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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중심 잡기
2017년 09월 20일(수) 00:00
채희종 논설위원
전문가 집단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언론인들은 어떤 경우가 가장 힘든가요?” 매스컴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아닐 뿐더러 대다수가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이라 답변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질문자는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과 기능, 신문기자의 고충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지만 기자들의 궁극적인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답변을 기억해 봤다.

우리는 수시로 사실(fact)과 진실(truth)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한편으론 팩트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공개된 팩트에 대한 체크에 들어간다. 팩트 체크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직업성에 기반한 무조건적 반사에 가깝다. 여기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팩트 체크 대상의 의도적인 누락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은 사실과 진실 사이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하루하루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하고,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한다. 사실은 확인 가능한 대상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실은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특히 사실은 얼마든지 왜곡되거나 조작될 수 있는 가변적인 성격이 강하다. 우리는 평소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을까?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 편견에 의해 의도적으로 진실보다는 사실만을 보는 것은 아닐까?

팩트만 보면 깜박 속을 수도

십수 년 전에 온 신문을 도배했던 사건 하나가 있었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아들이 아버지를 몽둥이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후 첫날은 ‘패륜 아들 친부 살해’라는 식의 기사가 신문의 사회면을 온통 도배했다. 이후 둘째 날에는 오렌지족 생활을 하던 아들이 귀국 후 생활비를 주지 않는 데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거나 사업 자금을 대주지 않아 불상사가 생겼다는 식의 가십거리 속보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사건 사흘째 되던 날, 모든 언론의 태도는 360도 바뀐다. 숨진 이는 그동안 20년 이상을 술만 마시면 아내와 자식들을 구타해 왔다는 것이다. 사건 당일엔 아버지의 폭력이 유난히 심해 어머니가 혼절할 지경에 이르자, 아들이 아버지를 밀쳤는데 하필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패륜아로 지탄받던 이가 한순간에 가정 폭력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숨지게 한 것은 엄연한 팩트다. 하지만 진실은 의도된 살인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 과실치사인 것이다. 살인 사건의 진실은 아들의 과실로 밝혀졌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숨지게 만든 것만큼은 변함없는 팩트다. 외국 유학을 마친 부유한 집 아들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점에서 팩트 체크가 소홀해진, 또 부정적 편견이 팩트를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사회적 편견이 팩트를 왜곡시켜 진실까지 덮어 버리는 스토리는 문학작품의 단골 메뉴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는 우연히 손에 쥔 총으로 자신의 친구를 때렸던 아랍인을 쏘게 된다. 사건으로만 보면 우발 범죄였지만 재판부는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해 사형을 내린다.

관습과 통념이 왜곡 부른다

계획된 살인이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재판부는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계획범죄를 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아랍인의 살해 경위와 계획성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은, 즉 종교적·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은 뫼르소의 무뢰한 태도를 따져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팩트를 볼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볼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면서 중요한 문제이다. 팩트는 고정돼 있지만 얼마든지 은폐되거나 조작될 수 있다. 팩트와 팩트 사이의 연결 고리를 추적해 진실에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팩트만을 좇는 자세를 경계하는 것이다.

/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