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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콩으로 메주를 쓴대도 못 믿겠네
2014년 07월 25일(금) 00:00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鄕歌)는 서동요(薯童謠)다. 지은이는 어릴 적 이름이 서동(薯童)이었던 백제 무왕(武王). 삼국유사에 노래와 함께 그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동은 선화공주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사모한 끝에 신라 땅에 몰래 잠입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고구마와 비슷하게 생긴 마(薯)를 공짜로 나눠주며 환심을 산 뒤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게 한다.

노래의 내용은 다들 잘 알 것이다. 상당히 노골적인 이 ‘19금(禁)’ 노래는 이윽고 신라 궁중에까지 퍼지게 됐다. 왕은 기가 막혔다. 공주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놈과 비밀리에 만나 정사(情事)를 나눈다니. 곧바로 공주를 궁궐 밖으로 쫓아냈다. 어머니가 선화공주를 감싸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쫓겨난 선화공주는 갈 곳이 없다. 성 밖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서동이 접근한다. 이어지는 사랑 고백에 공주가 홀딱 넘어갔다. 그렇게 해서 함께 백제로 돌아간 서동은 임금이 되고, 공주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서동은 결국 소문을 이용해 공주를 차지했다. 요즘 같았으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철창에 갇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들은 허공에 떠다니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온갖 뜬소문이 떠돌아다니기 마련이다. 이 중에는 독재 시절의 ‘카더라 통신’처럼 나중에 진실로 밝혀지는 것도 허다하다. 아무런 근거 없이 일부러 지어낸 유언비어도 많다. 5·18 당시 ‘간첩 침투설’ 같은 경우가 그렇다.

유언(流言)은 글자 그대로 ‘흘러 다니는 말’이며 비어(蜚語)는 비어(飛語)와 같은 뜻으로 ‘날아다니는 말’이다. 원래 바퀴벌레를 뜻하는 ‘비’(蜚)는 날 ‘비’(飛)와 발음이 같아 예전엔 흔히 같은 뜻으로 쓰였다.

서동은 유언비어를 이용해 ‘여자’를 취했지만, 뜬소문을 퍼뜨려 ‘권력’을 차지하려 했던 이도 있다. 고려 인종 때의 권신 이자겸이다. 그는 ‘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될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편승, 반란을 일으켰다. ‘십팔자’(十八子)는 ‘이’(李) 자의 파자(破字)다.

이성계는 유언비어로 나라까지 움켜쥔 인물이다. 위화도 회군 이후 당시 시중에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란 동요가 널리 퍼졌다. ‘목자’(木子) 역시 ‘이’(李)의 파자이니 ‘이씨 성을 가진 이가 나라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성계 세력이 역성혁명을 노리며 퍼뜨린 유언비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제로 딱 100일이 됐지만 온갖 의혹들만 켜켜이 쌓여 가고 있다. 당국은 사건 초기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며 국민들의 의혹 제기 자체를 차단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행방이 묘연했던 유병언(73·전 세모그룹 회장) 씨가 엊그제 백골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뉴스를 보던 많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거였다. 당장 ‘시체 바꿔치기’ 등 각종 음모론이 퍼졌다.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 씨가 도피 중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 또한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킨다. 메모는 거울에 비춰 봐야 읽을 수 있게끔 거꾸로 쓰여 있다. 과거 수감 생활 중에 배웠다는 일명 ‘다빈치체’다. 왼손잡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글을 왼손으로 썼다 한다. 그것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울에 비춰 봐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거울 필법’(mirror writing)으로 불린다.

문제는 메모의 내용이다.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늘 헛다리만 짚고 있는 검찰과 경찰을 조롱하는 글이야 그렇다 치자.

“가녀리고 가냘픈 ‘대’(大)가 태(太)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야.” 이게 무슨 말인가. 구원파에 따르면 유 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대’(大)로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을 가리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참모진의 과잉충성 때문에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구원파 기자회견장에 걸렸던 “김기춘, 갈 데까지 가 보자”라는 플래카드가 생각난다.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에는 또 김 실장의 어록에 있는 ‘우리가 남이가’란 현수막도 걸렸었다. 그게 과연 김 실장이 ‘오대양 사건’ 때 법무부장관을 했다는 사실 때문만이었을까.



책임지는 이는 하나 없고



어찌 됐든 검찰은 한 달 넘게 유 씨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엉뚱한 ‘꼬리 잡기’에 수사력을 낭비했다. 유 씨가 시신으로 발견됐어도 여전히 ‘시신 조작’ ‘타살 의혹’ 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유 씨가 시신을 바꿔치기 한 뒤 해외로 밀항했다”고 말한다. “1년 뒤 해외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손가락이 9개인 노인이 발견될 것이다”란 말도 떠돈다. ‘정가 연루설’ 역시 여전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더라고, 억측과 루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퍼져만 간다.

유언비어는 왜 발생하는가. 불신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견고하면 유언비어는 금세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유언비어 때문에 사직 상소를 낸 이항복에게 광해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이르면 해소되는 법입니다.” 이 말을 현시대에 맞게 바꿔보자.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정부를 만나면 해소되는 법이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 정부의 꼬락서니를 보면 도통 그런 기대를 가질 수 없다. 지혜롭기는커녕 느려 터지기로는 나무에 매달린 늘보 수준이고, 귀가 어둡기로는 거의 사오정 수준이니 말이다.

경찰은 유 씨의 시신을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고 검찰은 별장을 수색하고도 밀실에 숨어있는 유씨를 찾지 못했다.

유언비어는 계속 떠돌고 윗선에서 책임지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는데, 정부는 믿으라고만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또다시 정부를 믿으라고? 아이고,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