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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인물]<38> 담양 면앙정 송순
랩 닮은 가사문학, 송순은 조선시대 래퍼였다
한글가사 ‘면앙정가’ 등 수많은 작품 남긴 시인
담양군·가사문학관, 가사문학 현대화 잰걸음
2018년 11월 14일(수) 00:00
면앙정은 송순의 호이자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마항마을 옆 야산에 자리한 정자 이름이다. 면앙은 ‘땅을 굽어 백성을 살피고, 하늘을 우러러 임금을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면앙정은 조선시대 송순(1493~1582)의 호이자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마항부락 뒷산에 있는 정자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90년이라는 긴 생애 가운데 50년 세월을 관직에 종사한 관리면서 한글 가사(歌辭)문학 ‘면앙정가’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시인이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음악형식인 랩(Rap) 역시 조선시대 유행했던 가사문학에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면앙정에서 가마를 메다= 면앙정 송순의 나이 87세(1579년)때 과거급제 60돌을 축하하는 회방연(回榜宴)이 면앙정에서 열렸다. 회방은 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해가 된 때를 이르는 말이다. 선조가 꽃과 어주(御酒)를 내려 축하했다. 또 전라관찰사와 각 고을수령, 제자 등 100여명의 하객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제자인 송강 정철이 이색 제안을 했다.

“선생을 위해 직접 가마를 메어드리자!”

그렇게 해서 정철과 백호 임제, 제봉 고경명 등 4명의 제자들이 연로한 스승을 가마에 태워 언덕길을 내려왔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제자들이 가마꾼을 자청한 것은 ?까? 담양군지(誌)는 “송순의 관용(寬容)과 대도(大道)의 삶은 곧곧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선비들로 하여금 선생을 위해서 가마를 메는 돌쇠를 자청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라고 적고 있다. 송순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면앙정의 회방 잔치는 워낙 특별해 220 여년 후인 1798년(정조 22년)에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정조는 향시인 도과(道科)를 광주에서 치르게 했다. 이때 직접 출제한 시제가 ‘하여(荷輿)면앙정’이었다. 광주 유생들에게 면앙정 회방연때 제자들이 송순을 가마에 태워 집까지 모셔다 드린 일화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문제였다. 지난 10월 14일에는 면앙정 송순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해 ‘면앙정 송순 회방연 재현행사’가 열린 바 있다.





송순의 과거급제 60년 잔치를 묘사한 금봉 박행보 화백의 ‘면앙정 회방연도’. <한국가사문학관 제공>




송순의 과거급제 60년 잔치를 묘사한 금봉 박행보 화백의 ‘면앙정 회방연도’. <한국가사문학관 제공>










◇면앙정은 시가문학의 산실= 송순은 1493년 담양군 봉산면 기곡리 상덕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집안 당숙 뻘인 지지당 송흠을 비롯해 눌재 박상, 육봉 박우, 취은 송세림 등 대학자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27세(1519년)때 별시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간 후 승문원 부정자(종 9품)를 시작으로 한성부 판윤, 전라도관찰사, 나주목사 등을 거쳐 77세에 의정부 우참찬 겸 지춘추관사(정 2품)를 지냈다. 송순은 정치적 시련도 겪었다. 58세(1550년)때 이조참판을 하다가 반대파의 미움을 사 충청도 서천으로 유배를 갔다가 사흘 만에 평안도 순천으로, 다시 경기도 수원부로 옮겨 다니다 이듬해에 해배됐다. 앞서 53세(1545년)에 을사사화가 일어나 죄 없는 선비들이 줄줄이 목숨을 잃자 ‘상춘가’(傷春歌)를 지었다. 젊은 사림(士林)의 피해를 봄날 떨어지는 꽃으로 은유해 읊었다.

“꽃이 진다하여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이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심술부리는) 봄을 새와 무엇하리요.”

대중들에게 익숙한 한시는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이다. 명종이 어느 겨울날, 노랗게 핀 국화를 옥당(玉堂)에 내려 보내며 시를 지어 올리라고 했다. 갑자기 명을 받은 옥당관이 어쩔 줄을 모르자 마침 당직을 하고 있던 송순이 지었다는 작품이다. “풍상이 섞어 친 날에 갓 피운 황국화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桃梨)야 꽃이온 양마라 임의 뜻을 알괘라.”

송순은 면앙정가단(歌檀)의 창설자이자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였다. 그는 한글가사 ‘면앙정가’를 비롯해 시조와 한시 560여수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송순을 국문학사에서 우뚝 서게한 것은 ‘면앙정가’이다.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박준규 전남대 명예교수와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는 공저 ‘달관과 관용의 공간 면앙정’(2000년)에서 “송순은 강학(講學)·시회(詩會) 등을 베풀어 호남의 선비와 학자를 배출해냈을 뿐만 아니라, 호남시단이 곧 조선의 시단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기회와 발판의 제공은 물론 역량을 계발하였는바, 그에 대한 평가는 이로부터 출발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가사문학과 현대 랩 일맥상통= 송순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문학기행 일번지는 면앙정이다.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마항마을옆 해발 50m 가량의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경사가 제법 급한 정자에 올라서면 울긋불긋 가을빛깔에 둘러싸인 면앙정이 눈에 들어온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정자가 단아하다. 정자 뒤편에 서서 바라보면 풍경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장쾌하게 펼쳐진다.

송순은 32세(1524년)때 같은 마을의 곽씨로부터 땅을 구입한 뒤 41세때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62세때 담양부사 도움으로 중창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지 16년 후 정유재란때 소실됐다가 1654년(효종 5년)에 후손들이 중건했다. 면앙정은 시가문학의 산실이었다. 한 정자를 두고 똑같은 제목의 시가 창작됐다. 특히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사암 박순, 청계 양대박, 급고자 이홍남, 석재 윤행임 등 7명의 문인이 ‘면앙정 30영(詠)’을 노래했다.

“된서리 걷힌 후에 산빛이 비단이로다/ 황운(黃雲)은 또 어찌 넓은 들판에 펼쳐 있는고….”

이정옥 한국가사문학관 해설사가 ‘면앙정가’의 가을 대목을 읊조린다. 그는 “송순은 시가문학의 큰 역할을 하신 어르신”이라며 “면앙은 땅을 굽어 백성을 살피고, 하늘을 우러러 임금을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뜻은 송순의 ‘면앙정 삼언가’(三言歌)에 잘 드러나 있다. “숙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仰有天)/ 그 가운데 정자를 앉혔으니(亭其中)/ 호연지기의 흥취가 나는구나(興浩然)…”

한편 담양군과 한국가사문학관(관장 임윤택)은 가사문학의 현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6회째를 맞은 ‘송순 문학상’을 공모하고 있으며, 가사문학 학술대회와 가사문학 대상, 전국 가사낭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한국 가사시 100인선(選) 시리즈와 김옥애 동화작가의 가사동화집, 계간지 ‘오늘의 가사문학’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9일 열린 전국 가사문학 학술대회에서는 눈에 띄는 논문 한편이 발표됐다.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는 ‘한국 가사문학의 활성화 방안과 제언’ 논문을 통해 ‘고등래퍼2’에서 준우승한 배연서-이로한의 랩 가사가 현대 가사시라는 주장을 펴면서 이렇게 제언한다.

“특히 현대시나 시조시 등으로부터, 혹은 한시나 유행가로부터 익힌 예술적 기법이나 소설, 수필, 희곡 등 여러 성격의 서술문학적 소양은 모두 적절히 대체되고, 변용되거나 부가 또는 제거되는 과정을 거쳐서 아름다운 가사시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