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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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설을 쇰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닭의 해를 맞았다. 매년 1월1일이면 흔히들 무슨 해가 밝았느니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틀렸다. 갑자(甲子) 을축(乙丑) 육십갑자는 음력 기준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유년(丁酉年). 정유(丁酉)에서 정(丁)은 십간(十干)의 네 번째로 붉은 색을 상징하고, 유(酉)는 십이지(十二支)의 열 번째로 닭을 뜻한다. 그래서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다.
붉은 닭의 해라 하니까 ‘빨간 닭’이 어디 있느냐며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한데 상징으로서 말고 실제로도 있다.(강원도 횡성의 한 농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검붉은 색의 깃털이 있는 이 닭을 가리켜 조선시대엔 화계(火鷄)라고 했다. 화계를먹으면 몸이 뜨거워져 불이 나는 것 같다는데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계관만추도’(鷄冠晩雛圖)에도 등장하는 닭이다. 하지만 오로지 식용으로만 쓰이는 육계(肉鷄)가 들어온 후 화계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어찌 됐든 닭만큼 우리와 친숙한 동물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속담들이 이를 말해 준다. ‘닭 벼슬이 될 망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 ‘닭도둑이 소도둑 된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 모두 널리 알려진 속언(俗諺)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놓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닭 소 보듯’ ‘달구새끼 봉이 되랴’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닭은 구슬을 보리알만큼도 안 여긴다’(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라거나 ‘닭장에 족제비를 몰아넣는다’(남에게 가혹한 짓을 한다)는 말도 있다. 요즘 시국과 맞물려 그동안 금기(禁忌)가 되다시피 했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떠올리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몰랐던 국민학교 시절, 실제로 닭 모가지를 비틀어 본 적이 있다. 고사리손으로 애써 비틀었는데 잠시 기절했던 닭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푸드덕 날아가던 그 어릴 적 기억이 새롭다. 온 국민이 나서도 쉽지 않은, 닭 한 마리 잡기의 어려움을 그때 난 벌써 알아버린 거다.
방학을 맞아 시골에 갈 때면 외할머니는 닭장에서 아직 따뜻한 달걀을 꺼내 와 건네주시곤 했다. 우리는 젓가락으로 달걀 양쪽에 구멍을 내고 후루룩 들이마셨다. 날계란을 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그때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을 가리켜 ‘싸움닭’이라고 하는데 아직 국민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닭 한 마리를 잘못 건드렸다가 닭 부리에 얼굴을 쪼인 기억도 있다. 지금도 거울을 보면 그때의 흉터가 입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여하튼 지난 한 해만큼 닭이 수난을 겪은 해도 없을 것 같다. 조류인플루엔자로 3000만 마리에 가까운 닭이 산 채로 묻힌 것을 말함이 아니다. ‘닭대가리’라는 표현이 있지만 닭은 다른 조류들에 비해 똑똑하면 똑똑했지 멍청하진 않다고 한다. 주인도 알아보고 영역도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 한데 대통령을 조롱하면서 ‘닭그네’란 말까지 나왔으니 오히려 닭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는데, 계유오덕(鷄有五德)이 그것이다.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에 전요(田饒)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에 관(벼슬)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距)를 가진 것은 무(武)요, 적에 맞서서 감투하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알리는 것은 신(信)이다.”
한(漢)나라 때 한영이 지었다고 하는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을 오상(五常)에 비유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이란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곧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닭은 서로 불러 먹이를 취하니 인(仁)이 있음이요(相呼取食仁之德也) 싸움에 임했을 때 물러서지 않으니 의(義)가 있음이요(臨戰不退義之德也) 관을 바르게 썼으니 예(禮)를 갖췄음이요(正其衣冠禮之德也) 늘상 경계하여 지켜내니 지(智)가 있음이요(常戒防衛智之德也) 어김없이 때를 알리니 신(信)이 있음이라.(無違時報信之德也)
이처럼 오덕까지 갖추었건만 닭은 인간에 의해 늘 무시당하기 일쑤인데 특히 수탉은 문란한 성(性)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수탉은 사람처럼 성기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 그저 키스하는 수준이어서 짧은 시간에 여러 암컷들과 교미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걸 사람들은 문란하다고 하지만 그저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닭은 많은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있어 다산(多産)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결혼식 초례상에 닭을 보자기로 싸서 놓아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닭과 관련한 사자성어도 많다. 먼저 계견승천(鷄犬昇天)이다. 한나라 때 유안(劉安)이 비약을 만들어 먹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 그때 남은 비약 부스러기를 닭이랑 개가 주워 먹고 우주의 기운을 얻어 분수 넘치게 신선 노릇을 했다고 한다. 누구 한 명 권력자가 나오면 사돈네 팔촌까지 권력의 떡고물이라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행태를 계견(鷄犬)만도 못하다고 경계하는 말이다. 작금의 최순실 사태가 바로 그 꼴이다.
닭 한 마리 잡자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이때 생각나는 사자성어는 닭을 잡아 원숭이를 경계한다는 ‘살계경후’(殺鷄儆 )다. 곡예장의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지 않자 주인이 닭의 목을 쳐 원숭이를 길들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한 사람을 벌해 다른 사람에게 경고한다는 뜻이다.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우리도 이제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이뤄냄으로써 영혼도 없이 박근혜 정권에 부역했던 수많은 원숭이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수탉은 기독교에서 회개(悔改)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럽 교회의 첨탑에 닭 모양의 풍향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저들은 지금 눈곱만큼의 회개도 없이 쇠고집 못지않은 닭고집을 부리며 오히려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어둠 속에서 하릴없이 길고 긴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닭이 울면 언제나 어둠이 끝나고 새벽이 오는 법. 정유년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에게도 찬란한 새벽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내일은 또 금남로 촛불 집회(14차)에 머릿수 하나라도 보태러 가야겠다.
그런가 하면 ‘닭은 구슬을 보리알만큼도 안 여긴다’(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라거나 ‘닭장에 족제비를 몰아넣는다’(남에게 가혹한 짓을 한다)는 말도 있다. 요즘 시국과 맞물려 그동안 금기(禁忌)가 되다시피 했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떠올리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몰랐던 국민학교 시절, 실제로 닭 모가지를 비틀어 본 적이 있다. 고사리손으로 애써 비틀었는데 잠시 기절했던 닭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푸드덕 날아가던 그 어릴 적 기억이 새롭다. 온 국민이 나서도 쉽지 않은, 닭 한 마리 잡기의 어려움을 그때 난 벌써 알아버린 거다.
방학을 맞아 시골에 갈 때면 외할머니는 닭장에서 아직 따뜻한 달걀을 꺼내 와 건네주시곤 했다. 우리는 젓가락으로 달걀 양쪽에 구멍을 내고 후루룩 들이마셨다. 날계란을 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그때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을 가리켜 ‘싸움닭’이라고 하는데 아직 국민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닭 한 마리를 잘못 건드렸다가 닭 부리에 얼굴을 쪼인 기억도 있다. 지금도 거울을 보면 그때의 흉터가 입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여하튼 지난 한 해만큼 닭이 수난을 겪은 해도 없을 것 같다. 조류인플루엔자로 3000만 마리에 가까운 닭이 산 채로 묻힌 것을 말함이 아니다. ‘닭대가리’라는 표현이 있지만 닭은 다른 조류들에 비해 똑똑하면 똑똑했지 멍청하진 않다고 한다. 주인도 알아보고 영역도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 한데 대통령을 조롱하면서 ‘닭그네’란 말까지 나왔으니 오히려 닭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갖췄다는데, 계유오덕(鷄有五德)이 그것이다.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에 전요(田饒)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에 관(벼슬)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距)를 가진 것은 무(武)요, 적에 맞서서 감투하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알리는 것은 신(信)이다.”
한(漢)나라 때 한영이 지었다고 하는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을 오상(五常)에 비유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이란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곧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닭은 서로 불러 먹이를 취하니 인(仁)이 있음이요(相呼取食仁之德也) 싸움에 임했을 때 물러서지 않으니 의(義)가 있음이요(臨戰不退義之德也) 관을 바르게 썼으니 예(禮)를 갖췄음이요(正其衣冠禮之德也) 늘상 경계하여 지켜내니 지(智)가 있음이요(常戒防衛智之德也) 어김없이 때를 알리니 신(信)이 있음이라.(無違時報信之德也)
이처럼 오덕까지 갖추었건만 닭은 인간에 의해 늘 무시당하기 일쑤인데 특히 수탉은 문란한 성(性)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수탉은 사람처럼 성기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 그저 키스하는 수준이어서 짧은 시간에 여러 암컷들과 교미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걸 사람들은 문란하다고 하지만 그저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닭은 많은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있어 다산(多産)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결혼식 초례상에 닭을 보자기로 싸서 놓아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닭과 관련한 사자성어도 많다. 먼저 계견승천(鷄犬昇天)이다. 한나라 때 유안(劉安)이 비약을 만들어 먹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 그때 남은 비약 부스러기를 닭이랑 개가 주워 먹고 우주의 기운을 얻어 분수 넘치게 신선 노릇을 했다고 한다. 누구 한 명 권력자가 나오면 사돈네 팔촌까지 권력의 떡고물이라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행태를 계견(鷄犬)만도 못하다고 경계하는 말이다. 작금의 최순실 사태가 바로 그 꼴이다.
닭 한 마리 잡자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이때 생각나는 사자성어는 닭을 잡아 원숭이를 경계한다는 ‘살계경후’(殺鷄儆 )다. 곡예장의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지 않자 주인이 닭의 목을 쳐 원숭이를 길들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한 사람을 벌해 다른 사람에게 경고한다는 뜻이다.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우리도 이제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이뤄냄으로써 영혼도 없이 박근혜 정권에 부역했던 수많은 원숭이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수탉은 기독교에서 회개(悔改)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럽 교회의 첨탑에 닭 모양의 풍향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를 말아먹은 저들은 지금 눈곱만큼의 회개도 없이 쇠고집 못지않은 닭고집을 부리며 오히려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어둠 속에서 하릴없이 길고 긴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닭이 울면 언제나 어둠이 끝나고 새벽이 오는 법. 정유년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에게도 찬란한 새벽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내일은 또 금남로 촛불 집회(14차)에 머릿수 하나라도 보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