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조선초 축조 광주읍성
둘레 2.5㎞·높이 2.7m 석축
공북·충장치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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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광주시 문화재 자료 제20호로 지정된 광주읍성은 1454년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2008년 광주읍성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의 출토 유물을 기준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축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주읍지’는 석축 둘레가 8253척(약 2.5㎞), 높이 9척(약 2.7m)이며 성안에 100개의 우물과 못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성문으로 동(서원·전남여고 뒷담)문, 서(광리·황금동 일대)문, 남(진남·옛 전남도청 뒤)문, 북(공북·충장치안센터)문 등 4개 문이 있었으며, 지금의 전남여고∼충장치안센터∼황금동∼옛 전남도청 뒤∼옛 광주지방노동청 뒤로 지났다. 성내 주요 건축물로는 객사, 아사, 향청 등이 있다. 객사의 중심건물인 광산관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궐패가 모셔져 있었는데 왕이 파견하는 특사로부터 왕명을 받들기도 했다.
한편 광주시는 고려 말 축성된 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헐린 광주읍성의 4대 성문을 오는 2021년까지 모두 복원할 계획이다.
‘광주읍지’는 석축 둘레가 8253척(약 2.5㎞), 높이 9척(약 2.7m)이며 성안에 100개의 우물과 못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성문으로 동(서원·전남여고 뒷담)문, 서(광리·황금동 일대)문, 남(진남·옛 전남도청 뒤)문, 북(공북·충장치안센터)문 등 4개 문이 있었으며, 지금의 전남여고∼충장치안센터∼황금동∼옛 전남도청 뒤∼옛 광주지방노동청 뒤로 지났다. 성내 주요 건축물로는 객사, 아사, 향청 등이 있다. 객사의 중심건물인 광산관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궐패가 모셔져 있었는데 왕이 파견하는 특사로부터 왕명을 받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