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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밝힌노래]<12> '사계''그날이오면'과 전태일
불꽃이 된 전태일, 촛불로 다시 타오른다
2016년 11월 21일(월) 00:00
전태일 열사 46주기를 맞아 지난 12일 서울 청계천6가 평화시장 앞 전태일동상 앞에서 추모객들이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지난 12일, ‘100만 촛불’의 현장에 있었다. ‘100만 촛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재확인한 횃불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명령’이라며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하야”를 외쳤다. 또 “1% 기득권층의 특권을 위해 나머지 99%의 국민은 버려져야 하느냐”는 불평등·불공정에 대한 항거였다.

46년 전에도 그랬다. ‘빈곤 퇴치’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농민을 희생시키며 근대화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상대적 빈곤을 낳았다. 상대적 빈곤은 불평등·불공정이었고, 인간의 존엄성 훼손이었다. 공동체는 붕괴됐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1970년 11월13일, 초겨울 날씨치고는 유난히 쌀쌀했다. 청계천6가 평화시장 구름다리 앞에는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던 이때 한 젊은 노동자가 가슴에 근로기준법 책을 꼭 안은채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뛰쳐나오며 울부짖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 말라”

22살 젊은 청년노동자 전태일이었다. 그는 이날 밤 10시 숨을 거뒀다.

전태일 분신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서울대 법대생들은 전태일 유해를 인수해 학생장을 거행하겠다고 나섰고, 전국의 대학가도 추도식을 열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2주일 뒤인 11월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탄생했고, 이후 1970년대에만 2500개의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이 사건은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어두운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계기가 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의 절규는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각성을 일깨웠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봉제업자 전상수와 이소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했지만 한없이 성실하고 진지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나이에 여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껌팔이, 우산장사, 리어카 뒤밀이 등등 평화시장 재단사가 되기까지 숱한 밑바닥 일들을 경험했다. 그렇게 일했건만 일당은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잔 값밖에 안되는 50원. 평화시장 다락방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가는 어린 여공들을 바라보며 잘못된 사회현실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됐다.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00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해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돼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돼야 합니까?”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야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마침내 그는 자신을 다 바쳐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불꽃이 되었다.

노래 ‘사계’는 전태일의 희생이 일깨운 각성의 시작점이다. 사계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2집(1989)에 실려있다. ‘그날이 오면’, ‘오월의 노래’의 작곡자 문승현이 만들었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 짧은 쌰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 간밤에 편지 한장 적어 실어 보내고 /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사계’는 1970∼1980년대 봉제 여공의 고단한 삶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 비장감을 더했다.

3·3·7 박수의 리듬을 쓰고 있어 발랄하고 경쾌하다. 뿐만아니라 빠르게 교체되는 화성, 통통 튀는 명사 나열식 가사, 끝말 처리의 반복 등도 경쾌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여성 보컬과 건반의 경쾌한 연주와는 달리 이 노래는 슬프고 고통스럽다. 좁고 침침한 공간에서 하루 14시간을 일했던 어린 ‘시다’들에게 찬란한 봄날은 없었다.

‘사계’는 주류 대중가요 차트에 오르며 민중가요가 주류가요계를 점령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대학생 퀴즈 프로그램인 MBC ‘퀴즈 아카데미’의 피날레 뮤직으로 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리메이크 열풍을 타고 그룹 거북이(테틀맨)에 의해 힙합 버전으로, 또 클럽하우스 버전으로 흥겹게 불렸다.

전태일을 추모하는 노래는 또 있다.

‘한 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눈에 / 뜨거운 눈물들 // 한줄기 강으로 흘러 /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 정의의 물결 넘치는꿈 // 그날이 오면 / 그날이 오면 / 내형제 그리운 얼굴들 / 그 아픈 추억도 / 아 짧았던 내 젊음도 /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 그날이 오면 / 그날이 오면’

80년대 최고의 명곡 ‘그날이 오면’이다. 또 ‘전태일 추모가’도 노동자들에게 애창됐다.

/서울=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