문신이면서도 망설임없이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구한말에 유학자인 대극 이순식(영광)과 후은(後隱) 김용구(영광) 역시 책대신 총칼을 거머쥐었다. 녹천(鹿川) 고광순(담양) 의병장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충렬공(忠烈公) 제봉 고경명 선생과 둘째아들인 의열공 학봉 고인후의 의기(義氣)를 이어 실천했다. 한국사회에서 절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이태호(79) (사)유네스코 순천협회 대표는 널리 알려진 ‘약무호남 시무국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주어라 할 수 있는 앞부분을 생략한채 서술어에 해당되는 ‘약무호남 시무국가’만 인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의 방비에 필요한 유형·무형의 모든 것을 호남에 다 의지하고 군진을 한산도로 옮겨 해로를 널리 막음으로 만약 호남민중들의 저항문화가 없었다면 오늘날 어찌 국가가 보전돼 있으리.(若無湖南 是無國家)”

전라도는 예향(藝鄕)이다. 공재 윤두서(해남)와 소치 허련(진도), 수화 김환기(신안)가 대표적이다. 공재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함께 조선 후기 삼재(三齋) 화가로 일컫는다.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그의 자화상(국보 240호)은 우리나라 회화사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소치 허련은 초의선사(무안)의 도움으로 공재 가문의 화첩을 빌려 모사를 하면서 그림기초를 익혔다. 소치는 추사 김정희 문하에서 시(詩)·서(書)·화(畵)를 체계적으로 익혔고 남종화의 대가로 우뚝섰다. ‘작은 어리석음’이라는 의미의 소치(小痴)라는 호는 스승인 추사가 중국 원나라 대화가인 대치(大痴) 황공망(1269~1354)과 비교해 내려주었다. 신안 안좌도 태생인 수화 김환기는 뉴욕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달과 산, 달항아리, 학 등 고유한 한국정서를 상징하는 소재를 형상화했다.

전라도는 문향(文鄕)이다. 하서 김인후(장성)와 면앙정 송순(담양)의 학문과 문학은 시대를 초월해 현대까지 이르고 있다.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청백리의 상징인 아곡 박수량(장성)은 공직자들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했다. 다산보다 한세대 앞선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장흥)의 실학사상과 저술은 앞으로 더욱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 전라도 천년인물 시리즈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소개했다. 1882년 가리포진(완도)에 부임한 첨사(僉使·고을 수령)의 수탈과 학정에 맞서 주민들을 이끌었던 허사겸(완도)은 당대에 가리포 민란 주동자로 처형됐지만 현재는 의사(義士)로 재평가되고 있다.

벽소 이상민(순천)은 일제강점기에 기자활동을 하면서 농민운동과 청년운동을 지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판소리를 후원하며 문화운동을 벌여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맞섰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일제시대 활동상은 현재에도 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한 까닭에 국가유공자로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벽소처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각 지역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전라도 천년인물열전에는 외국인인 하멜(강진)과 마리안느·마가렛(고흥)이 포함됐다. 400여년전 난파해 조선에 들어온 후 강진과 여수에서 지내다 일본으로 탈출해 ‘하멜 표류기’를 남긴 하멜은 은둔의 나라 조선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40여년간 봉사활동을 편 ‘소록도 할매’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은 진정한 삶의 자세를 몸소 보여줬다. 이 밖에도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앞장선 고 김대중 대통령(신안)과 홍남순 변호사(화순)의 발자취도 빠뜨릴 수 없다.

전라도 천년역사를 빛낸 큰 인물들은 한국역사는 물론 사상사의 씨줄과 날줄을 형성했다.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척박한 환경속에서 황토빛 농토를 일궈오며 임진왜란과 구한말 등 시기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던 이름없는 민초들 역시 전라도 역사·문화의 큰 밑거름임은 물론이다.<끝>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