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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메아리를 듣다 러시아 권력의 심장 붉은 광장에서
⑥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
2015년 09월 17일(목) 00:00
붉은광장은 러시아 권력의 심장이다. 크렘린궁 성벽 앞에 레닌묘가 있고 멀리 성 바실리 대성당이 보인다. /모스크바=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지 열흘만인 8월10일 새벽 4시, 9288㎞를 달려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모스크바는 1200만 명이 거주하는 러시아 최대 도시이자,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며,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소련 연방이 생기면서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 곳으로 옮겼다. 모스크바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는 땅’ 또는 ‘습지’란 의미가 있다. 지명을 뒷받침하듯 도심 중앙에는 모스크바강이 ‘S’자를 그리며 흐르고 있다.

전남도교육청의 시베리아 횡단 독서토론 열차학교 참가자들은 종착지인 모스크바역에서 붉은광장으로 향했다. 붉은광장에 서면 크렘린궁, 굼백화점, 성 바실리 대성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벽 시간이라 한가하다.

붉은광장은 수 백년동안 이어져 온 러시아 권력의 심장이다. 메이데이와 혁명기념일에 붉은색 현수막을 박물관과 백화점 벽 등에 걸고 붉은 깃발을 손에 든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이면서 광장이 붉어졌다고 해 붉은광장이 됐다.

붉은광장 정면의 크렘린궁은 러시아 역사를 함축한다. ‘성벽’이란 뜻의 크렘린은 총 길이 2235m에 달한다. 평균 무게 8㎏의 벽돌로 지면의 기복에 따라 높이가 5m에서 19m에 이르게 벽을 쌓았다. 성벽에는 구세주 탑과 삼위일체 탑을 비롯한 탑 18개(높이 28∼71m)가 배치돼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이전하기 전까지 크렘린궁은 러시아 권력의 중심지였다. 러시아 정권이 다시 모스크바로 귀환한 시기는 옛 소련 정부가 이 곳을 청사로 활용하면서다. 크렘린궁이 다갈색 높은 벽 너머로 어깨를 쫙 펴고 있는 모습은 매우 남성적이다.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러시아 건축가가 아닌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했다.

성벽 앞엔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 레닌의 묘가 있고, 붉은광장 한 켠엔 ‘테트리스’ 게임의 배경인 성 바실리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황제가 성당이 무척 아름다워 똑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 속 성 바실리 대성당. 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빼어난 건축물이다. 200년간 러시아를 지배한 몽고군을 몰아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반 대제(이반 4세)의 명령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성 바실리 대성당은 양파모양을 한 9개의 돔과 형형색색의 성당 외벽이 특징이다. 높낮이가 다른 탑 9개가 숲 속 나무처럼 빼곡하게 들어섰다. 탑은 첨탑과 원탑이 있으며 큐폴라 색과 모양 또한 제각각이다. 부조화 속의 조화다.

열차학교 참가자들은 붉은광장에서 문학 플래시몹을 펼쳤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체홉, 푸쉬킨 등 러시아 문호 13인과 고은, 백석, 최인훈 등 우리 작가 13인의 초상을 가슴에 달고 그들의 문학과 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크렘린궁 안에는 성당이 몰려 있다. 성모승천 성당, 성 수태고지 성당, 천사장 성 미하엘 성당 등. 황금색으로 빛나는 성당이 있는가 하면 은은한 회색으로 도배한 성당도 있다. 그 모양과 형태도 제각각이다. 다만 모두가 양파머리라는 것은 같다. 양파머리 모양의 탑에는 마술사가 살고, 공주가 갇혀있을 것 같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짙은 색의 성상화가 가득하다.

붉은광장 인근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1941년 모스크바 전투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영원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모스크바 도심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으로 길이가 1.25㎞에 이른다. 거리 곳곳엔 화가들이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에는 알록달록 마트료시카인형이 진열돼 있다.

아르바트 거리 중앙엔 수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찾는 추모의 벽이 있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 가수 빅토르 최를 위한 장소다. 이 곳엔 그를 생각하며 바치는 꽃과 담배가 끊이지 않는다.

빅토르 최는 1962년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한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인기는 러시아에서만큼은 비틀스에 버금갔다고 한다. 그의 노래에는 유독 자유와 저항을 외치는 가사들이 많다. 그가 활동했던 1980년대 후반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자유에 대한 민중들의 갈망이 가장 강렬했던 시기였기에 수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스물여덟살인 1990년 8월15일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때 이 벽은 사라질 뻔했다. 일대가 재개발지역이어서 허물 계획이었데 그를 기리는 팬들이 모여 결사적으로 저지했다고 한다.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휩쓴 빅토르 안(안현수)도 그에게서 이름을 땄다.

지척엔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 공연으로 유명한 볼쇼이 극장이 있다. 또 톨스토이 생가에서는 러시아 대문호의 숨결을 느꼈다. 톨스토이는 이 곳에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명작들을 집필했다. 생가 뒤편으로는 정원이다. 톨스토이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이 곳을 거닐며 사색에 잠겼다.

/모스크바=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