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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임은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너도나도 곡기를 끊는다는데
2014년 09월 05일(금) 00:00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40여 일의 단식을 끝냈다. 단식을 말리러 갔다가 오히려 주저앉았던 문재인 의원도 단식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촉발된 국민 동조 단식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군사독재시절도 아닌데 이 어인 일인가.

단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사실 우리 배달민족은 단식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달 환웅(桓雄)이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의 두 여인에게 쑥과 마늘만을 주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시련을 겪게 했는 바. 그 중 웅족 여인이 배고픔과 추위를 참고 계율을 지켜 의용(儀容:자태)을 얻었다니 말이다.

항일운동 때도 우국지사의 단식이 있었다. 면암 최익현(1833년∼1906)은 1905년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노구(74세)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일본군에 체포돼 대마도로 압송됐다. 단식에 들어간 그는 일본군이 주는 어떤 음식도 거절했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마실 물도 거절하고 선비로서의 죽음을 택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 무슨 낯으로 나라의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단식 하면 우리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1983년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YS는 23일 동안 단식을 감행함으로써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DJ는 1990년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보수대연합의 내각제 개헌 의도를 막아 내고 지방자치제 실현의 토대를 마련했다.

잊혀진 기억이지만 놀랍게도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28일 동안이나 굶은 적이 있다. 1995년 내란 혐의로 구속된 그는 가소롭게도 구속에 항의한다며 단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단식하면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수저를 들었다고 한다. ‘28일 단식’은 현재 정치인 최장 단식 기록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군사독재의 당사자가 그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도나도 곡기를 끊는다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 암울했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폭압적인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으로 단식을 선택했었다. 그들은 현실정치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단식을 통해 독재에 맞섰다.

그러다 끝내 숨진 이도 있다.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관현 씨는 40일간의 옥중단식 끝에 29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다 그해 10월 12일 새벽,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하지만 그의 단식을 둘러싸고 제기된 폭력과 고문 등 죽음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 버렸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까지도 단식투쟁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확산되고 있으니 이 어이 된 일이냐 말이다. 특히 일반 시민들까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단식에 나서고 있으니.(현재 2만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식을 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집계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과 SNS에서는 김영오 씨의 단식을 놓고 각종 루머와 댓글 등 악의적 인신공격이 판을 치기도 했다. 아무리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지만 개인사를 들춰 내면서까지 폄훼하다니 해도 너무 했다.

어찌 됐든 단식이 너무 흔해지다 보니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일부 정치인들은 오로지 ‘보여주기’ 차원에서 단식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문재인 의원의 단식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본다’는 응답이 64%나 됐다.(8월 26∼28일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

그러니 단식의 성과도 미미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엔 전혀 진전이 없다. 갈등과 대립을 풀어 내야 할 정치권은 물에 잠겨 버린 세월호처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이라며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를 견지하고,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치마 속으로 숨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돼 장외로 나갔지만, 대통령과 여당이 자비(?)를 베풀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세월호 정국에 발이 묶여 국회가 제 기능을 못 한 지도 벌써 넉 달이 넘었다. 5월 초 이완구·박영선 두 여야 원내대표가 취임한 이후 처리된 유일한 안건이 세월호 국정조사였다. 이 국정조사마저 90일을 허송한 끝에 막을 내렸다. 지난 1일 문을 연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로 세월만 까먹고 있다. 무능하고 무력한 국회의원들. 이들은 그렇게 놀면서도 매달 1000만 원이 넘는 세비(歲費)는 꼬박꼬박 챙긴다.

이제 야당이 가야 할 길은 한 가지 뿐이다.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호 유족이나 시민단체 등이 장외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의회정치의 모습이다.



다들 ‘나 몰라라’에 세월만 간다



물론 아무 소득도 없이 국회로 돌아가는 게 머쓱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할 텐데 누가 하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하는 수밖에 없다. 협상과 재협상에서 너무 쉽게 여당에 합의를 해 준 박영선 원내대표가 풀어야 한다. 그 실마리를 푸는 길은 미련 없이 원내대표직을 내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게 사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야당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다. 마침 황주홍 의원 등 중도·온건 성향 의원 20여 명이 엊그제 국회 등원을 당 지도부에 촉구했다. 그래 장외투쟁으로는 안 된다. 들어가서 싸워라.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길거리에서 지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 추석이 내일모레 아닌가.(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