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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산이 만나 낳은 100개의 알 … 다민족 시조
[5부 베트남편] <1> 베트남 건국신화
2013년 06월 17일(월) 00:00
훙왕 사당 입구에는 훙왕이 베트남을 건국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남월조조’(南越肇祖)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베트남 푸토성=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아시아 문화 원류를 찾아서’가 두 달간의 인도차이나 반도 ‘캄보디아’ 이야기를 마치고, 이웃 나라 ‘베트남’으로 향한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국경을 맞대고 위치해 있지만 문화의 뿌리가 크게 다르다. 캄보디아가 인도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힌두사상에 그 뿌리를 뒀다면 베트남은 유교적 사상이 깊게 박혀 있다.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면서 한자를 기본으로 한 그들의 문화는 한국과도 많은 부분이 닮았다. 취재진은 앞으로 두 달간 베트남의 건국신화와 소수민족, 베트남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나’와 ‘국가’를 있게 한 근원이자 민족을 결속시켜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에서는 최근 수년 전부터 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음력 3월10일을 국가 공휴일, 즉 우리의 개천절과 같은 ‘국조 훙 브엉 제사일’(Gio To Hung Vuong)로 지정해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훙왕 제사일은 국가 지정 공휴일로 지정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국가 최고위직들이 다수 참석할 정도로 중요한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이 행사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푸토성 비엣찌시 린산에 있는 훙왕 사당에서 크게 치러진다. 훙왕은 베트남 말로 ‘훙 브엉’으로 불리며, ‘훙’(Hung)은 ‘영웅’, ‘브엉’은 ‘왕’을 뜻한다.

훙왕 사당은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다. 베트남은 지난 2007년부터 국가 특별역사유산 훙왕 역사 유적지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훙왕 역사 유적지는 해발 300m의 나지막한 산 위에 축구장 5개 만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으며, 현재도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역사 유적지가 있는 비엣찌시는 베트남 사람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유적지는 베트남 국조 훙왕의 아버지인 ‘락롱 꿘’ 사당과 어머니인 ‘어우꺼’ 사당, 훙왕 사당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특이한 구조로 배치돼 있다. 14세기 후반에 편찬된 설화집 ‘영남척괴열전’에 나오는 베트남 건국신화 ‘홍방씨전’을 알면 유적지 배치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다. 홍방씨전은 해양세력과 산악세력이 만나 최초의 고대국가를 형성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는 설화로 교과서에도 등재돼 있다.

기원전 3000년께 물의 왕인 락롱 꿘이 현재의 비엣찌 지역에 ‘락 비엣’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용궁과 나라를 오가며 보살폈다. 락롱 꿘은 백성들에게 닥친 재앙과 악귀 등을 신비한 힘을 발휘해 물리쳤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북쪽 세력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웃나라 백성들의 요청을 받고 도움을 주기 위해 길을 나서다가 산의 힘을 가진 어우 꺼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북쪽 세력은 중국을 의미한다. 중국으로부터 수차례 침략을 당한 베트남 역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후 락롱꿘은 어우꺼와 결혼하게 되고, 1년째 되는 해에 어우 꺼는 태반이 붙어 있는 붉은 덩어리를 낳는다. 이들은 이것들을 불길하게 여겨 내다 버리지만, 7일 후에 그 붉은 덩어리에서 백 개의 알이 나온다. 며칠 후에는 알에서 백 명의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이 사내아이들은 젖을 먹이지 않아도 잘 자랐고, 몸에서 신비한 향이 품어져 나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북쪽 세력들은 또 군사를 보내 이들을 죽이려고 한다. 결국 락롱 꿘과 어우 꺼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50명씩 데리고, 각각 자신들의 힘의 원천인 바다와 산으로 향한다. 이후 락롱 꿘은 장남을 훙왕으로 봉하고 나라의 이름을 ‘반랑국’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18명의 훙왕이 기원전 2879년부터 기원전 258년까지 약 2600년간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반랑국은 베트남 최초의 국가이다. 베트남인들은 락롱 꿘과 어우 꺼를 그들의 시조로 생각하고 훙왕, 즉 훙 브엉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긴다.

이 신화는 우리의 ‘주몽신화’와 비슷한 난생신화다. 주몽은 아버지 해모수와 어머니 유화 사이에서 알로 태어났다. 알이 일종에 모든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는 의미다. 두 신화의 차이점은 주몽은 하나의 알에서 태어난 시조이고, 홍방씨전에서는 백 개의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다스린 왕들이 모두 국조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다수민족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베트남은 모두 54개 민족이 모여 이뤄졌다.

유적지 입구에 있는 락롱 꿘 사당은 거북이가 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락롱 꿘이 물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당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만들어져 있다. 베트남어로 아버지를 ‘튀’라고 부르는데 ‘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락롱 꿘 사당에서 어우 꺼 사당까지는 카트를 타고 약 15분 정도 걸린다. 유적지의 전체 규모를 추측할 수 있는 거리다. 어우 꺼 사당은 유적지 중에서도 가장 높은데 있을 뿐더러, 500여 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사당에 다다를 수 있다. 어우 꺼 사당은 훙왕 유적지 전체를 내다보며, 어머니가 자식들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사당에서는 락롱 꿘과 어우 꺼가 자식들을 데리고 바다와 산으로 떠나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훙왕 사당은 우리의 단군신화처럼 한 명의 국조를 모시는 사당이 아니라, 반랑국이 멸망하기까지 나라를 다스린 18명의 왕을 모시고 있다. 사당은 크게 3개 층으로 구분된다. 사당 정문을 지나 하(下) 사당, 쭝(中) 사당을 차례로 지나 마침내 투옹(上) 사당에 다다르게 배치돼 있다. 사당에 놓인 훙왕의 모습은 붉은 얼굴에 근엄함을 갖춘 우리 단군왕검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사당을 오르는 계단 곳곳에 새겨진 ‘물의 발원지를 기억해라’라는 베트남 격언이 인상적이었다.

음력 3월10일 국조 훙 브엉 제사일 행사는 이 투옹 사당에서 진행된다. 베트남 국가 주석, 고위급 관리 등과 함께 베트남 54개 민족 대표들이 모두 참석한다고 한다. 축제와 함께 10일간 ‘레 호이 덴 훙’이라는 축제가 진행된다. 이 행사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베트남을 하나로 결집하는 일종의 힘이 된다고 한다.

관리인 덴 트엉씨는 “락롱꿘과 어우꺼 이야기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됐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도 등장한다”며 “나라에서는 ‘훙왕 참배’의식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