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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12> 에필로그
철저한 진상규명 이뤄져야 화해·상생의 미래 열린다
2018년 10월 30일(화) 00:00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전경.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5·18행불자 67기의 빈 무덤이 있다.
“철저한 과거사 청산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첫발이다. 우리는 모든 나치 부역자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 4일 독일에서 만난 옌스 롬멜(Jens Rommel·46) 나치범죄중앙수사국장은 “독일은 내부적으로 90세가 넘은 노인들을 굳이 법정에 세워야 하는지, 과거사 청산은 어느 수준, 언제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이 있었다”며 “끝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정권과 상관 없이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이 운영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주일보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지난 8월부터 10여차례에 걸쳐 국내외 과거사 청산 작업을 살펴봤다. 함평양민학살사건, 여순사건, 제주 4·3사건을 비롯한 독일의 나치 부역자 처벌,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흔적 지우기 과정을 통해 5·18의 과제와 미래를 내다봤다.

국내외 사례에서 드러나 듯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다음 단계인 처벌과 보상, 기념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독일은 전문 수사기관을 운영하며 진상규명과 처벌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은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나치 부역자가 특정되면 보유하고 있는 인명부를 통해 정확한 신원과 소재를 확인해 추적하고 있다.

수사국에서 자료를 이관받은 검찰은 전범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진상규명이 이뤄진다.

2015년 8월에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한 전직 나치친위대 SS대원 오스카 그로닝(당시 94세)을 수사한 독일 검찰은 “그로닝의 업무가 나치 정권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고 결국 유대인 학살에 힘을 보탰다”며 살인 관련 30만개 항목의 혐의가 있다고 봤다.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기념관.


수사국은 70년 전 작성된 71만5300개의 나치 부역자 명부, 63만3896개의 범행 장소, 38만1576개의 부대 정보 문서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동안 처벌을 받은 나치 부역자들의 모든 재판 기록 원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60년간 전세계를 뒤져 나치 전범 7000여명을 찾아내 처벌을 이끌었다.

내전으로 100만명이 희생된 스페인은 ‘망각협정’을 맺어 과거사 청산을 외면했지만 실종자 암매장 발굴, 보상 문제 등이 불거지며 최근 들어 과거사 청산이 진행되고 있다.

진보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며 2006년을 ‘기억의 해’로 선포하는 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과거사 청산작업의 핵심인 ‘역사 기억법’이 제정됐다. 최대 10만명으로 추산되는 내전 실종자 유해발굴 작업이 재개됐고 프랑코 전 총리의 청동상 제거 등 독재 흔적 지우기도 시작됐다. 올해에는 스페인 내전의 주역인 프랑크 총리와 내전 희생자들과 함께 묻혀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몰자 계곡’에 잠들어 있는 그의 유해 이장이 결정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 과거사 정리는 갈길이 멀다.



6·25 전쟁 전후 지역에서 일어난 대표적 민간인 피해사건인 여순사건과 함평양민학살사건은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유족들은 지난 70여년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1948년 10월부터 약 3년간 함평 일대에서 경찰·군인에 의해 민간인 1300여명이 희생된 함평양민학살사건은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과거사위)와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두차례 조사가 진행됐지만 898명만 규명됐을 뿐 아직 400여명에 대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제주4·3으로 촉발된 여순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1948년 10월부터 2년여간 민간인 1만여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군인들의 반란이었다는 이유로 군사 정권을 거치며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유족 또한 자칫 연좌제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 속으로만 삭였다. 또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유족이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들추면 애써 덮은 갈등의 불씨가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보상에 관한 특별법안’ 등 함평과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족들은 법이 하루 빨리 통과돼 희생자 진상규명과 보상이 속히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함평과 여순사건에 비해 제주 4·3은 진상규명 측면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미군정 시기부터 6·25 이후까지 7년간 최대 3만명이 희생된 제주 4·3 사건은 스페인 내전이 피카소의 미술작품 ‘게르니카’로 널리 알려졌듯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이 쓴 소설 ‘순이삼촌’로 참상이 전해졌다. 하지만, 여순사건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언급이 금기시 됐고 진상규명도 미흡했다.

4·3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규명 분위기는 1988년 5·18 국회청문회가 계기가 됐다. 당시 TV를 통해 청문회를 본 제주도민이 4·3에 대해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고 10년 후 DJ정권 때인 19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출범했고 2년 6개월 동안의 조사 끝에 2003년 10월 우리나라 첫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됐다. 정부 공식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며 제주도민들의 오랜 한이 상당 부분 풀렸다. 4·3사건 또한 5·18처럼 북한이 깊은 관여를 했다는 역사왜곡이 있었지만 진상조사보고서로 모두 날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주 4·3은 현재 진상규명 국면을 넘어 화해와 상생, 평화를 위한 기념사업에 중심을 두고 있다. 지난 2008년 조성된 제주4·3평화공원은 올해 처음으로 방문객 60만명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또 매년 4만7000개씩 만들던 4·3상징물인 동백꽃 배지(badge)도 내년에는 70만개 수준으로 늘려 제작할 예정이다.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앞으로 꾸려질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위원들은 독일처럼 계엄군을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각오로 조사에 임해야 한다”며 “5·18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

/글=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