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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당선인들께 편지 한 장 부칩니다
논설고문
2014년 06월 06일(금) 00:00
한 차례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네요. 6·4 지방선거의 막이 내렸습니다. 모두들 애쓰셨습니다. 특히 광주시장과 전남 도지사 당선인 윤장현·이낙연. 그리고 그밖에 당선되신 모든 분들. 우선 축하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 맨 먼저 어디를 찾으셨습니까. 5·18묘지는 다녀오셨는가요. 한 군데 더 추천할 만한 곳이 있습니다.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뒷산입니다. 그곳엔 백비라고 일컫는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비석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름도, 지위도, 업적도. 글자라고는 한 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백지(白紙)라 하지 않던가요.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비석이 바로 백비(白碑)입니다.

아시겠습니다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지요. 백비의 주인공인 박수량(1491∼1554) 선생은 40년 가까이 공직자로 살았습니다. 한성부윤과 도총관에 전라도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하지만 그 흔한 접대 한 번 받지 않은 채 평생 가난하게 지냈지요.

선생이 남긴 유언도 소박했습니다. 고향에서 장사를 지내되 무덤엔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막상 일이 닥치자 가족들은 장례비조차 없어 걱정이 컸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명종)이 장례비를 보내고 비를 세울 빗돌을 하사했다지요. 자손들은 고민 끝에 비석에 아무것도 새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저런 공적을 새기는 게 오히려 선생의 생에 누(累)가 될까 우려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백비는 오늘날 청백리(淸白吏)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물론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게 쉽다면 이렇게 특별히 당부의 말씀을 드릴 필요도 없겠지요. 윤장현 4억7천, 이낙연 14억6천, 그리고 다른 분들도 이미 가진 재산을 다 등록하셨습니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 거기에서 한 푼이라도 더 늘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명예와 부(富) 둘 다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최근 국무총리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국민검사’ 안대희의 좌절에서도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윤장현 65세, 이낙연 62세. 앞으로 한 번 더 할 수도 있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당선되신 모든 분들. 부디 한 번만 하고 만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십시오. 두 번 세 번 하려다 보면 눈치를 보게 됩니다. 나쁜 말 안 듣기 위해 ‘좋은 것이 좋은 거’라며 두루뭉수리로 넘어가게 됩니다. 게다가 다음번 선거자금 마련을 생각하면 숱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두 번 세 번 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십상입니다.

당선되기까지 그동안 신세 졌던 사람들에 대해 의리를 지키려는 것도 한 번 더 해보겠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의리, 물론 좋은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의리라고 하면 한번 맺은 사람과의 관계를 변함없이 잘 유지하는 것을 뜻하니까요. 물론 주민들과의 의리는 지키십시오.

그러나 선거기간 동안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의리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셔도 됩니다. 한 자리 챙겨 보려고 캠프에 들어왔던 사람들. 뒤늦게 당선 가능성을 보고 부나비처럼 몰려들었던 어중이떠중이들. 옥석(玉石)을 가린 후, 바로 정리하셔야 할 겁니다.

‘의리의 사나이’ 배우 김보성이 요즘 뜨고 있더군요. 시시때때로 으리! 으리!를 외쳐대던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비치지 않았나요. 하지만 그는 누가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줄곧 한 가지 캐릭터만 밀어붙인 끝에 요즘 크게 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꾸준함’입니다. 여러분들도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고 맘먹었던 초심(初心)을 끝까지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사 출신 시민운동가 윤장현. 기자 출신 4선 국회의원 이낙연. 행정경험이 없는 분들은 이 두 분 외에도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그런 점을 우려합니다. 밖에서 비판만 해 왔던 행정은 안에 들어가 보면 많이 다를 겁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을 만나 들으십시오. 겸허한 자세로 경청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란 생각입니다. 돈은 멀리하고 사람은 가까이하십시오. ‘당황하지 말고 그런 것만 지키면 끝!’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광주의 사업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광주에도 카지노나 경마장이 들어서야 한다고 열을 올렸습니다. 카지노 같은 것을 반대하니 특급호텔을 짓겠다고 나서는 업자도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겠지요.

일리 있는 말입니다. 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안들에 대해서까지도 편견 없이 경청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한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안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경제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영세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젊은이들은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개선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행정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모두들 잘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도 괜히 공자님 앞에서 문자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이만 줄이면서 옛날이야기 하나 들려드립니다.

조선시대 어떤 임금(중종)은 궁궐 안뜰에 세 개의 문을 세우고 청문·예문·탁문이라고 써 붙이도록 했답니다. 청문(淸門)은 맑고 깨끗한 사람이 통과하는 문이고, 예문(例門)은 보통 사람이, 탁문(濁門)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그런 연후에 모든 벼슬아치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문을 통과하게 했다는군요. 고관대작들이 모두 보통문으로 나가는데 한 사람 조사수(1502-1558)만이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당당하게 청문으로 가더라는 거예요. 한데 이런 그를 보고 아무도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었다니 놀라운 일 아닙니까. 당선되신 여러분들 중에서도 조사수 같은 인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