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미술관’ 개관 기증작품 400여점 … 치열했던 예술세계 조명
남구청, 동사무소 리모델링 … 9일 개관
전시실·화가의 방·아카이브 공간 등
7월 31일까지 개관전 ‘이강하의 길’
전시실·화가의 방·아카이브 공간 등
7월 31일까지 개관전 ‘이강하의 길’
![]() 올해 타계 10주기를 맞은 이강하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광주시 남구 양림동 ‘이강하 미술관’이 오는 9일 정식 개관한다. |
“가장 두려운 것은 병마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짜고 붓을 쥘 힘이 없어져 가는 것”이라 했던 이강하(1953∼2008) 작가의 유작은 300호 대작 ‘무등산의 봄’이다.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5년간의 투병 생활 동안 그는 한 순간도 붓을 놓지 않았고 서석대와 철쭉, 새가 어우러진 화사하고 따스한 봄날의 무등산을 우리에게 남기고 이별했다.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없음을 무엇보다 힘들어했던 그는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병간호를 하던 아들 이조흠(35) 작가에게 “손이 자꾸 떨리니 손을 묶어달라”고 하며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강하 작가 10주기를 맞는 올해 영산강과 무등산 등 남도의 풍광과 역사를 화폭에 담아온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강하 미술관’이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문을 연다. 개관(9일)을 앞둔 6일 미술관 큐레이터인 딸 이 선(37)씨와 공간을 둘러봤다. 전남대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아버지 작품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은 이 씨는 광주문화재단에 근무하다 3개월 전부터 유작 기증과 정리 등 개관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 유족은 작품 400여점과 유품 134점 등 534점을 기증했다.
영암 출신인 이 작가는 단청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전통 오방색과 샤머니즘적 사상을 이어받았고, 이후 독창적인 화풍으로 그림 세계를 구축해갔다. 서른이 넘어 조선대 미술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광주민중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투옥된 5·18국가 유공자다.
이강하 미술관이 양림동에 문을 연 인연은 1980년에서 출발한다. 지명수배자로 쫓기던 그는 양림동 친척집에 숨어 살았고, 결혼 후 양림동에 30여년 동안 머물며 한국의 전통사상과 정신을 담은 ‘맥’ 시리즈와 무등산 사계·누드가 상징인 ‘무등산’ 연작을 작업했다. 지금도 미술관 명예관장을 맡은 아내 이정덕씨는 양림동에 살고 있다.
광주시 남구청이 개관한 미술관은 옛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2층 규모로 1층에는 전시실, 2층에는 자료실과 수장고실이 갖춰져 있다. 봄이 되면 미술관 야외에 관람객들이 쉬어가는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미술관 입구에는 ‘화가의 방’을 마련했다. 굳어버린 유화물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팔레트와 낡은 붓, 작업하며 듣던 CD, 박경리의 ‘토지’ 등 고인이 즐겨 읽던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실 뒷편은 편지, 전시도록, 일기 등을 모은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한다. 2층 자료실에서는 ‘꼼꼼했던’ 생전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들을 만났다. 슬라이드 사진을 보관한 작품별 개별 앨범과 낡은 방명록, 아내 이정덕씨가 출근하며 적어둔 점심 반찬 메모까지.
개관전 ‘이강하의 길’은 오는 7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작은 1970년대 작품부터 유작 ‘무등산의 봄’까지 시대별 대표작으로 구성했다. 특히 대작의 작가로 알려진 그의 소품들은 어떤 전시에서도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수수하지만 올곧은 나무, 아이를 업고 가는 엄마의 뒷모습, 짙푸른 색감이 인상적인 산 등이 눈에 띈다. 전시실을 꽉 채운 작품은 13m 대형작품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선정돼 선보였던 그림으로 그의 트레이트마크인 누드와 풍경이 어우러져 압도적이다.
“아버지의 작품에는 대부분 ‘길’이 등장하는데 그 길이 바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길이자, 자신의 예술세계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거라고 생각해 전시 타이틀로 삼았어요. 이강하의 작품을 통해 예술세계와 사상을 전하고 싶다는 미술관의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하구요.”
이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뼛속까지 그냥 예술가였고 삶 자체 역시 작업의 연속이었다. 작업실에 들어가면 도통 나올줄 몰랐던 아버지는 전기장판을 깔고 작업하다 화상을 입기도 했고 “감옥 같은 데 가둬두고 물감과 붓만 줘서 그림만 그리게 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작가의 메시지와 작업 정신을 관람객들에게 전해주는 미술관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또 양림동이 문화역사마을이라는 점도 잘 활용할 계획입니다.”
이 씨는 이곳이 동사무소였다는 점을 감안, 동네 친화적인 ‘예술 동사무소’를 컨셉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민중이다. 사생대회,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미술관이 주민들과 친해지는 것이다.
한편 개관식은 오는 9일 오후 3시 최영호 남구청장, 이정덕 명예관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문의 062-674-8515.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이강하 미술관이 양림동에 문을 연 인연은 1980년에서 출발한다. 지명수배자로 쫓기던 그는 양림동 친척집에 숨어 살았고, 결혼 후 양림동에 30여년 동안 머물며 한국의 전통사상과 정신을 담은 ‘맥’ 시리즈와 무등산 사계·누드가 상징인 ‘무등산’ 연작을 작업했다. 지금도 미술관 명예관장을 맡은 아내 이정덕씨는 양림동에 살고 있다.
광주시 남구청이 개관한 미술관은 옛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2층 규모로 1층에는 전시실, 2층에는 자료실과 수장고실이 갖춰져 있다. 봄이 되면 미술관 야외에 관람객들이 쉬어가는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미술관 입구에는 ‘화가의 방’을 마련했다. 굳어버린 유화물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팔레트와 낡은 붓, 작업하며 듣던 CD, 박경리의 ‘토지’ 등 고인이 즐겨 읽던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실 뒷편은 편지, 전시도록, 일기 등을 모은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한다. 2층 자료실에서는 ‘꼼꼼했던’ 생전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들을 만났다. 슬라이드 사진을 보관한 작품별 개별 앨범과 낡은 방명록, 아내 이정덕씨가 출근하며 적어둔 점심 반찬 메모까지.
개관전 ‘이강하의 길’은 오는 7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작은 1970년대 작품부터 유작 ‘무등산의 봄’까지 시대별 대표작으로 구성했다. 특히 대작의 작가로 알려진 그의 소품들은 어떤 전시에서도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수수하지만 올곧은 나무, 아이를 업고 가는 엄마의 뒷모습, 짙푸른 색감이 인상적인 산 등이 눈에 띈다. 전시실을 꽉 채운 작품은 13m 대형작품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선정돼 선보였던 그림으로 그의 트레이트마크인 누드와 풍경이 어우러져 압도적이다.
“아버지의 작품에는 대부분 ‘길’이 등장하는데 그 길이 바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길이자, 자신의 예술세계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거라고 생각해 전시 타이틀로 삼았어요. 이강하의 작품을 통해 예술세계와 사상을 전하고 싶다는 미술관의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하구요.”
이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뼛속까지 그냥 예술가였고 삶 자체 역시 작업의 연속이었다. 작업실에 들어가면 도통 나올줄 몰랐던 아버지는 전기장판을 깔고 작업하다 화상을 입기도 했고 “감옥 같은 데 가둬두고 물감과 붓만 줘서 그림만 그리게 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작가의 메시지와 작업 정신을 관람객들에게 전해주는 미술관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또 양림동이 문화역사마을이라는 점도 잘 활용할 계획입니다.”
이 씨는 이곳이 동사무소였다는 점을 감안, 동네 친화적인 ‘예술 동사무소’를 컨셉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민중이다. 사생대회,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미술관이 주민들과 친해지는 것이다.
한편 개관식은 오는 9일 오후 3시 최영호 남구청장, 이정덕 명예관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문의 062-674-8515.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