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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서] <14> 케팔로이나 섬에서 멘토를 생각하다
의심이 만들어낸 파국 … 사랑과 질투의 섬 케팔로니아
2017년 10월 26일(목) 00:00
이오니아제도 중에서 가장 큰 케팔로니아섬의 현청 소재지 아르고스톨리 항구.
크레타를 떠난 비전호는 밤새 서진을 하리라. 그리스 섬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케팔로니아로 가기 위해서다. 케팔로니아는 베니스로 돌아가는데 가장 가깝고 용이한 항구 아르고스톨리가 있는 섬이기도 하다. 그동안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를 찾아서 강행군했으므로 휴식을 취하고 싶다. 크레타에서 카잔차키스의 영혼을 만났으니 나는 이번 여행 중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음이다. 배는 밤바다를 달리고 있다. 검은 파도가 배의 옆구리까지 다가왔다가 히죽히죽 웃으며 사라진다. 크루즈가 선사하는 밤의 문화도 나름대로 낭만과 흥이 있다. 공연하는 극장과 술을 파는 바가 있고, 면세점들은 갖가지 상품을 내놓고 승객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곳에서도 지긋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은사님 객실로 들어서고 만다. 은사님 객실에는 벌써 동문 두어 명이 와서 차를 마시고 있다.

케팔로니아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케팔로스가 왕이 되어 섬을 지배하면서부터 섬 이름이 현재와 같이 붙여졌다고 한다. 남녀의 신들이 질투하는 신화의 한 대목인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흥미를 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막장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케팔로스와 그의 아내 프로크리스가 만들어낸 스토리도 흡사하다. 프로크리스의 의부증이 문제였다. 남편 케팔로스가 사냥에 빠져 있는 동안 프로크리스는 의심을 한다. 어느 날 케팔로스가 사냥을 하다가 숲에서 땀을 들이며 “아우라여, 이리 와서 피곤한 나를 위로해다오.”라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이때 숲의 정령 사티로스가 케팔로스의 혼잣말을 듣고는 프로크리스에게 달려가 ‘케팔로스가 연인과 속삭이고 있다’고 일러바친다. 막장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해서 고자질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사티로스는 아우라를 새벽의 여신 에오스(라틴어 아우로라)로 잘못 들었던 바, 아우라는 ‘산들바람’이란 뜻으로 케팔로스는 사냥하느라고 땀이 나자 산들바람에게 몸을 식혀달라고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란 뜻을 예술작품에서 ‘모방할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라고 정의했는데, 케팔로스가 부른 ‘아우라’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견강부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프로크리스는 당장 숲으로 달려가 남편의 외도를 확인하려고 덤불 속에 숨었는데, 케팔로스는 그녀를 사냥감으로 오인하고 만다. 결국 프로크리스는 케팔로스가 던진 창에 찔린 채 “절대로 에오스와 결혼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죽는다. 비극이 시작된 셈이다. 어이없이 아내를 살해한 케팔로스는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법정에 서게 되고, 아테네 사람들은 그에게 추방령을 내린다. 그런데 세옹지마라고나 할까, 극적인 반전이 온다.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케팔로스는 암피트리온과 함께 타포스 원정에 참전하여 승리한 뒤 케팔로니아 섬을 차지하고 왕이 됐으니까.

케팔로스는 오디세우스 집안의 시조라는 설이 있다. 그 설에 따르면 케팔로스는 아들을 얻기 위해 델포이의 신탁에 물어본 결과 신탁소를 나선 뒤 처음 마주치는 암컷과 관계하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으로 마주친 암곰과 신탁을 따르기 위해 정을 통했다. 그러자 암곰은 아리따운 여인으로 변하여 그에게 아들 아르키시오스를 낳아주었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르키시오스라는 것이다. 아무튼 아르키시오스가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인 라에르테스의 아버지가 되는 까닭에 오디세우스 집안의 시조가 됐다고 하는데, 비난하면서도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왜 그리스신화가 재미있는지 조금은 알겠다.

이윽고 은사님의 선상강의에 나는 수첩을 꺼내든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선상강의를 들을 기회도 이틀뿐이다. 은사님의 강의야말로 이번 여행의 격조를 한껏 높여준 영혼의 비타민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나는 은사님의 말씀을 기록하며 사유해 왔던 것 같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소크라테스를 더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소크라테스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죽습니다. 독배를 들고 죽었는데 소크라테스의 죄는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그리스의 신을 부정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의 청년들을 미혹했다, 잘못 이끌었다는 것이었어요. 말하자면 라이벌들한테 걸려 죽은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에 연설을 했지요. 그때 소크라테스는 ‘나는 이제 죽는다.’는 얘기를 어떻게 했느냐면 ‘나는 이제 영원히 꿈 없는 잠속으로 간다.’고 했는데 ‘꿈 없는 잠’이란 죽음을 의미하는 거지요. 소크라테스 때부터 시작된 비유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꿈 없는 잠’이란 말을 여기저기서 잘 써요. 아무튼 그리스 고전을 보면 참 신선한 비유가 많아요.”

불가의 스승이신 법정스님께서 불일암을 지을 때 상량문에 ‘꿈 없는 잠을 이루게 해주십시오.’라는 문장을 쓰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다시 문학의 스승으로부터 비슷한 구절을 또 듣다니 신통하다. 물론 법정스님의 ‘꿈 없는 잠’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의미와 달리 번뇌 망상이 없는 깊은 잠을 뜻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 꿈 없는 잠 속으로 간다. 내가 이렇게 모함을 받아서 세상을 먼저 떠나는 게 행복한지, 나에게 부당한 혐의를 씌워서 억울한 재판을 받도록 한, 나의 죽음을 기뻐할 너희들이 더 행복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너희들은 두고두고 악의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520 대 120인가 그랬을 거예요. 아테나 사람들이 투표를 했는데 소크라테스의 죽음 쪽에 아주 압도적으로 많은 찬성표를 던졌어요. 작은 목소리들이 있었으나 그건 소크라테스를 살려낼 힘이 없었어요.”

그렇다. 다수의 의견이 곧 정의는 아닌 것이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되 소수의 의견을 그것만큼 존중하라는 게 민주주의 정신이 아닐까. 최근에 나는 어느 종교집단의 수장 선거를 보고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언론에 ‘가을비 내리는 날에 맞이하는 234 대 82란 숫자의 두려운 작위(作爲). 과거의 그림자와 미래의 빛이 조우한 시절인연의 함의(含意). 이것이 바로 자비의 촛불을 계속 들어야 하는 당위(當爲)라고 믿는다.’라는 문장으로 기고한 원고의 끝을 맺은 바 있다. 은사님이 피곤하신지 소크라테스에 대한 더 이상의 이야기는 내일 말씀하시겠다고 미루신다. 나 역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 눈을 떠보니 먼동이 트는 꼭두새벽이다. 또 다시 토막잠을 잤는지 창문을 투과하는 햇살이 눈을 찌른다. 서둘러 나와 아르고스톨리 항구의 아침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기억은 바람둥이처럼 믿을 수 없고 추억을 확실하게 소환해 주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생각으로.

아르고스톨리 항구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답지 않게 평온하다. 유럽판과 에게해판이 만나는 지점이어서 지진이 잦다는 섬이다. 그렇지만 지진은 인간이 극복하고 견딜 만큼 시련을 주는지 아르고스톨리 항구는 아름답기만 하다. 바다도 산소가 충만한 듯 크레타해보다 더 진한 쪽빛이다. 일행은 항구에 내려서 조를 나누어 택시를 부른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섬을 일주해 보자고 한다. 먼저 가는 목적지는 드로가라티 동굴이다. 2차선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택시 기사가 멀리 있는 이타카 섬을 보고 가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멘토’에 관한 일화가 있다. 기원전 1,200년께 이타카 섬의 오디세우스왕은 트로이전쟁에 출정하면서 친구 멘토르(Mentor)에게 아들 텔레마쿠스의 교육을 맡기고 떠난다. 멘토르는 스승이자, 아버지의 친구로서 텔레마쿠스를 성실하고 따뜻하게 가르친다. 10여 년 후 전장에서 돌아온 오디세우스왕은 지혜롭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을 보고 멘토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멘토’는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멘토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지혜를 가르쳐주는 영혼의 스승으로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선지식(善知識)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