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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 인물열전] <33> 목포-김대중 전 대통령 하
20년 전 뿌린 ‘햇볕정책’ 씨앗 한반도 평화로 영근다
2018년 10월 10일(수) 00:00
군사정권 시절 옥중 모습을 재현한 모습.
세계지도 모양으로 배치한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입었던 옷가지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 유품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입었던 옷가지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 유품들.














“이 상은 내게 인권과 민주주의의, 평화를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일생을 두고 믿기를 정의는 항상 승리하지만 당대에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정의 승리 신념’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정의 필승’을 믿는 일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고 보니 현세에서 과분한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2000년 노벨평화상 선정 당시 노르웨이 국영 텔레비전과의 전화 인터뷰)



◇한국인으로는 사상 처음 노벨상

이름은 한 사람의 일생을 규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아이덴티티이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인권, 민주, 평화를 상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한국인으로는 최초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일생을 통해 자유와 민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노고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2000년 당시 노르웨이 현지 언론은 “과거에는 이런저런 자격 시비가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었다. 그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더 타임스’ 10월 14일자 사설에는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한반도의 화해를 추진하기 위한 끈기 있는 노력으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돌아간 노벨 평화상은 끈질긴 암흑 속에서의 한 줄기 소망의 빛”이라고 평가했다.

올해도 지난 8일 노벨경제학상 발표를 끝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가려졌다. 해마다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스웨덴 한림원에 이목이 집중된다.

올해 노벨상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단연 평화상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의사 드니 무퀘게와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 출신인 무라드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숱한 살해 위협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전쟁과 성폭력 종식을 위해 힘썼다. 그들이 걸어왔던 가시밭길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험하고 가혹했다. 노벨 평화상이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어떠한 위협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의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의 불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그날은 마침내 2018년 오늘에 이르러 가시적인 개화의 단계로 진입했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인권과 평등의 수호자’라는 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수년 동안 김 대통령이 평화 증진과 서로 다른 문화의 이해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김 대통령의 재임 중 의미 깊은 순간은 평양 방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첫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순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은 한반도 문제에 외교와 협력으로 접근한다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햇볕 정책은 고립이 아닌 파트너십이 남북한 모두에게 한층 더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그의 확신을 보여주었습니다.”(‘김대중 자서전’ 중)



◇소년 김대중을 품은 목포와 근대공원

목포 삼학도(三鶴島)에 자리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학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은 삼학도는 목포를 상징하는 장소이며, 그 목포를 상징하는 인물은 바로 ‘인동초’ DJ다. 이곳에 있으면 삼학도 너머 먼 바다의 파도소리가 옆구리에 와 부서지는 느낌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목포의 눈물’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호남 연고의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기아의 전신)의 응원가로 불린 것은 지명이 내재하는 한의 정서 때문이다. DJ의 대통령 당선으로 목포의 눈물이, 남도의 눈물이 어느 정도 멈췄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삼학도 앞에 서면 여전히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목포의 눈물’이 온전히 멈추는 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염원인 한반도 통일과 세계 평화가 실현되는 날일 것이다.

지난 2013년 6월 15일 문을 연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전시동과 컨벤션동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동은 모두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부터 국민의 정부, 노벨평화상 수상 등 일대기가 담겨 있다. 또한 영상실, 대통령 집무실도 꾸며져 있다. 컨벤션동은 국제회의나 특별기획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목적 강당과 세미나실을 갖췄다. 전시 자료는 노벨평화상 기념메달, 학적부, 연설문, 옥중 서신, 생활 소품 등 총 4830여 점의 유품이다.

현재 목포시는 고증과 자문회의를 거쳐 ‘소년 김대중이 들려주는 목포이야기’라는 주제로 근대 역사 이야기 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2019년 12월까지 만호동 일대에 근세기 목포사람들의 생활상을 주제로 이야기 공원이 조성된다. 목포의 역사 문화시설 스토리텔링 집약 구축 일환으로 소년 김대중이 겪고 기억했던 목포 근현대사를 관광자원화하자는 취지다.

하의도에서 목포로 나온 소년 김대중의 학창 시절을 재현하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김대중 평전’에는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계단이 없어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렸다. 다락방에 난 창문으로 목포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글을 잃고 꿈을 키웠다”라는 부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이야기 공원 안에는 소년 김대중 가족이 거주했던 가옥이 재현된다. ‘소년 김대중 공부방’에는 목포 앞바다를 바라보는 인물 모형과 교육과 역사 관련 문구를 그래픽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말이면 소년 김대중의 모습을 목포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가고 없지만 목포와 남도에, 나아가 한반도와 세계에 끼쳤던 영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DJ가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 그는 영원히 살아 있다. 그를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했던 동반자 이희호 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로마서’에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할 바 아니다”라 했습니다. 이 성구같이 당신의 생애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으며 극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죽음의 고비를 몇 차례 넘기셨고 망명, 연금, 감옥 생활 등의 괴로움에도 신념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탄압하는 세력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용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이희호 여사 ‘사랑하는 당신에게’ 중)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