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몰락의 길’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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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백발은 아름답다. 중년의 은발도 멋있다. 은발(銀髮) 하면 먼저 생각나는 이가 있다. 강경화 외무장관이다. 처음 그가 대중 앞에 섰을 때 그 무엇보다 하얀 머릿결, 참 인상적이었다.
며칠 전 강 장관의 은발 논란이 있었다. 해프닝의 당사자는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 그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장관의) 하얀 머리가 참 멋있습니다. 여자분들이 지금 백색 염색약이 다 떨어졌답니다. 그렇게 인기가 좋답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김 의원의 발언에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사과하라’는 외침이 이어졌다. 김 의원은 ‘도대체 뭘 사과하라는 말이냐’는 듯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맞고함을 질렀다. 발언 직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성적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정도를 과연 ‘성적 비하’나 ‘여성 비하’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정책 질의는 하지 않고 외모만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칭찬이 어찌 성적 비하인가.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이도 많을 줄 안다.
자, 지면에 옮기기도 민망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미성년 제자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인 배용제(53) 씨 말이다. 그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배 씨는 2011년 7월부터 3년간 자신의 미성년 문하생 9명을 대상으로 성희롱과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는 너의 가장 예쁜 시절을 갖고 싶다” “시 세계를 넓히려면 성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내가 네 첫 남자가 되어 주겠다” 따위의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창작실에서 여고생들의 몸을 강제로 더듬거나 성폭행했다고 한다.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어떤가? 죄질이 이 정도는 돼야 악질 중에 악질이라며 모두가 공감하지 않겠나.
정쟁의 희생양이 된 김이수
여기에 비하면 앞서 김 의원의 발언은 그저 ‘성희롱 경범죄’ 축에도 끼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성적 비하’니 ‘여성 비하’니 하면서 그토록 흥분하고 나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바로 전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난 후의 앙금이 작용했지 않나 싶다. 여당으로서는 김 후보자에 대한 부결이 그만큼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헌재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은 1988년 헌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지 않은가.
아무튼 국회 부결을 놓고 여권은 맹비난을 이어 갔다. 청와대는 ‘헌정 질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으로 이용한 가장 나쁜 선례’라며 ‘무책임한 다수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적폐연대’라거나 ‘탄핵과 정권 교체에 대한 불복’이라고 야 3당을 싸잡아 공격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잘한 것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 통과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만 믿고 야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욕을 가장 많이 먹고 있는 쪽은 국민의당이다. 부결될 만한 특별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던 김 후보자가 정쟁의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보수 야당과 손잡고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으니 국민의당을 향해 세간의 비난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한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국민의당 쪽에서는 “민주당에서도 반대표가 나왔을 것이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소신 투표를 했을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인준안 부결이 국민의당 의원들의 반대 탓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당 의원 중 절반 정도가 반대표를 던졌으리라는 건 모든 언론의 일치된 분석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비난이 어느 정도 심한지는 인준 부결 직후 해당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국민의당은 이 부결 건으로 우리와 결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고 조금이나마 남았던 애정도 모두 버리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이랑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냐?” 이밖에 “민주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을 잃었지만 국민의당은 호남을 잃었다”라는 댓글은 매우 날카로웠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뛰거늘
이러한 댓글들을 보며 한때 호남에서의 다당체제를 지지하고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이 잘 되기를 바란 적이 있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특히 “국민의당이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구나”라거나 “국민의당 몰락의 전주곡이 될 것이다”라는 댓글을 보면서는, 진한 아픔과 함께 요즘 말로 격한 ‘폭풍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캐스팅보트도 좋고 정국의 주도권도 좋다. 하지만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힘을 아무 데나 함부로 쓰면 결국 국민이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어찌 몰랐을꼬.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 했다. 아무래도 국민의당은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를 돌아보며 추이를 살폈어야 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에 나오는 대로 ‘상대방이 강하면 먼저 스스로를 보강해야 한다’는 피강자보(彼强自保)의 진리를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서두르다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눈앞의 작은 성취에 급급했지만 결국 작은 것이고 큰 것이고 얻은 것은 없었다. 게도 구럭도 다 잃었으니 민심의 요구를 저버린 처참한 결과다. 물론 정부의 양보를 노리는 한편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쇠뿔을 바로잡자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소만 죽게 된 꼴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멀리 뛴다’는 속담이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지혜다. 국민의당은 움츠려야 할 때와 뛰어야 할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헛발질을 날렸다. 그렇게 해서 존재감을 과시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당의 2중대’라는 소리야 듣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한국당 2중대’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정부 여당이 밉고 맘에 들 리 없음도 잘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현 정부가 잘한다는 의견(70%의 지지)이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조금은 참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았어야지.
개구리는 오줌을 함부로 누지 않고 일부러 오줌보에 가득 모아 두었다가 적을 만나면 한 번에 ‘찍’ 쏟아 붓는다고 한다. 앞으로 국민의당이 살아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갖기를 원한다면, 하다못해 이러한 개구리의 작은 지혜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며칠 전 강 장관의 은발 논란이 있었다. 해프닝의 당사자는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 그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장관의) 하얀 머리가 참 멋있습니다. 여자분들이 지금 백색 염색약이 다 떨어졌답니다. 그렇게 인기가 좋답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는 너의 가장 예쁜 시절을 갖고 싶다” “시 세계를 넓히려면 성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내가 네 첫 남자가 되어 주겠다” 따위의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창작실에서 여고생들의 몸을 강제로 더듬거나 성폭행했다고 한다.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어떤가? 죄질이 이 정도는 돼야 악질 중에 악질이라며 모두가 공감하지 않겠나.
정쟁의 희생양이 된 김이수
여기에 비하면 앞서 김 의원의 발언은 그저 ‘성희롱 경범죄’ 축에도 끼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성적 비하’니 ‘여성 비하’니 하면서 그토록 흥분하고 나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바로 전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난 후의 앙금이 작용했지 않나 싶다. 여당으로서는 김 후보자에 대한 부결이 그만큼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헌재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은 1988년 헌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지 않은가.
아무튼 국회 부결을 놓고 여권은 맹비난을 이어 갔다. 청와대는 ‘헌정 질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으로 이용한 가장 나쁜 선례’라며 ‘무책임한 다수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적폐연대’라거나 ‘탄핵과 정권 교체에 대한 불복’이라고 야 3당을 싸잡아 공격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잘한 것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지명한 뒤 국회 통과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만 믿고 야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욕을 가장 많이 먹고 있는 쪽은 국민의당이다. 부결될 만한 특별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던 김 후보자가 정쟁의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가운데 보수 야당과 손잡고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으니 국민의당을 향해 세간의 비난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한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국민의당 쪽에서는 “민주당에서도 반대표가 나왔을 것이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소신 투표를 했을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인준안 부결이 국민의당 의원들의 반대 탓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당 의원 중 절반 정도가 반대표를 던졌으리라는 건 모든 언론의 일치된 분석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비난이 어느 정도 심한지는 인준 부결 직후 해당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국민의당은 이 부결 건으로 우리와 결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고 조금이나마 남았던 애정도 모두 버리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이랑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냐?” 이밖에 “민주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을 잃었지만 국민의당은 호남을 잃었다”라는 댓글은 매우 날카로웠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뛰거늘
이러한 댓글들을 보며 한때 호남에서의 다당체제를 지지하고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이 잘 되기를 바란 적이 있는 나로서는 난감했다. 특히 “국민의당이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구나”라거나 “국민의당 몰락의 전주곡이 될 것이다”라는 댓글을 보면서는, 진한 아픔과 함께 요즘 말로 격한 ‘폭풍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캐스팅보트도 좋고 정국의 주도권도 좋다. 하지만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힘을 아무 데나 함부로 쓰면 결국 국민이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어찌 몰랐을꼬.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 했다. 아무래도 국민의당은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를 돌아보며 추이를 살폈어야 했다. ‘위기십결’(圍棋十訣)에 나오는 대로 ‘상대방이 강하면 먼저 스스로를 보강해야 한다’는 피강자보(彼强自保)의 진리를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서두르다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눈앞의 작은 성취에 급급했지만 결국 작은 것이고 큰 것이고 얻은 것은 없었다. 게도 구럭도 다 잃었으니 민심의 요구를 저버린 처참한 결과다. 물론 정부의 양보를 노리는 한편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쇠뿔을 바로잡자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소만 죽게 된 꼴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멀리 뛴다’는 속담이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지혜다. 국민의당은 움츠려야 할 때와 뛰어야 할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헛발질을 날렸다. 그렇게 해서 존재감을 과시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당의 2중대’라는 소리야 듣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한국당 2중대’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정부 여당이 밉고 맘에 들 리 없음도 잘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현 정부가 잘한다는 의견(70%의 지지)이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조금은 참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았어야지.
개구리는 오줌을 함부로 누지 않고 일부러 오줌보에 가득 모아 두었다가 적을 만나면 한 번에 ‘찍’ 쏟아 붓는다고 한다. 앞으로 국민의당이 살아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갖기를 원한다면, 하다못해 이러한 개구리의 작은 지혜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